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쓴 작가의 글대로, 글씨도 당장 악필을 탈출할 것 같은 맹렬한 기세로 시작해도 이내 저속 운행이 되고 만다. 교본의 구깃구깃한 앞부분에서 몇 장만을 넘기면 빳빳하고 새 책 향기마저 품고 있는 페이지를 만난다. 새로 구입한 펜은 싱싱한 잉크를 품은 채 주인을 기다리고, '글씨 잘 쓰면 밥이 나오나?', '지금 글씨도 나쁘지 않아!' 하는 자문과 자위가 반복되며 몸은 책상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글씨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의 하나인 글씨를, 입으로 말하듯 손으로 나를 표현하는 글씨를 너무 가볍게 여긴다. 약간만 연습하면 바꿀 수 있다고, 단박의 교정은 식은 죽 먹기라고, 손가락만 잘 놀리면 금방 좋아진다고, 마음만 먹으면 글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글씨는 습관이다. 습관은 반복적으로 행하여, 자연스럽게 몸에 배거나 익숙해진 행동을 일컫는다. 즉, 특별한 생각이나 노력 없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행동 패턴을 말한다.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는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대체해야 한다. 충치 치료의 확실한 방법은 썩은 곳을 긁어내고 새것으로 채우는 것과 같다. 지식을 늘리기 위해서 TV 시청 대신 독서를 택하는 것과 같다. 건강해지기 위해 배달 음식 대신 정성스러운 집밥을 먹는 이유와 같은 이치다.
나쁜 글씨 덜어내고 좋은 글씨로 채워야 한다.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튀어나오는 악필을 누르고 바른 글씨를 떠오르게 한다. 습관은 반복의 결과물임을 알고, 모범이 되는 글씨를 좇고 따라 쓰기를 되풀이한다. 하루아침에 고치겠다는 단호한 결심보다는 평생의 자기 수양으로 삼고 매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어마한 양의 물이 쏟아지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상상하기보다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장면을 현실에 적용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