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레이> 김경욱
- 분노가 떠난 자리에는 회한이 밀려들었다.
<오후, 가로지르다> 하성란
-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테지만 그래도 새로운 하루를 맞는다는 기분으로."
<국수> 김숨
- 무작정, 이렇게 무작정 당신을 찾아오는 날이 앞으로 또 있을까요.
<유리> 조해진
- 이 순간의 선택으로 앞으로 꽤 긴 시간을 끊임없는 후회 속에서 소모하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어제 같은 오늘보다는 후회라도 할 수 있는 하루하루가 더 인간적일지 모른다는 단순한 변명에 그녀는 한 번만 더 기대보고 싶었다.
- 쉬지 않고 걸었다.
각기 다른 학교들의 수많은 교실들과 입학식과 졸업식을,
혼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던 방 한 칸짜리 자취집들을,
서울과 지방을 오가던 고속버스를, 그런 곳들을.
짓밟히지도, 짓밟지도 않으면서 그 모든 곳들을 통과하려 했으나 돌이켜보니 세상을 늘 상처의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는 유리일 뿐이었다.
상처가 남아 있는 한, 완벽한 망각은 불가능했다.
<미루와 초상화> 최제훈
- 미안해, 도저히 놓치기 아까운 기회야.
난 놓쳐도 안 아까운 사람이냐는 질문을 꾹 참고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 "미루와 나는 만나는 순간 이미 고무줄의 양 끝은 서로의 허리에 비끄러맨 거야.
아무리 서로를 밀쳐내고 반대 방향으로 달려도 우린 연결되어 있었지.
고무줄의 장력이 버티는 한도 내에서는"
-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버틸 수 있겠나.
하루하루 이어붙여가기 급급한 날들을.
막연한 파멸의 예감이 목을 죄어오더군.
결국 내가 먼저 허리에 묶인 매듭을 풀어버린 거야.
팽팽하게 당겨졌던 고무줄이 총알처럼 날아가 그녀의 등짝을 후려칠 줄 알면서도."
- "사랑해."
이상한 일이었다.
압축된 삼십 년의 시간 속에서 닳아 없어졌다고 생각한 '사랑'이라는 단어가,
그 순간 막 캐낸 다이아몬드 원석처럼 빛났다.
<그 순간 너와 나는> 조현
- 누구나 다 자기 안에 약간의 역겨운 기억들을 축적하며 보다 큰 혐오를 이겨내는 법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