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조건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만들기 위한 노력 - 세 번째 이야기
우리나라 철도는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표준궤로 통일되어 있다. 그래서 고속열차인 KTX도 일반열차인 무궁화호도 모두 동일 궤도 선상에서 달릴 수 있다. 이렇게 표준화된 궤도만 있어서 어떤 열차를 운행하더라도 궤도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일본은 열차마다 궤도가 다르다. 특히 국철이었던 JR은 신칸센이 탄생하기 전까지 거의 전 구간에 걸쳐서 표준궤보다 궤도 폭이 좁은 협궤선으로 운행하고 있다. 사철은 일부 노선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표준궤인 것과는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
JR 노선 가운데 표준궤를 사용하는 노선은 신칸센에 불과하다. 따라서 신칸센은 재래선에서 볼 수 없고, 재래선은 신칸센에서 볼 수 없다. 그러나 항상 예외란 있기 마련이다. 비록 신칸센 전용선로에 있을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신칸센이라는 이름을 달고 재래선을 운행하는 열차가 있다.
소위 미니 신칸센이라 불리는 이 열차는 도호쿠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데, 도쿄까지 직통 운행을 위해 고안해낸 운행 방식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해당 노선은 아키타까지 가는 아키타 신칸센과 야마가타를 거쳐 신조까지 이어져 있는 야마가타 신칸센이다. 이 두 노선 모두 동쪽에 치우쳐 있는 도호쿠 신칸센의 보완 역할로 험준한 도호쿠 내륙을 통과해서 서쪽 지역을 연결해주는 노선이다.
내륙을 통과하다 보니 날씨에 아주 취약한 점이 흠이다. 거기에는 재래선과 같은 형태의 선로도 영향을 미친다. 이 열차들이 운행하는 노선에 한해서 협궤였던 궤도를 표준궤로 개량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개량한 구간의 재래선 열차도 표준궤에서 다니는 열차가 투입되었다. 따라서 일반적인 재래선에서는 운행이 불가능한 열차다.
도쿄와의 직통 연결을 위해 탄생하게 된 미니 신칸센은 총 두 노선이다. 아키타로 향하는 아키타 신칸센은 빨간 바탕의 E6계라 불리는 열차가 운행 중이고, 야마가타로 향하는 야마가타 신칸센은 파란 바탕의 E3계라 불리는 열차가 운행 중이다. 원래 아키타 신칸센에도 E3계 열차가 운행했으나, E6계가 생기면서 E3계 열차는 야마가타 신칸센에만 투입되고 있다.
미니 신칸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열차들은 신칸센 규격의 승강장에서는 승강장과 열차 사이에 공간이 많이 빌 수밖에 없다. 그 공간에 승객이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미니 신칸센의 출입문에는 보조 발판이 설치되어 있다. 열차가 승강장에 도착할 때에 맞춰 출입문 아래에 설치되어 있던 보조 발판이 위로 올라오는 장면도 이색적인 장면이다.
그러나 재래선 승강장에서는 그 폭이 딱 맞아서 보조 발판을 사용하지 않고 출입문을 개방한다. 재래선 열차의 폭에 맞추기 위해서 신칸센 고유의 폭을 포기한 미니 신칸센. 이는 재래선 구간이지만 표준궤로 개량한 노선과 서로 한 발씩 양보했기에 가능했던 조합이다. 이처럼 철도도 서로 하나씩 양보하면 더 좋은 결과를 불러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폭이 좁아진 만큼 실내도 영향을 미친 미니 신칸센. 그린샤와 보통차가 모두 2x2 배열이라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미니 신칸센이라는 이름대로 그린샤 좌석 역시 기존 신칸센의 그린샤보다 의자 규격이 작아 보였다.
비교를 위해 담아본 E5계 신칸센. 이 열차는 일반적인 신칸센 규격에 맞는 열차다. 여기서도 그린샤는 2x2 배열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미니 신칸센에 비해 의자가 훨씬 넓어 보인다. 그만큼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더 비교하기 쉬운 곳은 보통차 좌석이다. 미니 신칸센의 경우 2x2 배열이지만, 기존 신칸센은 한 좌석 더 배치되어서 2x3 배열로 이루어져 있다.
기존 신칸센의 경우 폭도 넓지만 길이도 길어서 객차 내부가 갑갑함이 없이 상당히 탁 트여 보인다. 그에 비해 미니 신칸센은 좁은 폭만큼 객차 길이도 짧아서 내부가 조금 갑갑하게 느껴진다. 외부에서 볼 때는 몰랐지만 내부에서 열차를 이용해 보면 왜 미니 신칸센이라 부르는지 이해할 수 있다.
신칸센의 특징과 재래선의 특징을 모두 가진 미니 신칸센. 기존 신칸센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열차 상황 안내판을 보면 미니 신칸센은 기존 재래선과 안내판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 신칸센은 별도의 안내판과 별도의 승강장에서 신칸센 열차만 볼 수 있는 안내판이 만들어져 있다. 물론 미니 신칸센도 승강장은 다르게 사용하고 있지만, 같은 안내판을 통해서 열차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기존 신칸센과 차이가 있다.
