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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방랑객 Feb 16. 2020

나가사키로 가는 서로 다른 두 길

나가사키본선(長崎本線) 두 번째 이야기

  나가사키본선은 나가사키역에 가까워질 때 두 갈래 길로 나누어진다. 기존에 있었던 선로를 개량하기 위해서 새로운 경로로 노선이 하나 더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존에 있던 선로는 구선, 새로 만든 선로는 신선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우리나라처럼 일본도 속도 향상과 사고 예방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철도를 개량하고 있다. 하지만 필요성이 느껴진다면 기존 철도도 같이 안고 가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였다면 폐선 처리되었을 나가사키본선의 구선은 승객의 편의를 위해 신선이 생겼음에도 지금껏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가사키본선은 구선과 신선 이렇게 두 갈래길로 나누어진다.


  속도를 중시하는 특급열차는 모두 신선으로 다니지만, 보통열차의 경우 신선과 구선 모두 운행하고 있기 때문에 요금표에는 구선 구간만 눈에 띄게 표시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신선의 경우 별도로 표기하지 않고 나가사키본선 내에 들어가 있다.


구글 지도상에서 본 두 노선. 구선이 위 신선이 아래.


  나가사키역의 다음 역인 우라카미역에서 갈라지는 구선과 신선. 구선은 산이 없는 북쪽으로 돌고 돌아 키키츠역으로 돌아오지만, 신선은 산을 그대로 관통해서 최대한 직선으로 이어져있다. 그래서 신선은 역과 역 사이에 터널이 많다.


지도를 조금 확대해보면 구선과 신선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좌측이 구선, 우측이 신선)


  신선의 경우 축소된 지도에서 보기가 힘들지만, 노선을 크게 확대해보면 나가사키본선 신선이라는 글자를 볼 수 있다. 구선의 경우 나가요 지선이라는 이름이 별도로 붙어있다. 구선의 경우 해안가를 따라 그대로 이어져 있어서 곡선 구간이 더욱 두드러진다.


열차 안내에는 이치누노(신선) 경유와 나가요(구선) 경유라고 표시하고 있다.


  열차 시간표에는 신선과 구선이라는 표현 대신 이치누노(신선) 경유와 나가요(구선) 경유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치누노로 가는 열차는 전동 열차와 디젤 열차 가리지 않고 다 운행이 가능하지만, 나가요로 가는 열차는 디젤 열차만 운행이 가능하다.


행선지판에도 경유 표시를 통해 구선으로 가는지 신선으로 가는지 알 수 있게 해 놓았다.


    이 구간을 운행하는 열차 중 구선으로 다니는 열차는 행선지판에 나가요 경유라는 글씨도 작게 적어놓았지만 신선을 운행하는 열차는 별도로 이치누노 경유라는 글씨가 없다. 구선이 이제 메인에서 벗어나 다른 노선처럼 취급받는 것 같다. 나가사키본선은 모든 구간에 걸쳐 전기 설비를 갖추었지만 구선만 유일하게 비전철 구간이라 더 그렇게 느껴진다.


구선과 신선이 나눠졌다 합류하는 키키츠역과 우라카미역.


  구선과 신선이 갈라지는 키키츠역과 우라카미역. 나가사키본선이라는 하나의 노선 외에 다른 노선은 없지만 두 역의 역명판에 적힌 인근 역은 3개다. 하나의 역만 있는 곳은 합류 후 이어지는 역이고 두 역이 있는 곳은 구선과 신선으로 나누어진 후 처음 나오는 역이다. 이 모습은 우리나라 남해고속도로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나의 고속도로지만 두 갈래로 나눈 남해고속도로.


  부산에서 창원을 거쳐 진주까지의 구간은 상습 정체 구간이어서 왕복 4차선에 불과했던 도로를 왕복 8차선까지 확장하였는데, 특이하게 창원 구간은 나가사키본선의 구선과 신선처럼 기존 도로를 놔두고 새로운 경로로 고속도로를 하나 더 만들었다. (지도 상의 위쪽 도로, 지도 출처: 네이버 지도)

  새로 만든 구간은 왕복 8차선이 아니라 왕복 4차선이었고, 나가사키본선의 신선처럼 터널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구간(도로의 위)이다. 그래서 기존 노선(도로의 아래)에 비해 노선이 짧아졌고, 직선처럼 이어져 있다. 그리고 양 끝으로 다시 합류하는 구간(산인 분기점, 창원 분기점)이 있다. 거기에 신선이 본선의 지위를 얻고 구선이 지선이 되어버린 것도 똑같은 상황이다.


구선과 신선의 갈림길. (좌측이 키키츠역, 우측이 우라카미역)


  그렇게 한 곳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양 끝에서 모두 만나는 구선과 신선.


구선은 비전철화, 신선은 전철화 구간이다.


  우라카미역에서 키키츠역 방면으로 가는 구간은 마치 복선 구간이 이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선로 위쪽을 보면 구선 구간인 좌측은 전기 설비가 없고 신선 구간인 우측은 전기 설비가 갖춰져 있다.

  노선 이름도 같고 아주 짧게나마 진행방향도 같지만 우라키미역을 지난 이후에는 별도의 두 노선이 평행하게 이동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되었다. 이미 우라카미역을 출발함과 동시에 구선으로 갈지 신선으로 갈지 운명이 정해져버린 것이다. 물론 선로를 바꿀 수 있는 선택권은 없다.


두 구간 모두 유인 역이다.


  본선에서 밀려난 구선은 열차 빈도도 낮아지고 그에 따라 승객도 줄어들어서 무인역이 많지 않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신선은 물론 구선도 역무원이 항시 상주하는 유인역이었다. 구선이 폐선되지 않고 아직까지 열차가 잘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승객이 그만큼 뒷받침되었다는 뜻이다.


사용하는 선로를 줄여나가고 있는 구선.


  하지만 본선으로 운행될 때보다는 승객이 많이 줄어든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는 특급열차가 다니지 않기 때문에 필연적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유지 비용을 절감해서라도 노선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지역 주민들에게는 더없이 감사할 것이다.


구선의 대표 역인 나가요역.


  구선의 다른 이름인 나가요 루트는 이 나가요역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아무리 노선이 짧고 승객이 적다 하더라도 거기서도 또 대표 역을 뽑을 수 있다. 나가사키본선 구선 구간도 이 나가요역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나가요역에서 교행이 이루어진다.


  나가요역은 현재 구선 구간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교행 구간이다. 그리고 중심 역이라 그런지 양방향 열차 모두 다른 역에 비해 조금 더 오랫동안 정차하고 있다가 출발하고 있다.

  구선 구간은 시간표를 잘 보면 나가사키본선 이라기보다는 사세보로 빠지는 오무라선의 연장선처럼 느껴진다. 오무라선도 비전철화 구간이라 디젤 열차만 운행 중인데, 이 구간을 운행하는 파란색의 시사이드 라이너 열차가 구선으로 다니기 때문이다.

  별도의 열차가 따로 운행하는 것이 아니라서 구선은 이름만 나가사키본선일 뿐 풍기는 인상은 오무라선과 흡사하다. 이렇게 디젤 열차가 다니는 다른 구간의 열차가 있어서 구선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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