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이 지난 일이다.
나는 사기를 당했었다.
본인은 공공기관 납품 비슷한 일을 하는데, 공공기관은 특성상 일이 끝나면 돈을 주는 후불로 진행이 된다.
그러나 물건은 선불로 지급해야 하기에 자본이 필요하다. 공공기관의 눈먼 돈이기에 이익은 상당히 크다.
당연하지 않은가? 이쪽은 선불로 싸게 돈을 주고 사고, 저쪽은 후불로 큰 이익을 남겨 돈을 받는 일이니까.
문제는 먼저 자본이 있어야 한다.
돈을 빌려주면 높은 이자로 갚을 테니 돈을 빌려달라. 공공기관 관련 일이기에 절대로 떼먹일 일은 없다. 정말 아는 사람에게만 말을 하는 것이다. 절대 남들에게 말하지 말라, 그들을 끼워줄 자리가 없으니까.
소곤소곤 귀에 대고 하는 이 달콤한 말에 남편이 먼저 넘어가고, 나는 남편을 믿었기에 함께 넘어갔더랬다.
카드대출을 받아도, 더 높은 이자로 준다는 말과 지금 돈을 주지 않으면 기회를 잃게 된다는 말에, 신용 카드 3-5개를 통해 대출을 받아 돈을 건네주었다.
심지어 급한 마음에 친정언니에게 대충 둘러대고 2천만 원을 빌리기도 했다. 친정 언니는 하나의 의심도 없이 힘겹게 모은 돈 2천만 원을 급전이 필요하단 말 한마디에 바로 나에게 보내줬었다.
총금액은 살고 있던 집의 전세보증금과 같았다.
억대의 전 재산이었다.
결과적으로 약속된 이자는 총 100만 원, 3달에 걸쳐 입금된 것이 고작이고,
사기꾼은 잠적했다.
사기꾼은
본인을 고소하면, 그나마 돈 받을 가능성이 사라진다고, 지금은 줄 돈이 없으니 그냥 본인이 줄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 한마디 남기고 연락이 닿지 않았다.
사기꾼 집 앞에서 며칠 밤을 새기도 했고,
우편함을 뒤지기도 했다
영화 '황해'를 보면서
깡패를 섭외해서 사기꾼을 잡아다 돈 줄 때까지 족치면 어떨까 생각도 했다.
그래서 주먹세계와 가깝다는 먼 친척에게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친척은 "사기꾼은 답이 없어, 때려도 돈 안 줘, 그냥 고소해 그게 맞아. 감옥 가기 싫으면 합의금 얼마라도 줄 거야. 영화 같은 해결책은 요새는 없어."라고 말을 했다.
결국, 고소만이 답이었다.
법원 무료 상담도 해보고
인터넷에 광고를 건 모든 변호사들에게 전화도 해보고
시간당 10만 원을 내고 변호사 상담과 고려신용정보 등 추심회사와도 상담을 했다.
영화처럼 깡패 같은 추심회사는 없었다.
그저 "절차대로" 법을 통해서 사고를 수습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변호사를 통해 고소할까도 생각했으나,
변호사는 진정성이 없었다.
"아이고 뻔한 수법에 넘어가셨군요. 고소장 대리 접수 해드리고 일을 진행할 수는 있습니다. 수임료는 00입니다"
라는 말을 하는데, 나 대신 발 벗고 나서주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드라마, 영화 같은 정의로운 일꾼은 없다.
결국
인터넷을 뒤져서, 며칠에 걸쳐 고소장을 쓰고,
경찰서에 갔다가
검찰에 갔다가
여기 가라고 해서 여기 가면, 저기 가라고 하고, 다시 여기로 돌려보내는 일을 몇 번 당한 뒤
겨우 고소장을 접수했다.
담당 형사가 결정되고 통화를 했는데, 김영란법이라고 음료수 하나도 받지 않으면서
그냥 기다리라고만 했다.
매일 형사를 찾아가 인사를 하며 독촉을 하다, 문득 사기꾼이 사업용으로 가지고 있는 차량이 생각났다.
기억을 더듬어 그 차량 번호를 형사님께 주면서 한 번 찾아봐주시면 안 되냐고 부탁을 했다.
매일 아침마다 찾아오는 우리 부부를 귀찮게 여기던 형사는, 그날 밤에 우리가 준 차량번호를 바탕으로 사기꾼을 잡아왔다.
"나 지금 형사들한테 잡혀서 가는데, 담배하나 사다 주세요"
잡히자마자 전화를 한 사기꾼이 한 말이다.
잡혔다는 말에 경찰서에 달려갔지만, 담배도 샀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왜? 우리가 이 사람을 만나야 하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만날 때가 아니다. 만나면 "지금 풀어주면 돈 주겠다"라고 하겠지. 그래서 마음 약해져서 풀어주면, 다음에는 고소조차 못하게 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우린 경찰서 앞에서 면화를 하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사건이 진행되고, 검사가 면담을 오라고 했다.
그때 나는 35살쯤이었는데, 28-33 살 사이로 보이는 젊은 여자 검사님이었다.
깨끗한 피부에 강단 있어 보이는 턱을 가진 키도 크고 중성적 매력이 있는 멋진 검사님이었다.
그런데 첫마디가
"사기는 당한 사람도 죄가 있어요. 욕심을 내니까 그런 거예요. 그런 것은 반성을 해야 해요."
일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사기꾼은 전과 3범의 프로 사기꾼이었고,
이번에도 우리뿐 아니라 최소 3명 이상의 피해자가 있었고,
우리가 먼저 고소를 했고, 우리가 잡는데 기여를 해서인지, 우리 사건부터 재판이 시작된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끝까지 변호사 없이 사건을 진행했고,
재판장에서
남편은 덜덜 떨면서 "끝까지 용서를 빌지 않고, 돈을 갚을 생각이 없는 가해자에게 엄벌을 천벌을 내려달라"라고 의견을 말했다.
