가끔 우리는 '솜씨'라는 말로 한 사람의 숙달 정도를 표현하거나 전달하고, '마음씨'라는 세 글자로 그 사람 성품의 깊이를 나타내려 한다.
이처럼 '~씨'는 이름이나 특정 단어 끝에 붙어 다니며 대상을 부르는 호칭이 되거나 그 사람을 가늠하게 한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하고 싶다. 바로 '글씨'다. 최근 들어 이 '글씨'라는 낱말은 세상 대부분의 텍스트들이 0과 1의 조합인 디지털로 기록되어 가며 빠르게 잊혀지고 있지만, 아무리 간편하고 입맛 당기는 인스턴트식품이 넘쳐흘러도, 우리가 먹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 한 엄마의 '집밥'을 늘 동경하듯, 인간이 쓰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면, '글씨'는 우리를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
'글씨'가 절대로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계속해서 이 '글씨'에 대해 이야기하고 써내려 갈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좋은 글씨'란 무엇일까?
한석봉 같은 명필가의 글씨를 말하는가? 캘리그래피 작가처럼 그 자체가 하나의 그림이 되는 글씨를 말하는가? 명조체, 궁서체처럼 누군가 정해 놓은 글씨를 똑같이 잘 따라 쓴 글씨를 말하는가? 고가의 최고급 만년필로 거침없이 써 내려간 글씨를 말하는가?
자음과 모음에 사용되는 직선과 곡선이 반듯하고 흐트러짐이 없다면 '좋은 글씨'라 하는 사람이 있겠다. 초성, 중성, 종성이 조화를 이루어 한 글자의 모양새가 우리의 눈에 익숙하면 '좋은 글씨'라 하는 사람도 있겠다. 단어와 문장들이 잘 훈련된 군인들의 열병식처럼 오와 열이 맞지는 않더라도, 구성이 통일감 있고 적절한 여백을 사용한다면 '좋은 글씨'라 하는 사람도 있겠다.
어느 날,
짧은 다큐멘터리에서, 여든을 훌쩍 넘기고 똑같이 '장정구 파마' 머리를 한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기 위해 모여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가난을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살림만 하면 된다 등의 말도 안 되는 이유들로, 우리말 한글을 어떻게 쓰고 읽는지 배우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낸 노모들이 좁은 교실 한자리에 모여, 마스크에 덮인 입과 코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선생님을 향한 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께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기 위해, 글을 몰라 창피해서 못 갔던 은행일도 아들 도움 없이 해 보기 위해, 본인의 목소리로 손주들에게 동화책 한번 읽어 주기 위해 만학도를 자처한 것이었다.
그들의 작지만 숭고했던 이유들은, 부족한 것 모르고 살아온 나를 작게 만들었고, 나 혼자 잘나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자만 가득한 나를 겸손하게 했다.
이윽고 이어지는 새로운 장면,
뼈만 덮은 깊은 주름살과 다른 색으로 변한 굳은살 가득한 손가락으로 연필을 잡고 국어 노트에 꾹꾹 누르며 써 내려간 할머니 자신의 이름, 사무치고 험난하게 이어져 오던 인생의 끄트머리에 와서 처음 써 본다는 자신의 이름, 처음 쓴 그 이름이 참 예쁘다며 15살 소녀처럼 수줍게 함박웃음 지으시며 기자에게 드밀듯 보여주던 그 글씨가 화면에 잡혔다.
그 글씨야 말로, 내가 본 글씨중에서 가장 '좋은 글씨'였다.비록 세 글자였지만, 그녀 평생의 한이 비뚤비뚤한 획에 녹아 있었고, 배움의 환희와 설레임이 그녀의 이름 한 글자마다 보였다.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최고의 글씨였다.
사람을 움직이고 변하게 하는 달변가의 웅장한 연설처럼, 글씨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어, 타인에게 감동과 반성을 주는 글씨, 이런 글씨가 '좋은 글씨'라고 생각한다.
운 좋게도 어릴 때 좋은 스승님을 만나, 나의 글씨는 남보다 조금 반듯해졌지만, '좋은 글씨'를 쓰기 위한 나의 여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부디 그 여행이 즐겁기를.. 더불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늘 나를 감시하기를.. 마지막으로, 새로운 만남의 연속이기를 바래 본다.
이 글은 제법 글씨 쓰고 글 솜씨 좋은, 고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는 대사랑씨의 생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