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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일 없이 달리기 Sep 12. 2023

경험에도 선도(鮮度)가 있다는 사실을 아세요?

글쓰기 마음먹기가..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별일 없이 달리기 magazine]

평안한 달리기를 추구하며 ‘달리기와 일상’에 대한 주제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선도(鮮度) : 생선이나 야채 따위의 신선한 정도,

                    빛깔이나 명암의 선명한 정도.


 달리기를 소재로 글을 쓰자고 마음먹는 것이 심적으로 쉬운 것은 아니었다. 먼저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글을 써보기 전까지는 여백 여유로운 에세이 한 권 정도의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생각이 나의 착각이었다는 걸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글을 써보기 전까지는 하나의 주제로 적게는 다섯 페이지 많게는 수십 페이지까지도 글을 착착 써 내려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막상 글을 써보면 하나의 주제로 한문단을 이어가기조차 버거울 때가 많았던 것이다. 맨 처음에는 “생각의 깊이 문제인가?” 하고도 생각해 보았지만, 나름 내린 결론으로는 생각의 넓이의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소 패턴화된 삶을 즐긴다. 이런 반복된 삶에 안정감을 느끼고 그렇기 때문에 달리기라는 단순반복 운동을 취미로 즐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감정의 기복도 심하지 않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건에 대해 큰 감흥을 느끼지 않는 성격이다. 감정적으로 차분한 것은 개인의 삶의 안정을 주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겠지만, 인상 깊었던 하루도 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니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패턴에 기반한 나날들을 보내는 나는 다양한 생각이나 관점을 접할 기회가 남들에 비해 적었고, 결국 글을 쓸 수 있는 소재자체가 많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내가 아무리 생각의 정리의 달인이라고 하더라도 재료 자체가 없으면 정리를 해도 좋은 글을 쓰는데 한계가 있는 점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글을 써보니 이 점은 크게 문제 될 점은 아니었다. 가령 평소에 대수롭게 넘어갈 수 있었던 사건도. “어? 이건 소재로 쓸 수 있겠는데?”하며 기억하고 사유하려고 애쓰게 도와주었다. 매 순간순간의 이벤트가 좋은 글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자. 좋은과 나쁜 일을 구별할 필요가 적어졌다. 나쁜 일이 있을 때는 또 그런 일이 있는 대로 달리며 느낀 점을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사소한 행동과 생각의 변화는 나의 생각의 넓이를 넓혀주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막상 해보면 실력이 는다”라는 말은 글쓰기에도 적용이 되는 것 같다.

 

 달리기를 소재로 글을 쓰자고 마음먹는 데 있어서 심적으로 부담이 컸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일단 글을 통해 자주 밝힐태지만 나는 잘 뛰지는 못한다. 소위 말하는 상급자러너가 아니다. Sub-3는커녕 아직 풀코스경험도 없다. 달리기를 적당한 취미로 즐기는 초보 러너 수준에서 ‘달리기’를 소재로 글을 쓸만한 ‘자격’이 있을까? 하는 점에서 많은 의문이 있었다. 아니, 사실은 그 의문은 현재에도 진행형이다. 이렇게 에세이 형식으로 글을 쓰는 이유도 어찌 보면 달리기라는 소재에서 조금은 벗어나 나의 자유로운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러너로서의 글쓰기 자격’의 압박을 어느 정도 회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솔직하게 고백해 본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전달할 정보에 대한 신뢰 문제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상급자에 가깝게 뛰어본 경험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름 터득한 주법이나 부상 회복방법들이 어찌 보면 지극히 내 개인적인 경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인터넷에 흩뿌려진 수많은 정보들 중 어떤 것이 진실된 정보이고 거짓된 정보(대체로 광고)인지 감별할 수 있는 내공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를 들어서 나는 정강이통증(신스프린트)을 달리기를 시작할 때 겪었는데, 대체로 이러한 증상은 ‘주법’의 문제라는 내용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나 또한 그런 정보들을 참고하여 미드풋(발중앙으로 착지하는 주법)으로 저세를 바꾸자 정강이 통증이 꽤나 완화가 되었고, 어느 순간 완치됐다. 그러고 나서 몇 달 즈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느 순간 다시 발 뒤꿈치착지(힐스트라이크) 방법으로 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때는 정강이는 물론 내 몸 어느 곳도 통증이 있지 않았을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정강이 통증이 가라앉았던 것은 주법의 변화가 아니라 근육이 강화되어서 호전된 것인지, 아니면 과거엔 미드풋으로 통증이 호전된 것은 맞지만 그 이후 힐스트라이크 주법으로 다시 돌아온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혹은 플라시보 효과였을지도..) 글이라는 것은 한번 쓰면 영원히 남는 법이다. 잘못된 글을 남겨서 낙인처럼 인터넷에 떠도는 것에는 부담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내 글을 보고 각 개인의 달리기에 팁들을 적용해 볼 수도 있는데,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조언이 혹시라도 타인의 달리기 경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면 그만큼 심적으로 부담스러운 것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는 왜 글을 쓰기로 다짐하였는가? 그 이유는 각자가 가진 수준에 필요한 정보와 조언이 그때그때 다르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나는 <조승연의 탐구생활>이라는 유튜브를 즐겨보는 편이다. 조승현 작가는 전 세계를 누비며 여러 생각을 공유하기 좋아하는 사람 같다. 그렇기 때문인지 짧은 영상에서 깊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울림을 주는 편인데, 그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그의 어머니에 관한 것이었다. ‘조승연 작가의 어머니는 어떤 사람인가?’라고 했을 때 조승연 작가의 나이대에 맞게 부모의 역할을 다해주었다는 것이다. 즉, 자녀의 성장 주기에 맞게 부모의 역할이 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었다. 성장기에는 정서적 안정을, 청소년기에는 적당한 통제와 독립할 수 있는 힘을, 성인이 되어서는 믿음을 주고  중년에 접어들 때즈음에는 친구로서의 역할을 해주었다는 내용이 주된 내용이었던 것 같다. 자식에게 필요한 도움이나 조언도 다 때가 있구나 생각했다.


