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학교 창업지원단의 도움을 받아 기회의 땅 미국에 다녀왔다.
실리콘밸리를 포함해 Bay Area 일대의 기업을 방문하며 테크기업 대표님들과 VC들을 만나는 일정이었다.
광기(?)마저 느껴지는 모 대표님의 열정 가득한 눈빛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 여행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도 산더미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미국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 유독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하철을 탄 사람들의 표정 없는 눈빛들.
곧 대학교 개강을 맞았고, 강의실에서 교수님 이외에는 누구도 어떤 말도 하지 않는, 지극히 한국적인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어느 순간 이런 당연한 모습들이 너무도 이상해 보였다.
왜 아무도 길에서 눈을 마주치지 않을까?
왜 강의실에서는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느껴지는 걸까?
미국에서 느꼈던 자유를 왜 이곳에선 느끼기 힘든 걸까?
아. 맞다. 나 불행한 나라에서 살고 있었지.
문득 내가 자살률 1위, 저출산 1위, 명품소비 1위 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우린 왜 불행할까? 이 의문이 지난 몇 주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양한 칼럼과 연구, 통계가 수많은 이유를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가 이미 다 아는 이야기들이다.
내가 잘 되려면 쟤를 밟아야 해. 위아래로 쳐다보며 평가하는 수많은 시선들.
결혼하고 애 낳으려면 서울에 30평대 아파트는 있어야 하지.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힌 사회적 기준, ’한국인 평균‘이라는 판타지는 인스타그램을 만나며 우리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시대정신은 정부 정책으로도, 수백 조의 복지 예산을 퍼부어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한반도 반쪼가리 조그만 땅에 5000만이 숨 쉬며 발버둥 치는 곳,
K-갈라파고스에 사는 우리는 행복해질 수 없는 걸까?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올라퍼 엘리아슨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현대미술가 중 한 명이다.
그는 빛과 물, 대지와 대기를 이용하는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그의 작업은 관객들로 하여금 우리의 감각을 의심하게 만드는데, 아래의 작업이 좋은 예시인 것 같다.
전시장에 들어가는 순간 관객들은 그들의 양팔을 바라보고, ’색‘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샛노란 방에서 관객들은 흑백이 되어버린 서로를 바라본다.
단색광을 사용해 우리 자신을 ‘다르게 보게’ 만든 이 작품은 ‘본다’라는 관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안개 사이로 무지개가 보인다.
무지개는 빛이 작은 물방울을 통과해 굴절되고, 여러 색으로 분산되며 나타난다.
우리는 그 빛을 눈이라는 매개로 인식한다.
무지개는 어디에 있는 걸까? 보는 주체인 우리가 사라져도 무지개는 남아 있을까?
이렇듯 올라퍼 엘리아슨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비틀어 일상을 ‘다르게 보게’ 만든다.
그는 말한다.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면 삶을 바꿀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미국 여행 마지막 날
샌프란시스코 골든 게이트 공원 잔디밭, 노을 지는 하늘 아래서 노래 부르며 춤을 추는 히피 무리를 마주쳤다.
이들 중 한 명에게 다가가 물었다.
“당신들은 왜 여기 모여서 노래를 부르시나요? “
대마초를 입에 문 채 젬배를 치던 멕시코계 히피 아저씨가 대답했다.
“그냥.”
“주말마다 그냥 모여서 노래 부르는 거야.”
어쩌면 K-갈라파고스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할지도 모르겠다.
삶에 감사할 것, 친절함을 베풀 것,
삶의 주체가 되어 나만의 행복을 찾아 나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