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프터 양> (2022)
1
'양'이 죽어버린 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양의 몸통 내부는 피와 내장 대신 기계와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고, 껍질은 약간의 부패 방지 처리를 한 인간의 피부처럼 되어있다. 부부는 딸에게 사실을 말해야 할까. "딸아 있잖아, 양은 사실 로봇인데, 고장이 나서 고칠 수가 없어. 다른 양을 사줄게"라고 해도 될까.
양은 한 부부가 입양한 딸을 위해 큰돈을 지불하고 사 온 육아용 로봇의 이름이다. 딸이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문화를 잃지 않도록 하는 마음에서 중국인 버전으로 특별히 데려온 것이다. 부부는 맞벌이 중이라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바깥에서 보냈고, 딸 곁에 늘 붙어있는 것은 오빠 양이었다.
양이 '죽었다'라는 표현보다는 그저 'A/S 불가능한 고장'이라고 일컫는 것이, 과연 남은 자들의 마음을 더 낫게 하는 일일까? 부부는 딸에게 이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2
남자는 전통 찻집을 운영한다. 정확히는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는 '찻잎'을 판다. 그런데 가게를 찾아온 손님은 "찻잎이요? 차 가루는 없나요? 아니, 어떻게 차 가게에 차 가루가 없을 수 있죠?"라고 화를 내며 나가버린다. 난 정확히 이 부분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차의 본질은 무엇일까? 왜 차를 좋아하냐고 묻는 양에게, 남자는 '눈을 감고 차 맛을 음미하면, 그 찻잎이 있었던 땅, 바람, 촉촉함, 숨결 등과 같은 것들이 몰려온다'라고 말하는 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감명받아 차에 빠졌다고 대답했다. 양이 말했다. 저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들은 함께 차를 마신다. 꿀꺽꿀꺽, 데랭데랭. 양의 목구멍 너머로는 기다란 깡통 파이프에다 물 붓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남자는 고백했다. 사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남자는 차를 나누어 마시며 처음으로 양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차의 본질은 더 이상 찻잎이냐 가루냐에 달려있지 않았다. 차는 마시는 것이다. 마시는 행위 자체에 '진짜와 가짜' 또는 '원조와 아류'와 같은 개념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딸은 매일 물었다. 양은 언제 와요? 양이 없어 학교에 가기 싫다고 아침마다 떼쓰는 딸의 모습을 보며, 남자는 서둘러 양을 고치기 위해 이곳저곳을 들른다. 양의 핵심 부품을 가지고 마침내 도착한 곳은 '테크노 사피엔스 박물관'이다. 뜻밖에도, 박물관에서는 양과 같은 부류를 '테크노 사피엔스'라고 부르며, 연구를 위해 양의 시신 기증을 간곡히 부탁했다. 특히, 핵심 부품인 메모리를 활용한 전시를 통해 이들의 삶을 이해하고, 영원히 기억하고자 하는 취지였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양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양의 기억은 거대했다. 그러나 또한 평범했다. 구름이 살짝 흩뿌려진 하늘, 바람에 파르르 흔들리는 풀잎, 나뭇가지 사이로 떨어지는 햇살... 아름다운 일상 속 자연이 가득했다. 남자의 딸이자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 누구보다 포근했다. 단란한 가족 사이에서 살짝씩 엿보이는 공허함 또는 좌절감이 담긴 양의 시선에 마음이 요동쳤다. 거듭된 삶 속에서 양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여러 가지 감정을 겪어본 듯했다. 남자는 양이 떠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과 양이 같은 형태의 기억들을 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의 본질은 무엇일까? 육체일까 정신일까? 신체, 즉 특정한 형태와 구조를 갖춘 살점과 뼈, 피와 장기들이 인간의 본질이라면, 벌써 많은 인간들은 인간이 아닐 것이다. 뼈 대신 철을 심고, 이 대신 임플란트를 심는 등 신체의 일부는 이미 인공적인 부품으로 대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품이 50% 이상을 차지하면 인간이 아닐까? 80%, 100%는?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인간으로 부를 것인지 자기들이 정하는 인간들이 참 오만하다는 생각이 스친다. 현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지만 미래 인류는 '테크노 사피엔스'일 수도 있지 않은가.
만약 인간의 본질이 정신에 있다면, 이는 '뇌'라는 신체에 국한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신, 즉 철학적 관점에서 '자아'의 핵심은 결국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동일한 나'라는 연결성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데 있다. 양의 메모리장치는 그 부품 자체로서 뇌라는 신체의 역할도 하고, 기억 형성을 통해 자아를 형성하는 정신적 역할도 수행한다. 그렇다면 양은 역시, 인간인가?
4
이렇게 실체 없는 본질만 쫓다가는 영영 '구분 짓기'를 끝낼 수 없을 것이다. 결국은 조각조각 찢어져서 서로 할퀴고 싸우는 파멸의 엔딩이 눈에 선하다. 본질이 그렇게 중요한가? 양이 로봇인지 인간인지가 왜 중요한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양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딸과 유달리 각별했던 양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양의 기억 속을 떠돌며 잠 못 이루던 깊은 밤, 남자는 딸과 소파에 앉아 양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양과 있었던 사소한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둘은 양을 추모한다. 양이 머물렀던 자리는 따뜻했다. 떠난 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 빈자리를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것이, 슬픔을 달래고 서로를 위로하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일가족을 한 번에 잃고 집에 혼자 남은 강아지가 하염없이 오고 가는 버스만 쳐다본다는 소식이 참 마음이 아프다. 상황을 이해할 수도,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는 생명들은 언제쯤 그 슬픔을 달랠 수 있을까. 잔인하고 비정했던 12월을 얼른 보내버리고 싶은 마음에, 새해를 맞이하자마자 묵혀둔 생각을 이렇게 꺼내보았다. 비록 닿기는 어려운 글이 되겠지만, 이렇게라도 남겨진 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슬픔과 위로를 나누고 떠난 자들을 진심으로 추모하고자 하는,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마음이 전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