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조건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만들기 위한 노력 - 두 번째 이야기
일본 전역에 걸쳐 혈관처럼 조밀하게 연결되어있는 철도. 그 가운데 대동맥과 같은 신칸센은 도쿄를 기준으로 모습이 많이 다르다. 도쿄 이남의 신칸센은 하나의 노선처럼 이어져있는데 반해 도쿄 이북의 신칸센은 마치 가지치기하듯 동에서 서로 뻗어나가 있다.
노선도를 보면 좀 더 쉽게 구분이 가능할 것 같다. 도쿄 이남 구간(이하 도카이도 신칸센으로 통칭)은 도카이도, 산요, 규슈 신칸센으로 정리해볼 수 있지만, 도쿄 이북 구간(이하 도호쿠 신칸센으로 통칭)은 노선 종류만 해도 꽤 많음을 알 수 있다. 이 많은 노선은 모두 도쿄역으로 수렴하고 있어서 도쿄역은 신칸센이 다니는 그 어떤 역보다 더 많은 열차로 북적이는 형태다.
단일 노선으로 전 구간에 걸쳐 고르게 열차를 투입할 수 있는 도카이도 신칸센 구간과 달리 도호쿠 신칸센 구간은 도쿄역에서 열차를 고르게 투입한다고 해도 노선이 갈라져서 열차 간격 맞추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승강장이 많아서 여러 열차가 대기하고 있을 공간이 충분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등장한 대안이 바로 두 대의 열차를 결합시켜서 나가는 병렬연결(이하 병결, 併結)이다.
그 결과 거의 하나의 열차로 통일되어가고 있는 도카이도 신칸센과 달리 도호쿠 신칸센은 보이는 것처럼 다양한 조합의 열차가 승강장에 오가고 있다. 열차 종류도 워낙 다양해서 8량 편성부터 17량 편성에 이른다. 따라서 어떤 조합의 열차를 이용하느냐에 따라 승차위치가 달라지므로 탑승 시 잘 확인할 필요가 있다.
여기도 도카이도 신칸센처럼 하나의 열차로 통합하면 행선지나 열차 등급에 관계없이 시간이 되는대로 열차를 보내면 된다. 그러나 도호쿠 신칸센의 경우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열차를 투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름은 신칸센이지만 열차 폭이 다른 미니 신칸센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도호쿠 신칸센 구간은 재래선 구간을 개량해서 신칸센 열차도 운행이 가능하도록 만들어놓은 야마가타, 아키타 신칸센이 있다. 두 노선 모두 험준한 내륙을 통과해서 서쪽의 도시들을 연결해주는 노선으로 동쪽에 치우쳐있는 도호쿠 신칸센 본선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니 신칸센 구간은 도호쿠 신칸센의 본선 구간처럼 열차 빈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아니 빈도를 높이려고 해도 미니 신칸센 구간에는 단선 구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안 그래도 승강장이 터질 것만 같은 도쿄역에 열차 간격이 긴 열차가 오랜 시간 머무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도쿄역 승강장에 머무르는 시간을 조정한다면 미니 신칸센의 열차 간격이 뒤죽박죽이 될 수 있다.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해볼 때 병결 운행은 도호쿠 신칸센 본선은 물론, 미니 신칸센까지 운행에 숨통을 틔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리고 승객이 많은 혼잡한 시간 대에는 미니 신칸센을 활용해서 17량 편성의 장대 열차로 도호쿠 신칸센 구간을 운행할 수도 있으니 유연한 운행까지 덤으로 건질 수 있다.
도카이도 신칸센의 경우 노선 전 구간에 걸쳐 승객 분포가 비슷하지만 도호쿠 신칸센의 경우 도쿄에서 멀어질수록 승객이 많이 줄어들기 때문에 병결은 운영 효율을 위해서도 필요해 보였다. 주로 2층 신칸센이 운행하고 있는 조에츠 신칸센에서도 이런 이유에서인지 2층 신칸센을 병결로 운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같은 노선이지만 중간의 에치고유자와역에서 절반만 니가타역으로 향하고 나머지 절반은 임시역인 가라유자와역으로 향하거나 가라유자와역이 영업하지 않을 때는 그냥 에치고유자와역에서 운행을 마친다.
