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선배를 만나며 또 배웁니다.
"용용 씨, 얼마나 용기 있었는지 제가 부러워했는지 아나요?"
퇴사 후, 두 달이 지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이전 회사 사람, 의외의 대리님이다. 퇴사 전에 나의 퇴사를 너무 늦게 전해 들어서 이후 다시 날짜를 잡아 이렇게 뵙게 되었다.
회사에서 가장 멋지다고 생각했던 대리님이다. 늘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가 멀리서까지 마구 느껴지는 분, 일을 겉으로만 하지 않고 마음 다해 하시는 분, 매일 회사를 여행 간다는 기분으로 즐겁게 출근하신다고 한 분, 이런 분을 만난 것이 감사하다.
그런 분이 더 큰 꿈을 꾸기 위해 나가는 내가 부러웠고 용기 있었다고 하신다. 그 말을 듣는 나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나 돌아보며 잠시 부끄러움을 느꼈다. 실은 그분도 마음속에 하고자 하는 바를 계속 간직하며 이제 그것을 풀어내야 할 타이밍이 온 것 같다고 하신다.
사실 경력도 나이도 더 있으신 분이, 또 회사에서 누구보다 인정받는 분이, 그런 결정을 하신다는 것은 용기의 무게를 잴 수 없지만 아마 내가 냈던 무게보단 몇 배는 더 무거운 용기일 것이다. 하지만 적당히 걸치며 꿈을 펼쳐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기 전에 꿈꾸었던 가슴 뛰는 일을 해야겠다 하신다. 그녀는 죽는 순간에 과연 지금 이 일을 하며 사는 것이 마지막이면 아쉬움이 없을 까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 일도 사람도 너무 좋지만, 자신이 진심으로 더 원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가슴 벅차 하며 말똥말똥한 눈을 드러내시며 이야기하시는 게, 내가 다 벅차며, 내 안에 죽어가던 것들이 살아나려 했다. 내가 여행을 통해 느낀 것을 이 분은 여행도 안 하셨으면서 어떻게 느끼고 깨달으셨을 까 괜히 시기심이 생길 뻔했다.
늦은 때란 없다.
첫째, 만약 내가 곧 죽을 것이라면 앞으로 3년밖에 살지 못한다면, 그렇게 인생이 덧없는 것인데 하고자 하는 것을 해야 하지 않을 까?
둘째, 만약 내가 100세 인생을 산다면, 아직 1/3도 살 지 못했는 데 어떻게 나이가 많다고 할 수 있는 가? 이렇게 어린 나이에 한창일 이때에 하고자 하는 바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 까?
그녀의 말에 나 역시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글을 쓰고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인생에 큰 감사 거리다. 나의 걸음 역시 그녀에게 도전을 주었고, 그녀의 이야기 역시 오늘 내 길 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