한편 미니 신칸센이 다니는 곳은 단선 구간도 제법 많다. 그래서 기존 신칸센에서 볼 수 없는 교행 장면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가장 많은 유동 인구가 있는 대도시를 이어주는 신칸센에서 단선 구간은 상상하기 어렵다. 지하철도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복선 구간으로 설계하고 운행한다. 신칸센도 마찬가지다. 기존 열차들이 다니는 신칸센 구간에서 단선으로 연결된 구간은 그 어떤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복선임에도 선로가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로 상당히 많은 열차들이 다니고 있기 때문에 미니 신칸센에서와 같이 교행을 생각할 겨를도 없다. 그런 면에서 미니 신칸센은 이름은 신칸센이지만 재래선의 특징도 보여주고 있음은 분명했다.
단선으로 운행하는 구간이 있기에, 상하행 열차가 같은 승강장을 사용하는 역도 있다. 거점역은 한 방향이라도 승강장을 2개에서 많게는 3개까지 사용하는 역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시골 철도에서나 볼 법한 1선 1승강장 형태의 역이 신칸센 역이라는 사실이 쉽게 믿어지지 않을 것 같다.
야마가타 신칸센의 경우 미니 신칸센이 시작되는 후쿠시마역도 현재는 14번 승강장 하나만 사용하고 있어서 신칸센 승강장에서도 1선 1승강장의 형태로 운영 중이다. 이것이 가능할 정도로 미니 신칸센은 열차 빈도가 기존 신칸센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
아키타 신칸센은 신칸센 가운데 유일하게 스위치백 구간이 있다. 최대한 직선 주로에서 최대한의 속도로 달리는 신칸센에서 스위치백이 있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스위치백은 열차 진행 방향 자체가 바뀌어야 해서 그만큼 시간 손실이 크다. 그리고 직선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그만큼 표정속도에도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스위치백이 존재한다는 것은 재래선의 선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신칸센 유일의 스위치백 역인 오마가리역은 스위치백에 가려졌지만 신칸센 간 교행도 일어나는 역이다. 상하행 두 열차가 스위치백에서 자연스럽게 방향을 전환할 동안 교행까지 하는 것이었다. 오마가리역 다음 역이 아키타역이라서 이 구간은 역방향으로 앉아가는 경험도 하게 된다. 사실 의자 방향을 바꿔서 정방향으로 이동해도 상관없지만 이상하게 그냥 배치해놓은 의자 그대로 (역방향으로) 앉아가는 승객이 대부분이었다.
스위치백인 오마가리역의 승강장. 터미널 식 승강장을 보듯 더 이상 나아갈 수 있는 선로는 없다. 단, 재래선의 경우 신칸센과 달리 더 나아갈 수 있는 선로가 이어져 있다. 신칸센과 재래선이 서로 다른 궤도를 사용하는 관계로 선로가 3개의 선으로 이어진 복합 궤도도 만날 수 있다. 이 또한 미니 신칸센이 만들어 낸 재미있는 장면이다.
한편 고속으로 달리는 신칸센은 철도 건널목이 없다. 만약 철도 건널목이 있다면 큰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신칸센 선로는 입체형인 고가 철교나 터널 등으로 다른 교통수단과 완전히 차단시켜 놓았다. 그러나 재래선 구간을 공유하는 미니 신칸센은 철도 건널목에서도 볼 수 있는 열차다. 비록 신칸센 전용 구간처럼 고속으로 달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신칸센 열차인데 차창 풍경으로 철도 건널목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충분한 구경거리다.
그러면 과연 미니 신칸센 구간을 이용하면 신칸센 요금은 어떻게 책정되는 것일까? 이 또한 열차 티켓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미니 신칸센이라도 고속으로 이동하는 기존 신칸센 구간을 경유할 경우에는 승차권에도 신칸센 지정권이라는 글자가 찍힌다. 여기까지만 보면 미니 신칸센이라도 신칸센이라는 이름이 있어서 기존 신칸센과 같은 요금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미니 신칸센 구간만 이용할 경우 앞서 봤던 승차권과 달리 신칸센이라는 글자를 찾을 수가 없다. 즉, 이 구간만큼은 신칸센이지만 특급열차 요금과 동일한 요금 책정 방식으로 적용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JR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신칸센 특급권에 대해 자세하게 안내해놓은 페이지가 있는데, 미니 신칸센의 특급권 요금은 기존 신칸센의 특급권 요금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금액 차이가 난다.
도쿄역의 반대편에 위치한 미니 신칸센의 종착역은 터미널 식 승강장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물론 재래선으로 노선이 계속 이어지지만, 궤도가 서로 다른 두 노선은 더 이상 함께 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열차끼리 서로 마주보고 있지만 두 열차는 서로 만날 수가 없다. 마치 남북 대치를 보고 있는 것처럼 아주 가까이에 있지만 서로 만날 수 없는, 그런 관계인 샘이다.
도쿄역으로 환승없이 편리하게 가는 방법을 고안하다 등장한 미니 신칸센. 이 신칸센은 기존 신칸센과 달라서 다양한 풍경을 만들었다. 두 열차의 특징을 다 담아낸 이 열차는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우리 사람을 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