이런 방식의 운영은 경부 고속철도에서도 충분히 도입해볼 만한 체계지만, 당분간은 그런 모습을 보기가 어려울 것 같다. 특히 서울에서 대전 구간에 집중된 승객 비중을 생각해본다면 서울에서 대전까지는 10량 편성 열차 두 대를 병결해서 운행했다가 대전역 이남 지역은 한 대만 보내는 방식으로 유연하게 열차 운행을 한다면 운행 비용도 절감하면서 승차율도 더 높이는 한편, 서울 대전 간 열차를 더 투입할 수 있어서 잠재 고객이 더 늘어날 것 같은데 말이다.
병결도 열차를 붙였다 떼었다 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1분 1초가 아쉬운 신칸센에서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다면 큰 의미가 없다. 어쩌면 작업 과정에서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우리나라 고속철도에서 병결 운행의 비중이 낮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칸센의 경우 이 과정이 모두 자동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열차가 합쳐질 때는 시간이 제법 소요되는 단점이 있지만, 분리될 때는 불과 1분 상간으로 열차가 출발할 정도로 빠른 시간 내에 병결이 이루어지다 보니 표정속도에도 크게 지장을 주지 않는 것 같았다. 합쳐질 때도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 신중해서 답답한 정도인데 이렇게 지나치게 안전에 치중해서인지 사고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렇게 열차가 마치 로봇 만화를 보듯 합쳤다가 떨어졌다가 하는 과정은 승객들에게도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실제로 이 병결이 일어나는 모리오카역과 후쿠시마역은 이 과정을 지켜보는 승객들로 승강장이 북적거린다. 당역에서 내리거나 도호쿠 신칸센 본선을 이용하는 승객이라면 분리의 과정도 여유 있게 지켜볼 수 있지만, 미니 신칸센을 탑승하는 승객이라면 분리의 과정을 볼 기회가 없다. 왜냐하면 항상 미니 신칸센이 분리를 함과 동시에 먼저 출발을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합쳐질 때도 미니 신칸센이 먼저 와 있는 신칸센 열차의 후미에 붙기 때문에 그 장면 역시 볼 수 없다.
철도에 관심이 많은 일본인에게 있어서 이런 분리의 장면은 놓치기 아까운 장면일 수 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이 과정을 지켜보다가 열차를 놓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고마치호의 분리가 일어나는 모리오카역에는 위와 같은 안내문을 볼 수 있었다.
한편 신칸센은 등급에 따라 지정석 비율도 달라진다. 같은 열차를 운행한다고 해도 어떤 등급의 열차냐에 따라 앉았던 자리가 자유석이 되었다가 지정석이 되었다가 변한다. 도쿄 이북 구간에는 우리나라에서 운행하는 일반적인 모습인 전좌석이 모두 지정석인 열차를 만날 수 있다. 여기서 최상 등급의 열차인 하야부사호나 고마치호, 그리고 카가야키호가 여기에 해당하는 열차다.
하야부사호는 주로 고마치호와 병결 운행을 하는데, 그때는 17량 열차 모두 지정석으로 운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편, 홋카이도로 향하는 신칸센은 열차 등급에 관계없이 모두 지정석만 있어서 그 점은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과연 삿포로까지 연장이 된 후에도 열차가 모두 지정석만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앞서 언급했던 열차 외에는 모두 자유석을 볼 수 있는데, 열차마다 자유석의 비율은 달라진다. 모든 역을 정차하는 고다마호의 경우 전체 차량의 60% 초과가 자유석으로 운행할 정도로 반드시 지정석이 자유석보다 많아야 할 필요가 없음도 보여준다.
신칸센 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도카이도 신칸센의 노조미호는 도호쿠 신칸센의 하야부사호와 달리 자유석이 있다. 16량 편성 가운데 1~3호 차가 자유석에 해당하는데, 이 자유석에 앉아가기 위해서 승강장에 미리 줄을 서서 대기하는 행렬을 볼 수 있다.
