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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MAC bro Feb 21. 2023

진정한 구원의 의미, 구속과 구원의 차이.

영화 <더 웨일>을 보고

"진정한 구원의 의미. 구원과 구속의 그 사이"

*글 내용에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더 웨일>

"구원과 구속 그 사이.

 진정한 구원의 의미"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엔 단순히 거구의 남성이 껍데기를

깨고 자신의 핸디캡을 이겨내는 어떤 전기적인 영화 내용이

아닐까 예상했지만, 곱씹어 보니..

진짜 '구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 같았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272kg의 찰리를 보며 빨리 병원을 가고

살을 빼서 건강해지는 것이 구원일 거라고 생각을 할 겁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구원이 아닌 거 같네요.


찰리의 건강 상태를 제일 잘아는 간호사 리즈도

찰리에게 커다란 치킨통을 그냥 주죠.


가정과 딸을 떠나버렸고,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상실감에 커져버린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며-

자신이 죽어가는 걸 알면서도 건강을 위해 돈을 쓰지 않고

딸을 위해 모아둡니다.


그리고는 이제야 딸에게 연락을 하고,
딸은 이미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져

"이 집 냄새나!!"

이런 몇 줄의 글을 남기고 나가지만,
찰리는 그저 그런 딸의 글마저 특정 운율을 맞춘 게

재밌고 웃깁니다.


그저 사랑하는 딸이 와주기만 해도 좋은 찰리.

그런 비뚤어진 딸이 올바르게 돌아왔으면 싶고,
화해하고 싶죠.


울혈성심부전으로 인해 죽을 것 같은 통증이 올 때마다

읽었던 소설 '모비딕'에 대한 에세이는 나중에 밝혀지지만

딸이 쓴 글이었죠.


그만큼 찰리는 딸을 사랑하고
딸의 재능과 탤런트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재능을 자신때문에 펼치지 못하고

비뚤어진 것에 죄책감도 느끼죠.


그 와중에 토마스라는 새 생명진리교를 다니는 청년은

방문전도로 우연하게 찰리의 집에 왔다가,

그 뒤론 자신이 찰리를 도와주고 싶다며 계속 찾아옵니다.


계속 자신이 찰리를 만난 것이 신의 인도함이라고 말하지만,

도리어 개인 간호사이자 찰리의 남자 친구이었던 사람의

동생인 리즈는 오빠 역시 같은 교단에 있었고,

찰리와의 사랑에 빠진 것에 종교적 신념과의 내적갈등-
그리고 교단에서의 배척으로 인해 죽었다고 말하며
호통을 칩니다.

그놈의 '구원'을 외치는 토마스에게 일갈을 날리죠.

니가 말하는 구원따윈 없다고.


토마스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찰리를 찾아오지만,

뭔가 눈치를 챈 딸은 토마스에게 마리화나를 피게하고-

방문전도를 다니는 목적에 대해서 캐묻습니다.


그리고 토마스는 사실 자신이 교단에서 말로만 하는

전도보단 실천적인 전도가 더 맞다고 이견을 낸 것이

불화가 되었고, 교단의 돈을 들고 도망을 나와서
갈 곳이 없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는 그렇게 떠돌아다니면서 스스로의 

구원을 쌓아보려고 했던 것 같네요.

결국 그의 전도는 진실한 전도가 아닌

자기 성취적인 행위 였던 것이죠. 


그러다가 딸이 토마스가 마리화나를 피는 모습과 교단을
떠나게 된 이야기를 녹음해 인스타에 올리고,
토마스는 찰리를 찾아와 오히려 교단 사람들이 그걸 보고
다 용서해 줄 테니 돌아오라고 했다고 신나 합니다.


오히려 당신 딸이 덕분에 집에 간다고...


찰리 역시 그게 신기하고 기뻤지만,

토마스는 다시 그것이 자신을 여기에 보낸 신의 뜻이

맞았다고 하며  성경책을 꺼내 들고는 교리를 설파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받아들이면 나중에 죽어서

빛의 몸이 되는데 그걸 원하지 않냐고.

아이러니하죠 ㅋㅋ

자신은 비교리적인 행위로 문제가 해결되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정작 찰리에게는 다시 종교적 교리로 구원을 설파하는 모습.


찰리는 토마스에게 너네 교단의 교리대로라면 종말이 오면,

선택받은 자 144,000명만 천국에 가고 나머지 75 억 명은

지옥에 떨어지겠네?? 하며 콧웃음을 칩니다.


“애런이 나를 사랑해서 신이 그를 버렸다고??”

