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투자에서 실체와 본질
오늘 포스팅에서 얘기할 내용은 재직했던 S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음을 미리 밝혀둔다.
직전에 투자유치 관련 글을 올렸으니, 이번엔 그와 연관된 이야기를 조금 더 다뤄보고자 한다.
몇차례 스타트업 투자업계 경험으로부터 얻은 관점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 투자를 유치 하는 이유는 명확한데 기술과 아이디어(T)로 창업은 했지만 자본(K)과 노동(L)이 부족하다면 초기에 폭발적인 성장을 위한 에너지가 부족할 수 밖에 없고, 때문에 지분의 일부를 제공하고, 대가로 자금을 유치해 인력을 충원하고(L), 기술을 고도화(T)하며 시장에 제품과 서비스를 안착시키기 위함이다.
투자를 통해 적절한 자원배분과 용단있는 자본투입으로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기업 가치는 상승하고, 투자자는 그 상승분만큼 자본소득을 얻는 win-win 이겠지만, 반대로 사업이 실패할 경우, 투자자는 단순한 손실을 넘어 기회비용까지 떠안는 상황이 된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 시중의 투자금의 원천은 대부분 세금이므로(투자사는 보통 자금을 운용하고, 그 자금은 대형 금융기관이나 정부에서 나온다), 투자의 실패에 따른 피해는 국민들이라는 점에서 투자유치를 진행하는 기업을 꼼꼼하게 검증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투자했다”는 표현은 동일하게 쓰이지만, 매수자와 매도자의 입장에서는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시장 내에서 기존 주식을 사고파는 것은 단순 매수/매도로, 기업이 실제로 자금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투자유치라 볼 수 없다.
반면, 기업이 자본 조달을 위해 신규 주식을 발행하거나 자사주를 매각하는 행위는 명확한 투자유치다.
즉, 투자유치란 단순히 자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적극적으로 매수자를 찾아 설득하고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이다.
투자자는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실사와 검토를 진행하고, 투자유치를 시도하는 기업은 자사의 미래를 최대한 매력적으로 포장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마케팅, 피칭, IR자료는 갈수록 정교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자는 단순히 말과 자료에 의존해서는 안 되고, 실제 운영 현황과 기술의 실체를 집요하게 검증해야 한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는 메타와 쿠팡이 있다.
두 회사는 초기에 Accel, Softbank 등의 유력 VC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고, 이들 투자자는 막대한 수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 성공의 이면에는 수많은 IR과 미팅, 자료 검토뿐 아니라 페이스북 트래픽, 쿠팡의 거래량 같은 핵심 KPI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있었다. 결국 투자자들은 창업자의 말뿐만 아니라, 숫자와 지표, 기술검증으로 투자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반면, 모든 스타트업이 그런 것은 아니다
실패 사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테라노스와 니콜라인데 두 기업 모두 창업자의 화려한 외모와 언변, 마케팅과 PR을 통해 투자유치에는 성공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테라노스는 실제로는 불가능했던 혈액 검사를 ‘된다고’ 발표했고, 검사 결과는 오류 투성이었으며 심지어 일부 올바른 결과도 타사 장비로 수행한 내용이었다.
니콜라는 수소트럭이 언덕을 오르는 영상까지 공개했지만, 알고 보니 내리막길에서 굴린 조작된 영상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이 보이는가? 기업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독자적인 기술과 고객을 사로잡는 품질과 영업망보다는 겉으로 보여지는 부분(앞서 말한 화려한 외모의 창업자와 언변, 완벽한 스토리의 IR자료, 열정적인 프레젠테이션)만 신경썼고, 투자자들 역시 이것만 보고 투자를 집행했다는 것이다. 정작 기술의 실체나 사업 운영 구조의 신뢰성, 현금흐름 등의 본질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투자를 했는데, 이는 도박과 다름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투자금은 전액 손실되었고, 기업은 소멸되었다.
결국 투자자가 해야 할 일은 문서로 포장된 IR과 발표에 그치지 않고, 실제 현장을 보고 기술을 확인하는 것이다.
테라노스였다면, 실험실에 직접 방문해 기기가 작동하는지를 봐야 했다.
니콜라였다면, 수소트럭 생산 현장을 확인하고, 실제 출고 현황을 체크해야 했다.
이런 기본적인 실사 절차가 진행되었더라면, 아무것도 없는 그 기업에 그렇게 높은 가치로 투자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비상장 회사의 주식은 시장에서 공식적으로 거래되는 것이 아니므로 가치를 산정하는것이 쉽지 않다.
때문에 많은 창업자들이 어떻게든 가치를 올리려고 하고, 투자사들을 깎으려고 하며, 그 중간에서 만나 투자가 성사되게 된다.
