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내 커리어에서 잊을 수 없는 해

직장인으로서의 새로운 장, 매니저

2019년은 내 커리어에서 잊을 수 없는 해로 기억된다.

회사원으로서 10년차이기도 했고, 그 해에만 Audit을 3개 이상 무사히 통과했으며, 부서 예산을 지켜냈고, 무엇보다 처음으로 관리자로서의 경력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관리자가 되긴 싫지만, 연봉은 올랐으면 좋겠다는 직장인들이 요즘 많다고 하는데, 그만큼 관리자가 되는 것과 일반 직원으로 일하는 것은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기에 나온 말이며, 때문에 관리자가 된 그 해가 내 커리어의 큰 전환점 중 하나라 유독 기억에 많이 남는다.


요즘은 스타트업이 많아지면서 연차에 관계없이 실력에 바탕하여 팀장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당시만 해도 사회 분위기는 달랐다. 일정 수준 이상의 연차가 있고, 그 중에서 뛰어난 사람이 관리자 승진 대상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내가 말하는 관리자는 단순한 업무 리더가 아닌, 인사권을 가진 피플매니저를 의미한다.

물론 내가 있었던 I사는 외국계 기업이었기에 한국 회사만큼 연차를 중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태프 조직 중 가장 어린 나이에 매니저가 되었다는 자부심은 내게 큰 의미가 있었다. 물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는데, 내가 속한 구매조직에서는 아시아퍼시픽, 글로벌 모두 이견 없이 나를 추천했지만, 한국의 CFO(미국인)는 나이가 젊다는 이유로, 본인과 협업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고, 그와의 인터뷰는 기억하기 싫을 만큼 힘겨웠다.


Once you are being a manager, you will be handle various tasks simultaneously, how can you control all those things? (너가 매니저가 되면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할텐데, 어떻게 컨트롤 할래?)


전체적인 맥락이 있었다면, 해당 질문이 인터뷰어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 될 수도 있겠으나 당시의 그가 나를 바라보는 상황과 의도를 생각해보면, 과연 그 질문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회사원으로서 중요한 것이 우선순위를 정해서 일하고, 덜 중요한 일은 과감히 치우고, 효율성을 높이는 것인데, 본인 조직내에서 검증받은 사람에게, 해당 부서의 일도 잘 모르는 이가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확인하고자하는 것보다 질문을 위한 질문의 목적이 더 컸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6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봐도, 그 인터뷰는 나에게 그렇게 기억된다.

어쨌든 그는 자신의 입장을 어느 정도 드러냈지만, 결국 구매조직과 인사조직의 승인 덕분에 나는 피플매니저가 될 수 있었다.


미국 드라마를 보면 종종 관리자가 “You’re fired”라고 샤우팅하고, 대상 직원이 박스를 들고 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단지 드라마의 연출이 아니라, 미국 노동시장과 법적 구조가 반영된 현실이며, I사 역시 한국법을 따르는 한국법인이지만, 문화와 사고방식은 본사인 미국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즉, 해고가 자유로운 만큼, 관리자가 가진 권리와 책임 또한 막중하다. 그에 따라 더 많은 정보 접근 권한, 더 큰 보상,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지만,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성과도 따르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개념적으로 한국 기업도 비슷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차이가 있다.

한국은 아직도 학연, 지연 등의 이유로 자리보전이 가능하고, 실적과 무관하게 직급이 유지되는 경우도 많다. 반면 미국 기업, 특히 오래된 외국계 기업은 다르다. 주주와 이사회 중심의 구조 속에서 CEO가 실질적 책임을 지며, 회사 운영은 시스템과 절차에 기반해 이뤄진다. 한국 지사 내부에서야 ‘라인’이라는 개념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본사 차원에서 볼 때는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대장인' 식의 풍경일 뿐, 전반적인 문화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어쨌든, 기쁨과 자부심이 있는 위치였던 만큼, 책임도 막중했던 자리였다. 그리고 그 무게가 결국 내가 11년 동안 다닌 회사를 떠나게 된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했는데, 이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고자 한다.



처음 매니저가 되었을 때, 선배 매니저들로부터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들었는데, 그중 핵심은 바로 어제까지 함께 동료로, 친구로, 형·동생으로 지내던 사람이 관리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에 있었고, 공통된 조언은 이것이었다.



외롭더라도, 이제는 거리를 두고 관리자로서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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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가 처음이라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었던 나로서는 그 조언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초반에는 정말 그렇게 행동했다. 그로인해 나는 회사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통찰 중 하나를 얻게 되었지만, 동시에 가장 큰 시행착오의 시작이기도 했다.


여러분들이 한번 상상해보길 바란다.

어제까지 같이 점심을 먹고 웃고 떠들던 동료가, 갑자기 엄숙한 태도로 내 업무에 대해 지시하고, 보고를 요구하며, 존대를 쓰기 시작한다면 어떨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려 “이직해야 하나…?”, “쟤가 뭐가 잘나서?”, “왜 갑자기 무게 잡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먼저 들 것이다.

그리고 그 반대 입장인 관리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동안 자신이 잘 해왔던 커뮤니케이션 방식, 관계 방식, 일하는 스타일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면, 그 결과는 분명히 더 나아지기보다는 오히려 ‘평범해지는 것’일 수밖에 없다.

나를 걱정하고 아껴주던 선배 매니저들의 조언이었지만, 그 조언을 너무 충실히 따름으로써 나는 오히려 나답지 못한 4~5개월을 보내야 했다.


결국 깨달았다.

매니저도 회사원이고, 팀원도 회사원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회사는 본질적으로 ‘일을 위해 모인 조직’이지만,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기도 하기에, 사람 간의 관계는 업무와 성과, 더 나아가 일상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2020년부터는 다시 본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내가 원래 인정받았던 장점들—적극적인 협력, 수평적인 소통, 솔선수범—을 되살리고, 부족한 부분은 동료들과 협력하며 채워나가기로 했다. 권위를 세우기보다는 리더십을 보이고, 팀과 함께 성장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나는 매니저로서 조금 늦었지만 내 방식의 길을 찾았고, 그 결과 팀도 조직도 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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