“네”


그리고는 자신의 제자였던 남자와의 사랑을

나눈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토마스는 여기서 이 이야기 듣는 것 자체를 상당히

불편해합니다. (자신도 비교리적인 행위를 했으면서)


“우리는 사랑을 했을 뿐이야”


찰리는 토마스를 몰아부칩니다.

동성애자인게 역겹냐고, 이런 내 몸이 역겹냐고.

토마스는 그렇다고 대답을 해버리죠.
그리고는 찰리가 준 성경을 집어 들고는 떠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찰리를 구원하려는 것을 그만두고

바로 떠나는 모습을 보며 자기 성취적 신앙의 모습이 맞다

라는 확신이 들더군요. (돌아갈 곳이 생겼으니)



이런 모습에서 약간 한국영화 <밀양>에서
전도연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결국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하겠다고 마음먹은

용기와 신앙은 진짜 신앙이 아니라 그냥 정신승리였던 거죠.

내가 용서를 안 했는데...

원수가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고 평안해하는 상황.

그것은 그저 탓할 대상을 신으로 돌리는 계기가 됩니다.


찰리는 그간의 모든 상처와 자기혐오를
버티지 못하고 결국 죽어갑니다.

리즈 역시 이젠 병원에 가라는 말을 하지 않죠.

오히려 자신의 오빠가 당신 때문에 구원을 받았고,

어차피 죽었을 거였지만-

당신 때문에 행복하게 더 살다가 갔다고 위로해 줍니다...

리즈의 오빠가 힘들어할때 찰리가 뭐라도 좀 먹으라고

난리를 쳤다는 대사를 들어보니,

애런은 음식먹는 것도 거부했던 모양이네요…

어쩌면 그랬던 애인을 잃은 뒤 그 상실감을

먹는걸로 채웠을지도 모릅니다.


딸 역시 죽어가는 찰리를 보며 병원에 가라고 하지만,

찰리는 말을 듣지 않고 그저 에세이를 읽어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과하죠.

너를 떠난 걸 후회한다고 미안하다고,


딸은 에세이를 보자 자신의 글인걸 알고 아빠가 그동안

자신의 글을 읽고 또 읽으며 그리워했다는 것에 울음을
터트립니다.


“그 에세이는 최고의 글이야”

“그 에세이는 너야”

“너는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이야”


활짝 열린 문으로 쏟아지는 빛 앞에 서서

에세이를 읽기 시작하는 딸, 엘리.

그때 두 발로 서서 한발자국씩 스스로 딸 앞까지

걸어오는 찰리..


딸과 처음 대면했을 땐 넘어졌지만,

이제 찰리는 딸의 앞까지 아무것도 지지하지 않고
한걸음씩 걸어옵니다.

딸 역시 그런 아빠를 보며 에세이를 끝까지 읊어줍니다.

그리고 찰리는 딸 앞에 서고 발끝이 서면서 공중으로 뜨며

화면이 하얗게 변하면서 영화가 끝나죠.

(이땐 음악속에 고래의 울음소리 비슷한 소리도 들리던)


결국 딸과 화해를 하고 모든 짐을 다 벗고 가볍게 공중으로
뜬 찰리는 진정한 구원을 얻은 거라는 생각이 들네요.


이런 마지막 부분은 <버드맨> 같은 느낌도 들었고,

<빅 피쉬>의 마지막 장면 같기도 했습니다.


제가 포인트를 '구원'으로 본 것은, 사람들을 구원하겠다고

신의 이름으로 구원을 강요하는 토마스의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진 사람으로써

고민하던 것들이 많이 공감되던 것이 있었고,


 자기혐오와 상실감으로 모든 걸
놓아버리고 자신마저 내던진 사람에게 정말로 필요한
구원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찰리의 대사처럼-
사람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남은 남을 구할 수 없죠.

강요되는 구원은 '구속' 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는 암에 걸려 죽어가는

진주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더 센 항암치료제를 써보겠다는 최도영 교수에게

스승인 오경환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명백히 죽음의 징후를 보이는 환자에게 과도한

시술을 하는 건, 환자가 안락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 하는 것 일 수 있어- 지금은 진주라는 꼬마에게는

아이스크림 하나가 더 위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구요.



이런 진정한 구원,

그리고 진솔한 메시지가 가져올 수 있는 해방.

이런 생각들이 머리에 강하게 돌던 영화였습니다.


현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많은 고난과 핍박들이

찾아옵니다. 그건 어쩌면 개인의 몫이죠.


진정한 구원이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아직도 머릿속에 돕니다.

 

그리고 브랜던 프레이져의 열연이 참 대단했고요.

현실의 필모가 겹쳐져 감정적인 울림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이후 이 영화를 가지고 ‘종교’ 와 ‘비만’ 에 대한

주제로 이어서 써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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