비상장주식을 평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peer라고 하는 유사 기업과의 비교인데, 이는 주식시장의 테마주와도 같아서 얼마전만 하더라도 세계적으로 이차전지 관련 주식이 핫했고, 덩달아 이차전지 관련 비상장기업들의 가치도 높게 평가되었다.
최근에는 AI 열풍이 거세지면서, 정부에서도 국가대표 AI 기업을 뽑는다고 할 만큼 핫한데 그 상황을 직접 필드에서 본 결과 거품이 너무 심하다는 느낌이다
요즘은 스타트업들의 이름을 보면 ‘AI’ 또는 ‘에이전트’가 사명에 있는곳도 많고, 제품이나 기술에 AI가 사용되지 않는곳을 보기 힘들다.
AI 솔루션, 불량검출 AI, 업무 자동화 에이전트, 이상반응 감지 AI, AI에 기반한 처리, AI가 분석 등등.
문제는 실제로 AI를 개발하지도 않고 개발할 역량도 없으면서 남이 개발한 AI를 가져다 쓰면서 스스로를 AI기업이라고 소개한다는 것인데(이름에 닷컴 붙이면 가치가 올라가던 그 시절과 뭐가 다른가), 이를 단순히 포장만 AI처럼 보이도록 한 것인지는 투자자가 철저히 검증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AI모델 중 Foundation은 OpenAI구글/앤트로픽/알리바바/메타 등 몇몇 기업들만 가능한 영역이며, 이들 외에는 오픈소스로 공개된 기술을 가져다 서비스로 묶어내는데 이것을 래핑이라고 한다. 래핑은 타인의 기술을 쓰기 때문에 기술적 독창성이 없다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 사업의 본질은 돈을 버는 것이므로 래핑을 통해 사업을 성공하는것을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퍼플렉시티도 AI래핑 기업이다).
다만 문제는 래핑을 하는 기업들이 래핑사실을 숨기거나, 개념만 있으면서 투자자에게는 AI를 개발했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업무에서 ChatGPT 쓰는 것을 두고 AI업무자동화 기업이라고 본인을 포장하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이들 기업이 AI를 가장 잘 활용하는 분야는 투자유치이다.
생성형 AI의 발전으로 인해 그럴싸한 IR자료를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시대이고, 앞서 언급한 테라노스와 니콜라와 같은 사례가 훨씬 쉽게 나올수 있는 시대로 다음과 같이 활용 될 수 있다.
ChatGPT를 활용해 ‘40대 B형 마른 체형 여성을 위한 혈액 분석 리포트’, ‘언덕을 올라가는 수소트럭 영상’ 을 만들어 데모라고 투자사에게 보여줄 수 있고, 이에 대한 진실 여부는 검증이 사실상 실제를 보지 않는 이상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발표자료와 미팅만으로는 이렇게 생성된 자료가 실제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지 알수 없다.
그럴듯한 피칭, 세련된 문서, 매끄러운 영상만으로는 이제 투자 근거가 되기 어렵다.
투자자들이 확인해야 할 것은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다음 네 가지다:
기술의 실체 – 설명 가능한 수준을 넘어,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지. 혹시 ChatGPT와 같은 기술이 뒷단에 있는것은 아닌지?
팀의 역량 – 팀은 해당 기술에 대한 깊이가 있는가?
운영의 진정성 – 일관된 수치와 반복 가능한 실행 프로세스가 있는지
시장 반응 – 고객의 반응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이 네 가지 중 하나라도 부족하거나 조작되었다면, 기업은 성공이 아닌 테라노스와 니콜라의 재현인 것이다.
과거의 벤처기업 투자는 ‘비전’이 가장 중요했지만, 이제는 ‘실체’ 역시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물론 낭만있게 아이디어와 포부와 비전에 반해 투자하는것이 필요하지만, 그렇다면 그에 맞는 가치를 인정받고 투자를 받으면 된다.
그러나 AI를 활용하여 없는것을 있는것처럼 포장하고, 이를 토대로 속아넘어간 투자자에게 높은가치로 투자 받는것은 사기 행위이다.
여전히 시장에서 실체보다는 감에 의한 투자를 결정하는 것을 많이 보고 있다.
투자자는 감에 의해 투자하고, 투자유치 희망 기업은 상업용 AI를 활용하여 본인들을 포장하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라면 괜찮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돈의 60%는 국민들이 낸 세금이므로 좀 더 면밀히 실체를 검토하는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투자유치 업무를 하면서 본 기업가들의 대부분은 정직하게 본인의 기술을 가지고 사업의 성장을 위해 투자를 활용 하지만, 유독 AI 섹터는 실물 확인이 어려운 특징때문인지 본인이 가진 것보다 많은 것을 욕심내고, 나아가 거짓으로 가득찬 PR을 하는 회사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AI 투자를 검토하는 분들께 꼭 하고 싶은 말이있다. 그 회사 솔루션과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신게 맞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