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는 매일 쓰는 것임을 잊지 않으려 꽤나 노력했다. 개인 사정으로 필사 한 번 건너뛴 날 말고는 매일 필사 일기를 끝으로 잠들었다. 어림으로 계산해도 120개 정도의 글을 매일 쓴 셈이니, 내 팔이 내 등에 닿는다면, 수고했다며 등을 토닥여주고 싶다.
누군가 대단한 일을 한 거라고 칭찬하면 '그냥 썼는데요. 뭘.'이라며 겸연쩍은 웃음을 지을 것이다. 비결이 따로 있냐고 물어본다고 해도 '그냥 썼습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궁금해한다면 이 또한 '그냥 쓸 겁니다'라며 진지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솔직히 고백한다면, 지금 슬럼프를 겪고 있다. 글 쓰는 재미를 못 느껴서가 아니다. 억지로 글을 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원인을 말한다면 주제 때문이다. '일기'라는 제목으로 글쓰기를 해왔지만, 일기는 아니었다. 필사 내용에 나의 생각이나 반성을 기록하지 않고, 글씨와 필사에 대한 나의 사고와 지식을 남겼다. 덕분에 글씨에 대한 개념과 필사의 쓰임새를 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갈수록 쓸 감이 마르고 있다는 기분이다. 하나의 주제를 향한 글의 전개는 제법 익숙해졌으나 앞으로의 주제가 걱정이다. 그동안 100 이상의 글로 표현한 내용이 중복되기 시작한다. 표현과 비유가 계속 겹친다. 어제 먹고 남은 찌개를 데워서 먹는 기분이다. 내 스스로 세운 언어의 틀에 둘러싸여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듯하다.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진 않지만 신선한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에 계속 주춤한다. 새장에 갇힌 앵무새가 된 기분이다.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