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이파이브> 후기
의문의 인물에게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들이 각자 다른 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던 영화 <하이파이브>
사실 이런 소시민 히어로물은 이제 새롭다기보단 익숙한 장르다.
강풀 원작의 드라마 <무빙>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영화 <크로니클>이나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 드라마 <히어로즈>처럼 어느 날 갑자기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미 여러 번 다뤄져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이파이브>가 식상하지 않았던 이유는, 초능력의 기원이 '장기이식'이라는 독특한 발상 덕분이었다.
한 사람에게서 생명을 이어받은 인물들이 유사 가족처럼 연결되며 교감하는 서사가 진정성 있게 다가왔고, 이 영화만의 감성이 잘 살아 있었음.
어쩌면 장기이식을 받아야 생명을 이어나갈 정도로 위태로웠던 사람들이 이제는 일반인을 초월하는 능력자로 거듭난 모습들.
그리고 조금은 하찮아 보이는 능력들이지만 여럿이 모였을 때 더 커지는 시너지. 그 안에서 보이던 인상적인 순간들이 있었다.
근데 영화를 보고나니 태권소녀 완서와 태권도장 관장인 아빠의 모습이 아른 거리네.
왜 하필 태권도 도복을 입은 남성과 여성이 등장을 한 것일까-지금 2030 친구들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주 꼬맹이일때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었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건 TV로 나왔던 리메이크 버전 같음)
태권도 유단자인 소년 소녀가 악당들을 징벌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이번 <하이파이브> 속의 주인공 완서의 모습에서는 아라치가, 관장인 아빠에게선 살짝 각색된 마루치가 얼핏 보였음.
이런 생각을 해보는데에는 류승완 감독이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제작할 당시 "원래 제목을 마루치 아라치로 하려고 했었다" 라는 인터뷰가 떠올랐었고, 류승완 감독이나 강형철 감독 모두 비슷한 나이 또래로 어릴 때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를 보면서 자란 세대라는 점.
개인적인 추론일 뿐이지만 이번 <하이파이브>에서도 분명 '마루치 아라치' 의 색깔이 조금은 입혀지지 않았을까 싶다 (감독님께 한번 여쭤보고 싶음)
어쨌든 이번 작품은 태권소녀 완서 역의 이재인 배우나 사이비 종교 교주 역의 박진영 배우 모두 스크린 필모그래피에 대표작이 될만한 포인트를 잘 찍은 느낌이다.
또 <응답하라 1988>에서 모자지간으로 나왔던 라미란과 안재홍 의 색다른 케미도 꽤 재미있었고-
유아인...은 여전히 아픈 손가락이네. <승부> 때도 그랬지만, 이번 작품에서도 연기며 캐릭터며 참 좋았는데... 에휴, 이놈아 ㅠ
전반적으로 유머와 재미가 잘 섞여있었고, 호쾌한 액션까지 어우 러져 있어서 유쾌하게 관람한 영화였다.
전개나 개연성에 있어서 살짝 의문이 드는 구간들이 아쉬웠지만 전체적인 감상을 흐릴정도는 아니었음.
<써니>때도 그랬지만, 강형철 감독님이 음악을 잘 쓰시네.
엔딩 크레딧에서 'We Are Family' 가 나오자마자 나가려다가 앉아서 다 듣고 나감 ㅎ
언제든 달려와 주는 아빠, 그리고 소중한 친구들과 동료들.
어쩌면 내 주변에서 응원해주고,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히어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던 영화.
장기이식자에 대한 떡밥이 남아있어서 스핀오프 혹은 속편도 꼭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신구 선생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