시간을 절감하는 만큼 요금을 더 비싸게 받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논리다. 그러나 일정 기준 없이 요금이 수시로 바뀐다면 요금표를 만드는데도 번거로워질 뿐만 아니라 고객들도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고안해놓은 것이 바로 열차의 좌석을 유연하게 조정하지 않았나 싶다.
지정석이 자유석보다 비싼 대신 미리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자유석을 구매한다는 것은 그 비용도 절감하겠다는 생각으로 약간의 고생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방한 것이기도 하다. 사람은 모두 편한 것만 추구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자신의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까? 신칸센을 보면 마치 지하철을 탄 것처럼 전 좌석이 모두 자유석으로 된 열차도 있다. 이 열차는 셔틀형 열차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초단거리를 운행하는 열차로, 주로 출퇴근 시간이나 첫차와 막차 시간에 집중 투입되는 열차다.
모든 좌석을 자유석으로 하면 분명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좌석을 자유석으로 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운행 거리와 이용하는 승객이 어떤 승객들인지를 파악한다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초단거리를 이동한다면 굳이 상대적으로 비싼 돈을 내면서까지 지정석에 앉아서 갈 필요가 없다. 한편, 지정석을 끊었다는 것은 열차 역시 정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통근 시간은 항상 일정할 수가 없다. 즉, 지정석이 오히려 독이 되어서 열차를 놓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먼저 도착해서 이전 열차를 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정석 티켓을 쥐고 있는 까닭에 역에서 소중한 아침 시간을 허비해버릴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매일 열차를 이용해야 하는 통근자들은 열차 지정이 없는 자유석을 더 선호할 수밖에 없다. 굳이 먼 거리가 아니기에 만약 좌석이 없어서 서서 가야 한다고 한들 크게 불편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아침에 지하철 좌석에 앉아갈 때나 서서 갈 때나 크게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렇다고 신칸센이 지하철처럼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타고 갈 일은 없기 때문에 서서 간다고 해도 피로감은 지하철보다 덜 할 것이다.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이용 가능성이 낮은 지정석을 운영하느니 더 많은 통근자를 유도하기 위해서 모든 좌석을 자유석으로 풀어버리는 것이 더 낫다. 상황에 맞게 유연한 운영을 통해 자유석 승객도 편리하게 열차를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승차율도 높일 수 있으므로 겉으로 보기에는 수익이 줄어들게 보이지만, 더 많은 잠재 수요를 창출하므로 결국은 수익이 늘게 된다.
즉, 출퇴근 시간에 지정석 이용객이 적어서 승차율을 올리는데 한계가 있다. 반면 출퇴근 시간의 자유석은 실내가 너무 복잡해서 사람들이 못 들어가는 바람에 열차가 제시간에 출발하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빼곡하게 짜여 있는 스케줄에 맞춰 열차를 운행하는데 1분이라도 연착이 발생하면 거기서 발생하는 나비효과는 이루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다. 이는 철도의 정시성에 큰 타격을 주고, 승객들의 신뢰를 잃게 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볼 때 전 좌석 자유석 열차는 운영하는 회사 입장에서나 이용하는 승객 입장에서나 서로에게 윈윈이 됨은 분명했다.
똑같이 전 좌석 자유석 개념의 열차지만, 우리나라 특실과 같은 그린샤는 지정석인 열차도 있다. 물론 이전 사진의 고다마호도 전 좌석 자유석이라고는 표기하고 있지만 그린샤 객차는 지정석으로 운영하고 있다. 조에츠 신칸센의 다니가와호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기해놓았다고 볼 수 있다.
겉보기에는 같은 열차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열차를 세분화해서 운영 중인 신칸센. 여기에는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인 운행을 하기 위한 뼈 깎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게 또 한 번의 벌전을 거듭한 신칸센은 일본 철도 수단 가운데 그 지위를 더욱 확고하게 다져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