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또 오랜만에 희곡읽는 모임에 나갔다.
7시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거의 쉬지 않고 셋이 함께 한 작품을 다 읽었다.
정의에 대한 희곡이라서 다 읽고 토론을 좀 하면 좋았겠지만
인원도 너무 적고, 밤 늦은 시간이라 매우 짦게 이야기하고 나와야 해서
많이 많이 아쉬웠다.
작품은 스위스인지 독일인지 작가의 작품이었는데
'노부인의 방문'이란 작품이었다.
완전 재벌이 된 노부인이, 망해가는 고향으로 온다.
파산한 고향 주민들은
완전 대 부자인 노부인이 자선을 펼치러 와준다고 생각하고 환영하는데
노부인은 공개적으로
엄청난 돈을 줄 것이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은 나에게 고통을 준 주민 중에 한 사람을 죽여달라는 것.
노부인은 그것을 정의라고 믿는다.
주민들은 그런 비윤리적인 행위가 정의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돈 앞에서는 모두 짐승이 되고......
이 작품은 영화로 보면 더 재미있겠다 싶었다.
변해가는 주민들의 심리를 눈빛으로 봐야 생생할 것 같았다.
그러나 충분히 희곡으로도 정말 재미있었다.
사실 이 작품을 읽고,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게 정답일 것이다.
노부인은 왜 이것이 정의로운 해결법이라고 생각했을까?
단순한 복수와 정의로운 해결방법의 차이는 무엇일까?
주민들은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왜? 남자 주인공은 위협속에서도 도망가지 못했을까?
남자 주인공에게 정의란 무엇일까?
등등 말이다.
그런데 자꾸 나는
도대체 가난한 떠돌이 창녀가 어떻게 대 부자가 되었을까?
어떻게 여러 남자들을 거느리고, 이혼과 빠른 재혼을 할 수 있었을까?
그것만 궁금한 것이다.
특히, 한 마을을 어떻게 구매할 정도로 부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구매 방법은 무엇이었을지
정말 법 위에 돈이 있는게 현실적인지
이런 것만 궁금할 따름이었다.
( 그래서 나 때문에 토론이 제대로 안 된 것 같다......)
얼마 전, 큰 딸이
'엄마 내가 레즈비언이고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 뭐라고 할거야?" 라고 물어봤었다.
나는
"그렇게 특별하게 살고 싶으면 부자가 되어야 해. 그 여자가 부자인지 부터 볼 거고, 네가 부자가 될 수 있는지부터 볼꺼야. 돈 없으면 평범하게 살아야 하니까. 성소주자는 정말 살기 힘들어. 그러니 더욱더 부자가 되야 한다."
라고 대답했다.
딸은 나에게 자본주의 괴물이라고 하면서, 현실적인 조언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정말 나는 책 하나를 읽어도 자본주의로만 해석하는 그런 괴물이 된 것일까? 싶어서 좀 속상했지만.
뭐... 하나라도 주체성이 있으니 괜찮은거 아닌가 하는 자위로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본주의 괴물이라기엔
내가 돈이 너무 없다.
암튼
어떻게 해석하고 감상하던지
책을 읽고,
그리고 함께 책을 읽는 것이 정말 행복했다.
다시 책을 만질 수 있고, 책을 사고 하는 행위가 굉장히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여럿이 읽으니, 외롭지 않아서 좋았다.
중고등학생때 책을 읽어도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서 정말 외롭고, 제대로된 이해를 하지 못해서 내가 잘 못 자란 부분이 많다고 항상 생각했는데
더 늦기 전에, 이 나이라도 함께 할 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정말이지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에는 주인장에게 좋은 선물 하나 들고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