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하장사 마돈나>
폭력과 강압이 일상인
남성들의 사회에 저항하는 소년
고등학교 1학년생인 '오동구'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등교 전 새벽일을 나간다. 사실 생계보다도 돈이 필요한 가장 큰 목적은 '성전환' 수술비를 모아 여자가 되기 위해서다.
성전환 수술을 하려면 500만원이 필요한데, 우연히 씨름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500만원의 상금을 준다는 소리를 듣게 되고- 그 길로 찾아간 씨름부.
감독은 동구의 퍼펙트한 바디 스팩을 감지하고, 그자리에서 바로 발탁되어 본격적으로 씨름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동구가 여성이 되기 위한 여정은 참 순탄치 않다.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고 사고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떠난 어머니의 부재를 대신해 학업에 살림까지 도맡아 해야하는 현실.
남성스럽지 못한 성격의 동구가 못마땅한 씨름부 주장.
거기에 동구의 꿈을 아는 찐친마저 여자가 되면 거기를 한번 보여달라며 희롱섞인 농담을 하는 등-
동구의 바램을 진심으로 알아주는 사람은 아버지의 폭력을 못견디고 집을 나온 엄마밖에 없다.
과연 동구는 씨름대회에서 우승을 하여 성전환수술을 받고 여성으로써의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제목부터 너무 기묘하다. '천하장사' 와 '마돈나' 라니...
남성끼리 살을 맞대고하는 운동인 '씨름'을 하고, '권투'를 했었던 '포크레인' 기사인 아버지와의 갈등. 꿈속에서 좋아하는 남선생님에게 '초경'을 했다고 기뻐하지만, 실제론 '몽정'을 하는 등-
남/여의 상징성을 부각시키거나 대비되게 연출하면서, 남성 사회 속에서 여자가 되기 위해 가장 남성적인 모습으로 투쟁하는 아이러니한 동구의 모습을 극대화 시켜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면 볼수록 나도 남성 사회 속에서 성장하며 느꼈던 어떤 '남자다움' 으로 대변되는 것들에 대한 강요나 압박이 공감이 되는 부분들이 많았고, 사실 이 영화도 그런 것들을 아주 통쾌하게 격파하기 위해 ‘성전환' 이라는 극단적인 코드를 은유로 대입한게 아닐까 싶다.
동구는 아무것도 모른채 빨간색과 파란색의 샅바를 같이 빨았다가 샅바가 보라색이 되어버린다.
이 샅바가 보라색이 되는 시점부터 주장을 제외한 씨름부 3인방이 먼저 동구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고, 동구가 추던 춤을 배우면서 서로가 섞이기 시작한다.
이 보라색 샅바는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고정화된 관념의 탈피나 다양성에 대한 의미를 지닌 상징물 같음.
이런 상반되고 은유적인 이미지들을 통해서 뭔가 곱씹을 거리를 많이 주는 영화였다.
개봉했을 당시엔 상당히 급진적인 영화로 보여졌지만, 지금은 이런 젠더,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느 정도 바뀌면서 새롭게 보여지는 부분들도 많았던 작품.
아버지인 김윤석의 세상 풍파와 싸우며 살아온 듯한 일용직 노동자의 연기가 너무 리얼했고, 오랜만에 나온 이상아가 반가우면서도 캐릭터가 너무 잘 맞았다. 거기에 개그맨 문세윤과 나머지 2인의 감초 역할도 좋았음.
무거운 주제일 수도 있지만, 적절한 웃음 코드와 함께 잘 풀어 진지함과 유머스러움의 경계를 잘 넘나들면서 무겁지 않게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전체적인 영화의 느낌은 '한국 사람이 끓인 일본 라멘' 같달까??
대중들의 평은 아주 좋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론 한국 영화 줄 세우면 15번 안에는 있을 것 같은 영화.
*이 영화의 진짜 엔딩은 아버지가 동구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건내던 응원의 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