2-4억원의 피해를 끼치고
동종 전과가 3범인
사기꾼은 고작 징역 3년을 받았고
결국
2년 6개월 정도 살다가 가석방되었다.
가석방된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냐면,
한 밤중에 존재도 잊고 있던 카드가 사용되었는데 한도가 부족해서 미결제되었다는 문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분실신고와 도난신고를 동시에 했다.
알고 보니 그 카드는 사기꾼에게 한참 속았을 때, "필요할 때 쓰시라고" 남편이 사기꾼에게 건네준 카드였다.
그리고 사기꾼은 뻔뻔하게 석방된 뒤에 술과 담배를 사려고 그 카드를 내민 것이다.
도난카드 담당 형사가 CCTV를 보여주었는데, 그 사기꾼이 맞았다.
민사 소송으로 10년 동안 기존 사기 당한 금액을 달라고 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
이 참에 다시 도난 사건으로 붙잡고
추심을 다시 한번 요구할까 생각했으나.
내가 그러지 말자고 했다.
어차피 안 줄 놈이다. 이제 잊자고 사기꾼 들들 볶다가 살인자 만들지 말자고.
사기 사건을 해결하는 1-2년 동안, 정말 속상했던 것은
"사기 사건은 피해자가 욕심을 부려서 생긴 일이다"
라는 말이었다.
아니, 세상에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프로 전문 사기꾼이 판을 벌리면, 안 넘어갈 사람이 있을까?
"범죄의 재구성"도 안 봤나?
법적으로 피해자는 나인데,
왜? 너도 원인 제공을 했잖아 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나?
"억울하다.
나는 이 일을 꼭 글로 써서 널리 알리리라.
사기 사건 피해자는 교통사고 피해자처럼 '피해자'일뿐이라는 것을 말하리라.
그리고 사기꾼은 감방에서 최저시급 맞춰서 노역을 해서, 전체 금액을 상환할 때까지 못 나오는 것을 법을 만들어야 한다. 내 이 법안을 꼭 국회에 제출하고 통과시키리라"
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브런치를 시작했다.
두려웠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형사와 검사까지도
"사기 사건은 피해자도 잘못이 있어요"
라고 말하는 현실 속에서
그게 아니라고! 사기 사건 피해자도 "일반 교통사고 피해자처럼, 그냥 피해자라고" 소리친다고 뭐가 바뀔까?
괜히 가족들의 상처만 건드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직접 고소장 등 관련 서류를 쓴 경험
형사님께 잘 부탁하기
교도소 면회경험까지 이런 경험담들이
사기 사건의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나도 인터넷 보고 작성했는데
이미 다 있는 정보인데 싶어서 실질적인 의미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났다.
나는 하루하루 바쁘게 살았다. 잃어버린 돈을 메꿔야 했다. 사기꾼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왜 이런 사기를 당했는지 원인분석을 할 시간도 없었다.
사고는 일어났고
수습이 우선이었다.
100일도 안된 아기를 8시에 어린이집에 1등으로 등원시키고
출근을 해서 돈을 벌고
밤에는 사업을 위해 블로그를 하고, 관련 자료를 찾아야 했다.
남편의 정신건강과 우리 가족을 위해
매일매일
"어떤 사람은 100억 빚을 지고도 잘 살고, 또 도전해서 1000억 부자가 된다. 우리도 이 빚만큼 능력이 있는 것이다. 도전하고 열심히 살면 된다"를 소리 내고 읊으며
일을 하고 또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린 장사를 시작했고, 눈물 나는 고생으로 사기당한 것은 4년 만에 수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일을 글로 써서 널리 알리리란 생각도 어느새 잊고 있었다.
나만 사기당한 것도 아닌데, 다들 잘 사는데, 굳이 내가 나서서...... 아니 "내가 쓴다고 누가 봐주기나 할까" 싶어서
그렇게 억지로 잊었다.
내가 소설가가 되고 싶어, 문예창작과에 입학을 했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
명절에 종갓집인 우리 집에 모인 할아버지 할머니들 모두 "내 인생 이야기를 글로 쓰면 베스트셀러 될 건데, 들려주랴?"라고 말씀들을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이지, 모든 사람들 각자 하나씩의 인생은
드라마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누군가는 그것을 글과 그림과 조각 영화 등으로 풀어내고 설명하지 않으면 못 견딜 뿐이고.
누군가는 그렇게 풀어내는 것 대신에 더 많은 일을 하고, 다음 도전을 하며, 감정을 이겨내고, 현실에 더 파묻혀 극복하며 살아나가는 것뿐이다.
아마 나는 후자일 것이고, 그래서 전업 작가는 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썰을 풀어본다.
이제는 정말 괜찮아졌기에
그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예술은 좀 멀어지고 장사꾼이 되었지만
그 결과 아이들은 나름 평범하게 잘 크고 있으니까.
큰 일을 겪으면서 남편과의 부부사이도 더 끈끈해졌으니까.
정말 전화위복이라고 생각을 하고, 정말 그 사기꾼을 용서했다.
그래봤자 그 사기꾼은 지금도 활발하게 사기를 치고 감옥을 오가고 있을 테지만
정말 타고난 재능의 프로 사기꾼으로 그 사람의 직업이니까.
암튼 정말 이제 잊었기에 차분하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글을 쓴다고 널리 알려지지는 않겠지만
몇 명에게는 공감되는 글로,
작은 작가는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