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iikiii-Delulu Pack 리뷰
키키의 두 번째 미니앨범 delulu pack은 2026년 1월 공개되었다. 앨범명인 ‘delulu’는 ‘delusional’의 축약어로, 사실이 아닐지라도 의식적으로 선택해 믿는 망상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키키는 이 단어를 단순한 자기기만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현실의 기준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규정하려는 주체적인 소녀적 태도로 확장한다. 이러한 재해석은 이번 앨범 전반을 관통하는 기획 의도이자, 키키가 제시하는 새로운 정체성 선언으로 기능한다.
“반짝이 신발 신고 허황된 상상 let go, isn’t this fake? I love it”, “개연성도 없이 delulu를 내게 please “라는 가사들은 첫 곡 〈delulu〉와 앨범 delulu pack의 정서를 단번에 드러낸다. 이 곡은 하우스 디스코 비트 위에 자유롭고 통통 튀는 가사로 전개되지만, 무심한 듯 깔리는 보컬과 어우러지며 망상이라는 키워드를 숨기거나 부정하기보다 오히려 당당하게 즐기겠다는 선언처럼 작동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소녀들의 태도는 현실을 회피하기 위한 자기 합리화라기보다는, 망상마저 자기 정체성으로 끌어안는 전략적이고 의식적인 허세에 가깝다. 가벼운 디스코 사운드와 자신감 넘치는 가사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유희적으로 흐리며, 이후 트랙들에서 이어질 앨범의 주제의식을 자연스럽게 예고한다.
타이틀곡 〈404 (New Era)〉는 UK 하우스/개러지 기반의 추진력 있는 비트와 묵직한 베이스 위에, 프리코러스에서 두드러지는 멤버들의 날카로운 저음이 곡의 중심을 잡는다. 특히 도입부 키야의 저음 보컬이 치고 나오면서, 청중들의 몰입도를 높여준다. SHINee의 〈View〉, f(x)의 〈4 Walls〉를 담당했던 LDN Noise의 편곡은 세련된 클럽 사운드를 구현하며, 바밍타이거의 Omega Sapien이 참여한 가사는 키키 특유의 청량하면서도 당당한 태도를 분명히 드러낸다.
이 곡이 특히 인상적인 지점은 사운드와 뮤직비디오의 기획이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1월 공개라는 시기성과 맞물린 뮤직비디오는 ‘새해 소원’이라는 소재 아래, 꿈과 정체성에 대한 앨범의 태도를 서사적으로 풀어낸다. 연습실에서 2026년을 기다리며 소원을 비는 장면 이후 “너는 무슨 소원 빌 거야?”라는 질문과 함께 멤버들의 어린 시절 영상, 그리고 비욘세와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2000년대 초 팝 디바들의 이미지가 차례로 등장한다. 이후 Y2K 스타일과 복고 패션으로 변주된 멤버들의 모습은 과거에 동경했던 꿈의 형상을 재현하지만, 동시에 그 이미지로부터의 피로와 균열을 노출한다. 이는 각자가 품어온 꿈이 개인적인 열망이기 이전에, 대중문화 속에서 이미 규정된 성공의 이미지였음을 드러내며 빠른 변화 속 정답을 찾지 못하고 혼란을 보인다. 이 뮤직비디오와 음악은 ‘404 not found’라는 오류를 실패의 은유가 아닌, 새로운 좌표로 이동하기 위한 과정으로 전환시키며 곡의 메시지를 확장한다. 수이가 가발을 벗고 다시 현재의 좌표로 돌아오는 장면과, 전작의 타이틀곡 〈I do me〉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키는 듯한 들판과 자연의 동물들이 스쳐 지나가는 마지막 시퀀스는 해방된 상태로 들판에서 춤추는 소녀들의 이미지를 다시 호출한다. 이는 과거의 꿈을 부정하기보다, 그로부터 한 발짝 벗어나 새로우면서도 익숙한, 그들 스스로 선택한 길을 만들어가는 선택을 시각적으로 완성하는 장면이다. 설령 다른 좌표에 도착해 오류가 발생하더라도, 그곳이 곧 이들이 선택하고 만들어나갈 새로운 시대이자 구역이라는 메시지다.
이러한 타이틀곡의 방향성은 앨범 전반으로도 확장된다. 다른 수록곡들도 역시 이전보다 넓어진 키키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전 앨범과 마찬가지로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나”이며 “내가 있는 곳이 곧 길”이라는 태도는 여전히 앨범 전체를 관통한다. 다만 이번 앨범은 동일한 메시지를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우스와 개러지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이를 다른 질감으로 변주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결과적으로 delulu pack은 키키가 자신의 세계관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그 표현 방식을 한 단계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자기 선언’, ‘현실의 규칙을 벗어난 태도’, ‘나는 나답게’ 라는 키워드는 꽤 오랫동안 다수의 아이돌 그룹이 공유하고 있는 동시대적 콘셉트이기도 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delulu pack이 제시하는 세계관은 신인으로서의 패기와 자유로움을 효과적으로 각인시키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동시에 이 유사한 메시지를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차별화해 나갈 것인지는 이 앨범이 남긴 가장 중요한 기대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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