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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댕 Oct 16. 2020

알면 맛없고 모르면 맛있는 이유

"오늘 반찬 맛이 어때?"


매일 저녁 식탁 앞에서 식구들에게 물어보는 질문이다. 아무래도 요리에 썩 자신이 없던 사람이었고 종종 아이들에게 인기가 없는 식재료들로 밥상을 차리고 있어 습관처럼 밥 먹을 때의 식구들 표정을 살피고 꼭 반찬 맛이 어떤지 물어보고 있다. 어른 입맛에는 괜찮아도 아이들에겐 아닐 수 있으니 채식 요리를 깊게 연구해야겠단 생각을 계속하는 요즘이다.


지구 지킴이로서 1년을 넘게 미루고 미루다가 환경오염의 주범 중 하나인 육식을 줄이자는 마음을 먹고 반년 좀 넘게 집에서 채식 밥상을 차리고 있다. 아무래도 조리하기도 쉽고 메뉴 선정에 있어 그 범위가 넓어지는 육류 재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려다 보니 좀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다. 더더군다나 채소나 비 육류 식재료라고 해서 다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회용 포장재가 사용된 식료품은 가급적 피하고 있기 때문에 극히 제한적인 식재료 안에서 밥상을 차려야 한다. 스스로 내린 기준이지만, 전부 지구를 조금이라도 더 생각하고자 하는 마음에 엄격한 조건을 세웠기에 가능하면 이 기준을 고수하고 있다.


얼마 전 시장에서 무포장으로 놓여 있던 아보카도를 발견했다. 단 한 번도 내 손으로 아보카도를 사본 적이 없는데, 안 그래도 새로운 반찬을 찾던 중이라 평소와 다르게 반갑게 느껴져 얼른 세 개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사 오긴 했는데, 아보카도는 샐러드에나 먹는 음식이라 생각해서 어떻게 요리를 해야 하나 막막했다. 인터넷에서 다양한 요리 방법을 찾아봤지만 주로 샐러드나 샌드위치 재료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래, 나도 샐러드에 한 번 사용해보자!라고 마음먹음과 동시에 바로 아보카도를 손질했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칼로 아보카도 배를 반으로 가른 후 똑딱 돌려 커다란 씨를 칼로 탁 내리치고 돌려 빼냈다. 숟가락을 들고 아보카도 과육만 따로 쓰윽 긁어냈다. 먹기 좋게 적당히 잘라 역시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쌈채소와 오이 위에 얹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청귤청액과 꿀을 막 섞어 주어 샐러드에 충분히 적시듯 뿌려주면 초록 초록하고 달콤한 샐러드 완성.



보기에 먹음직스러워 식구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내심 기대하며 식탁에 올렸다. 아보카도를 평소 즐겨 먹지 않아서 식감이나 풍미는 생소했지만 어른의 입맛엔 손색이 없을 만큼 맛이 좋았다. 첫째 아이는 한번 먹어 보더니 아무 맛이 나지 않는다며 갸우뚱거렸다. 막내는 보자마자 아예 먹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각기 다른 반응들을 보이며 그렇게 첫 아보카도 시식은 뭔가 모를 아쉬움으로 남았다.


다음 날에 바로 다른 방식으로 조리를 해봤다. 연한 초록빛이 애호박과 비슷하여 두 재료로 만드는 덮밥은 어떨지 궁금했다. 다소 두께는 얇게, 모양은 부채꼴로 잘랐다. 간장, 조청, 물, 깨를 내 마음대로 섞어 만든 간장 소스를 잘라 놓은 호박에 살짝 뿌려 재 놓았다. 어느 정도 간이 좀 배었겠다 싶을 때 기름 살짝 두르고 충분히 잘 익도록 볶아주었다. 아보카도에도 간장 소스를 미리 뿌려 두었다. 밥에도 간장 소스를 충분히 넣어 촉촉하게 비벼놓았다.


사실 내가 만들었지만 이번에 만든 간장 소스가 무지막지하게 입맛 당기게 맛있는 맛이 되어서 무슨 재료에도 어울렸을 것 같았다. 간장 소스 밥 위에 조리한 애호박과 아보카도를 넉넉하게 얹어주고 화룡점정 깨를 솔 뿌려주었다. 식구들의 평만 남은 상황.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언제나 그랬듯 식구들의 표정을 살폈다. 결과는? 첫째 아이의 따봉을 얻었고, 아보카도를 쳐다도 안 보던 막내는 덮밥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아보카도를 조리한 방법이 다른 것도 있지만, 어제와 달랐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오늘 식탁에 아보카도가 있다고 말을 안 해줬다는 점. 육안으로 얼핏 보면 익숙지 않은 식재료이기에 애호박과 아보카도가 쉬이 구분이 안 될 만도 했다. 그 점을 노렸고(?) 아이들은 아주 맛있게 밥 한 그릇을 뚝딱했다. 그 순간 머릿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그러고 보면 이전부터 아이들은 본인이 선호하지 않거나 처음 보는 식재료에 무조건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여왔다. 이미 자기가 싫어하는 식재료가 식탁에 올라왔다는 것만으로도 그 맛을 보고 싶지 않아 했고 먹더라도 맛이 없을 거라는 선입견을 바탕으로 맛있게 먹은 적도 거의 없었다. 첫째 아이가 밥그릇을 거의 비워갈 때 즈음, 나는 아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기 애호박 말고 또 다른 반찬도 있다? 뭐게?" 아이는 그제야 뭔가 '아하~' 하면서 혹시 아보카도냐고 물었다.



이 날 식탁에서 내가 얻은 깨달음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식구들이 밥을 잘 먹을 수 있게 음식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 또 하나는  이미 한 번 마음속에 겉만 보고 자리 잡은 선입견은 정말 무섭다는 것. 아마 오늘 덮밥에 애호박뿐 아니라 아보카도도 있다고 알려주었다면 모르긴 몰라도 첫째 아이는 먹긴 먹되 아주 맛있게 먹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는 네 식구 모두 밥과 반찬 모두 맛있게 잘 먹었고 우리 집 식탁 위에서 아보카도는 더 이상 맛이 없는 식재료가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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