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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방랑객 Nov 16. 2019

폐선된 유바리 지선이 말해주는 유바리의 현재

세키쇼선(石勝線) 두 번째 이야기

  세키쇼선은 본선과 지선으로 나누어진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선이 폐선되면서 자연스럽게 본선과 지선을 구분할 필요가 없어져버렸다. 불과 올해(2019년) 3월까지도 운행을 했었던 세키쇼선의 지선구간은 유바리 지선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노선이었다. (편의상 유바리 지선으로 통일하겠다)


유바리 지선은 세키쇼선의 일부일 뿐, 별도의 명칭은 없다.



  유바리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노선이어서 유바리 지선이 된 이 노선은 시작과 끝도 모두 '유바리'가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서 살아남은 역은 세키쇼선 본선이 지나는 신유바리역 뿐이다.


유바리 지선의 시작인 신유바리역. 이제 열차를 대신해서 승합차량(버스)이 대신한다.


  일본에서 지명 이름 앞에 '신(新)'이 들어가면 신칸센 역일 가능성이 높은데, 홋카이도는 신삿포로, 신아사히카와 등 신칸센과 무관한 역들도 이렇게 '신'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역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신' 이 들어간 역은 대체적으로 큰 도시의 이름 있는 역들에 한해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전성기의 유바리는 삿포로에 버금가는 수준의 엄청난 대도시였던 것으로 추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은 유바리시와 함께 그 지위가 급격히 떨어져 버리고 만다. 그리고 유바리 시내를 관통하는 철도가 지도 상에서 사라지기에 이르렀다.

  물론 사라진 철도를 대신해서 대체 버스가 운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철도가 가졌던 그 분위기를 대체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아무리 대체 버스가 열차 시간에 맞춰서 운행을 한들, 철도에서 느낄 수 있는 풍경을 그대로 재현해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신유바리역은 유인역과 무인역을 오가는 역으로, 영업시간이 지나면 무인역이 되어버린다.


  유바리 지선 소속 역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신유바리역은 시간대에 따라 유인역이 되었다가 무인역이 되는 역이다. 승객이 많은 낮시간은 역무원이 역에 상주해서 승객들을 응대하거나 승강장 통제를 하고 있지만, 이른 시간대나 늦은 시간대는 상주인원이 없다.

  아무래도 무인역으로 바뀌는 시간대는 승객이 많지 않을뿐더러 열차 역시 자주 들어오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영업적자가 천문학적으로 쌓여가는 JR홋카이도에서 비용을 줄여보고자 하는 특단의 대책의 일환이 아닌가 싶은 조치가 아닐까 싶다.

  비록 유바리 지선의 폐선은 막지 못했지만, 남은 세키쇼선의 유지를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JR홋카이도 소속의 역은 이렇게 시간대 별로 유무인역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역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운영이 어려운 시골 철도를 관리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이 보였다.


신유바리역에서 유바리 시내까지는 약 16km. 그 구간을 유바리 지선이 달렸던 것이다.


  유바리 지선이 있을 때는 유바리 시내도 충분히 역세권이라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유바리역에서 유바리 시내까지 약 16km나 되는 거리가 말해주듯, 신유바리역만 남은 현시점에서 유바리 지역은 역세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멀어져 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제 이 역들은 더 이상 역으로써 기능을 할 수가 없다.


  그 16km 사이에 자리한 중간역들도 이제 더 승객의 발길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지역 주민들의 손길에 의해 단정한 모습은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 역들이 기차역으로써 지위는 잃었을지 모르겠지만, 대체 버스의 정류장 역할로 새로운 지위를 부여받은 것이다.

  대체 버스는 열차가 다니는 시간에 맞춰 유바리 지선의 중간 역들을 한 번씩 돌아주면서 폐선된 철도로 인해 대중교통을 잃어버릴 뻔 한 지역 주민들에게 구세주가 되어주고 있었다. 느낌은 다르지만, 운송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는 다행히 큰 차이를 느끼기가 어려웠다.


보수가 한창인 유바리 지선. 그러나 이 공사는 무의미하게 되었다.


  유바리 지선은 폐선되기 직전에도 유실된 선로의 보수공사로 인해 한동안 운행을 하지 못했었다. 일반적으로 '폐선이 확정된 노선을 굳이 보수공사를 하면서 복구를 시킬 필요가 있었을까?'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철도를 보수하는 입장에서는 또 그런 것이 아닌가 보다. 오히려 폐선을 하더라도 전구간을 걸쳐서 열차가 한 번이라도 완주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 더 가치가 있는 것이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하나의 노선이 폐선이 될 때, 철도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역 주민들이 환송회를 열어주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노선이 폐선되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갑자기 운행을 중단시켜버리면 열차를 떠나보내는 사람들의 마음은 더 허전할 것이다. 일본에서 철도는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니라 정말 하나의 인격체로써 존중받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철도 환송회 때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빈집이 늘어난 주택가. 그래서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다.


  유바리역에 가까워지면 기숙사처럼 보이는 주택들이 줄지어 있는데, 현지 주민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는 오래전부터 빈집이 늘기 시작해서 지금은 살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유바리는 석탄이 한참 생산될 때 그 근거지로써 무서운 기세로 발전을 해나가던 도시였다. 그러나 석탄의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급격하게 수축되어버리고 만다.

  산업구조의 변화가 하나의 도시를 얼마나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유바리가 보여주었다. 또 무리하게 도시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도 보여주었다. 현재 유바리는 너무 과도한 시설들로 인해 흉물로 바뀌어버린 시설들이 지금도 처치 곤란하게 놓여있다.


유바리의 성공과 실패를 함께 맛본 유바리 호텔.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유바리역 입구에 위치한 호텔이다. 이렇게 번듯하게 잘 지어놓은 호텔도 현재는 영업을 하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 '과유불급' 항상 넘치는 것은 결코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함을 유바리를 통해 다시금 깨우치게 된다.


레스토랑으로 변해버린 유바리 역사(驛舍).


  유바리 지선의 마지막인 유바리역은 이제 역이 아닌 다른 형태의 건물로 바뀐 지 오래다. 이탈리아 국기를 연상하게 하는 창문 위 장식이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마치 교회 건물을 보듯 높은 곳에 자리한 시계와 뾰족한 지붕. 오히려 이 모습이 기차역으로써 유바리역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유바리역 역명판.


  그 뒤편에는 유바리역의 흔적이 남아있다. 녹슨 흔적에서 오랜 세월 이겨내 온 유바리역의 고뇌가 느껴진다. 그러나 이제 이 역명판도 역할을 할 수가 없다. JR홋카이도 역 가운데 이렇게 역 번호가 있는 역은 그래도 꽤 규모가 있는 역이지만 유바리 지선의 역들은 예외였나 보다.

이제 이곳으로 열차가 들어오는 일은 없다.


  승강장은 의외로 상당히 조촐하다. 들어온 열차는 다음 들어올 열차를 위해 반드시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이곳. 선대가 후대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는 지구 상의 생명체가 살아가는 원리를 그대로 풀어놓은 것 같다. 철도의 기능은 잃었지만, 과거사 자료로 활용하기에는 아직 가치가 있어 보이는 유바리 지선. 이 흔적만큼은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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