 이와 비슷한 간접 경험을 최근에 했다. 얼마 전에 회사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가구를 조립할 일이 있었다. 회사 일이 너무 바쁘다 보니 1일 아르바이트생을 두어 명 불러서 같이 작업을 했다. 두 명중 한 명은 군대를 갓 전역한 친구였고, 나머지 한 명은 아직 군대도 안 간 푸릇한 대학 새내기였다. 두 친구 모두 사회적 경험이 전무하다고 할 수 있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취업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 보였다. 그중 1명은 기획 업무를 하고 싶다는 친구가 있었다. 때마침 내가 기획파트에 근무 중이었으므로 이것저것 질문과 답변을 갖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사회적 경험을 가지면 좋은지, 봉사활동을 하는 게 좋은지 해외에 나가면 좋은지 등 아주 일반적인 수준의 질문들이었다. 나는 내가 아는 선에서 성심 것 답변해 주었지만 답변을 해주면 해줄수록 어디선가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마음을 짚어보니 내 현실적 조언이 아직 때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두 친구 모두 취업까지는 2~4년 정도 시간이 있을 터였다) 그리고 취업시장도 생각보다 빠르게 급변하는 편이어서 10년이 지난 나의 정보가 이 친구들의 취업 시장트렌드에 얼마나 매칭이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10년 전과 지금의 취업 상황이 많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두 친구에게 상기시키고, 여러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세워가는 것이 더 중요한 때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자신보다 한 두 살 많은 취준생 형들의 조언을 듣는 게 현재 시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으로 대화를 마무리하였다.


 나는 면접관 경험도 있고, 좁은 취업문을 나름 비집고 들어와 본 입장에서 도움이 될만한 여러 조언을 해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조언은 현재 면접을 실질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취준생에게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으나, 아직 대학 1~2학년을 보내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다소 뜬구름 잡는 현실과 동떨어진 조언일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 느꼈다.


 조언이라는 것은 결국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말처럼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하기는 쉽지는 않다. 그것은 상대방이 처한 상태를 내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현재 나의 상황에 빗대어 타인을 가이드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유명 스타강사의 조언보다 친구들이나 한 두 살 위의 선배들의 조언이 때론 마음에 와닿고 도움이 될 때가 꽤 많다. 스타강사는 대중을 위한 스피치를 주로 하기 때문에 보편적인 관념을 바탕으로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만한 연설을 할 수밖에 없지만, 주변 지인들은 내가 처한 상황을 보다 깊게 이해한 상태로 조언을 해주기 때문에 더 도움이 될 때가 많은 것이다. 한두 살 터울의 인생의 선배(?)들이 인생의 전문가는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그들의 조언에는 때론 강력한 힘을 가진다.


 그래서 조언에는 선도가 있다고 믿는다. 조언자가 가장 최근에 겪은 경험일수록 ‘싱싱한’ 경험인 것이다. 내가 얼마 전 극복한 문제를 현재 맞이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싱싱한 경험만큼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 무엇보다 세상은 급변한다, 10년이 지난 나의 조언은 어쩌면 다 상해버렸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달리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상급자 러너가 이런 우리 초보러너의 마음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들이 초보시절을 상기하기에는 이미 선도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가 아닐까? 그들은 중급자 이상의 러너들을 위한 조언에 최적화되어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나는 아직 초보 러너이고, 잦은 부상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내가 겪고 있는 이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싱싱한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그래..! 나는 현재 진행형 초보 러너다. 전문가의 관점에서는 한 없이 모자라고 때로는 불확실한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다. 지금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생각들이 몇 개월 후면 생각을 달리할 수도 있다.(지금까지 그래왔기도 하고) 하지만 이런 과정도 성장의 과정이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초보자로서의 싱싱한 경험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만큼은 건강한 견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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