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 포레스트> (2018)
1
"나 배고파서 내려왔어."
서울살이의 고단함, 집밥에 대한 그리움을 이보다 더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뻔하다 못해 식상한 주제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나 또한 서울에서 매 끼니 밥을 사 먹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으니. 일단 눈앞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들을 보며 입맛을 다시고는, 드문 드문 결말에 대한 예측을 하며 영화를 지켜보았다.
눈 쌓인 겨울에 고향의 빈 집으로 내려온 혜원(김태리)은, '잠깐' 내려온 거라고 거듭 강조한다. 봄이 되고, 여름이 되어도 '금방' 올라갈 거라고 소리쳤지만, 정작 가을이 되니 곶감을 말리며 겨울을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일까? 이전과 사뭇 다른 표정과 발걸음으로 서울에 다녀온다. 농번기가 아닌 계절을 나는 아주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혜원은 떠나온 것이 아니라, 돌아온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이 맞는 두 번째 겨울은 더 이상 배고프지도, 외롭지도 않은 계절이 되었다. 혜원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음 해의 사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혜원의 친구들인 재하(류준열)와 은숙(진기주)은 혜원의 집 마당에서 양파 '아주심기'를 하며 혜원이 맞이할 달큰한 봄을 돕는다.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도록.
2
영화 에세이를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첫 번째 영화는 <리틀 포레스트>로 점찍었다. 처음 개봉했을 때 영화관에서 이미 봤던 영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가입된 여럿의 OTT를 뒤로 하고, 굳이 왓챠에 새로 가입해 추가 비용까지 주고서 영화를 대여했다. 기억 속의 스토리는 희미한데 느낌은 각인된 걸까? 혜원의 처지에 어찌나 몰입이 되던지.
처음에는 나도 도피처를 찾은 것이었다. 사회가 원하는 '좋은 직업'을 가지려고 애쓰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점점 멀어졌고,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다 꼭 혜원처럼 시험도, 취업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지쳐 무작정 책을 읽었다. 책에 파묻혀 지내다 보니 마음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저편에 묻어두었던 씨앗들이었다. 그리 놀라진 않았지만, 정말 반가웠다. 죽지 않았잖아.
혜원의 엄마(문소리)는 남편이 떠나버린 남편의 고향에서, 혜원이 뿌리내리길 바랐다. 비바람에 잔뜩 넘어진 벼를 다시 세우는 것처럼, 뿌리를 잘 내리면 넘어져도 언제든 금방 다시 일어날 수 있으니까.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이곳에서 자연을 바라보고 제철음식을 손수 지어먹다 보면 금세 괜찮아질 거라고. 계절은 변하지만 늘 돌아오고, 상처가 아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하루하루를 따끈한 밥의 온기로 나를 보살피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힘들 때 책을 찾는 걸 보면, 아마도 어린 시절 내가 뿌리내린 곳은, 책이 가득 심어진 책장의 어느 한구석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도 떠나온 것이 아니라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것이 아닐까.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