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쓰는 속도

by 대사랑 biglovetv


'글씨 유튜버',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나로 살기 시작한 지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짧고 서툰 영상을 통해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을 만났고 글씨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이 시간 동안 다른 일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는 일은 티끌의 의미도 없지만, 나의 선택으로 꾸준히 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앞으로의 내 인생에 자양분이 될 것은 분명하리라.

댓글이라는 하나의 소통 수단을 통해 가장 많이 오고 갔던 질문 중의 하나는 바로 '글씨 쓰는 속도' 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오늘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 '글씨 쓰는 속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에 앞서, 가벼운 고백부터 시작해야겠다. 글씨 관련 영상을 만들고, 구독자가 예상보다 빨리 늘어나고, 어느 순간 '선생'이라는 호칭이 붙기 시작할 때 즈음 제법 큰 고민거리가 생겼다.

글씨에 대해 체계적인 학습법이나 이론을 배운 것도 아니고(지금도 생각해보면 그런 것이 있나 싶다.), 그것들에 대해 깊은 고민 한번 해보지 않았던 내가, 단지 타인보다 조금 바른 글씨 모양을 가졌다고 해서 '선생'으로 불리며 어쭙잖은 지식을 짜깁기해 전달하고 공유하는 것이 올바른가?에 대한 답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글씨 쓰는 것을 좋아해 왔고, 내가 지나온 길과 노하우를 공유하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는 자위적 신념으로 매 순간 다독여 왔지만, 사실 아직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이후 이어지는 '글씨 쓰는 속도'에 대한 이야기도 이와 결을 같이해, 나의 아주 사소한 경험을 통해 써진 것이라고 보면 한결 더 읽는 사람의 마음이 너그러워지리라 본다. 꼭, 유념했으면 좋겠다.



만족도 조사에서 '매우 좋음 - 좋음 - 보통 - 싫음 - 매우 싫음' 등과 같이 아주 쉽게 나누어 묻듯, 우리는 추상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해 이를 세분화하고 익숙한 단어로 표현한다.

하지만, 이런 쉬운 보기들 조차도 가끔씩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좋음'이라는 것은 도대체 얼마나 좋은 것을 묻는 것인가? 아침마다 죽지 않고 다시 눈 떴을 때의 감사함인가? 백 점짜리 성적표를 받았을 때의 만족감인가? 뜻밖의 생일 선물을 받았을 때의 얼떨떨함을 말하는가? 무궁화 마크를 달고 다시는 안 올 위병소를 뛰쳐나오며 소리쳤던, 제대할 때의 그 환희를 일컫는가?

기준이 없으면 우스운 질문일 수 있다.


나는 '글씨 쓰는 속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과연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글씨 쓰는 속도'는 얼마의 빠르기인가? 국민 교육 헌장쯤은 단숨에 써내려 가는 속도를 말하는가? 한글 타자처럼 1분 150자 정도는 써야 하는가? 성질 급한 부장님의 아침 조회 코멘트를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다 받아 적으면 만족할 만한 속도인가? 이 역시도 기준이 없다. 그 누구도 그 기준을 만들어 주지 못한다. 이 또한 만족도 조사의 '좋음'처럼 자신만의 기준에 입각해서 동그라미 표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여기에, 선생(?)으로써, 한두 가지만 보태자면, 스스로의 기준을 만들기에 앞서 가장 먼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 있다. '왜? 무엇을 위해? 자신은 글씨를 쓰는가?' '그에 맞는, 내가 만족하는 속도는 어느 정도일까?'이다. 그 뚜렷한 목적과 바람에 꼭 맞는 글씨체를 찾으려 해야 한다.

KTX를 탈지, 완행열차를 탈지는 여행의 목적에 따라 다르다. 보령 해저 터널을 타고 바다를 건널지 통통배를 타고 건널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안다. 컵라면의 면발이 실처럼 가느다란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준비를 마쳤다면 떠나면 된다. 먼저 앞서간 사람의 글씨체를 따라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반드시 그 과정에서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해 자기만의 글씨를 갖도록 해야 한다. 본인의 손과 몸에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 투자와 노력은 필수다. 박수 한 번에 모기를 잡는 것처럼 찰나에 이루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나는 궁서체를 선택했다. 코로나 방명록에 내 이름을 멋지게 쓰기 위함은 아니었다.(물론 이 순간에는 내 난잡한 글씨가 본능적으로 나온다. 목적에 맞다.) 정자체, 반흘림체, 흘림체.. 더 자세히 나눌 수도 있다. 그 목적이 각각 다르다. 그날 기분에 따라 다른 글씨체를 선택하기도 한다.


야구 경기에서 한 점 차이의 9회말은 한참 느리게 진행된다. 그만큼 치열한 것이다.

마무리 투수는 본인의 주무기 공을 한번 뿌리기 위해 수많은 구종으로 타자를 유혹하고, 타자는 방망이 끝에 온 신경을 담아 투수가 던진 공 실밥의 미묘한 변화에 따라 스윙을 달리 한다.

각 벤치 속 감독의 싸인은 공 하나와 그에 따른 미묘한 분위기 싸움에 따라 달라지고, 심판은 오심의 불명예를 피하기 위해 허리와 무릎을 더 구부린다. 응원하는 팀이 서로 다른 관중들도 모두 숨죽인 해설자가 되어 볼카운트마다 함성을 달리 하며 승리를 기원한다.

이처럼 9회는 지난 8개의 이닝보다 훨씬 더 많은 집중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야구의 묘미이자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내 글씨는 야구의 9회에 가깝다. 축구로 치자면 후반 추가시간 5분이라 하겠다.

획의 시작은 늘 가슴 떨린다. 그 시작이 연습한 데로 되지 않으면 그날의 글씨는 망치기 십상이다. 손동작에 맞추어 숨소리도 차분해져야 한다.

자음과 모음을 이루는 직선과 곡선에 온 신경을 다한다. 투수가 실밥을 채듯 내 손가락도 연필을 신중하게 감싼다. 타자가 스윙을 하듯 펜을 쥔 내 손놀림도 거침이 없다. 한 글자, 한 글자에 승패의 기를 담는 것이다.

내 미묘한 떨림은 획의 굵기에 바로 나타나고, 잠깐이라도 다른 생각에 빠지면 틀린 글자를 쓰게 된다. 공든 탑이 무너지게 하지 않으려면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내 글씨의 순수한 과정이다.

나는 이런 내 글씨를 사랑하고 좋아한다.

계속 그 과정을 많은 사람들과 즐길 것이다.

더 빨리 쓰고 싶은 생각은 없다.


누가 뭐래도 상관없다.

내 글씨니까.


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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