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고수로 가는 길이니까.
*[별일 없이 달리기 magazine]은
평안한 달리기를 추구하며 ‘달리기와 일상’에 대한 주제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달리기를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아니 보다 광범위하게...! 운동을 하기로 다짐한 적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갖가지 목표를 희망차게 써 내려가고 이미 그 목표를 달성한 것처럼 상상해 본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나에게 있어서 목표가 갖는 색채는 짖다. 나는 그림에 소질이 없지만 내가 목표라는 단어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아주 분명하게 선을 취하고 명료한 색상으로 채색할 것이다. 적어도 무채색의 수묵화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목표는 나와의 약속이며 꼭 달성해야 하는 구체적인 대상이기 때문이다. 운동 또한 마찬가지다. 보다 강한 정신력으로 하기 싫은 마음은 의식적으로 치워버리고 목표달성을 위한 하루를 보냈을 때 나는 내 자존감을 지킬 수 있었다.
달리기를 시작함과 동시에 나 또한 목표와 함께 했다. 물론 이때 즈음의 나는 내 몸뚱이의 나약함을 어느 정도 인지했다고 생각하고 매우 낮은 목표를 설정했다. 그것은 바로 매일 달리기. 하루에 100m라도 달릴 것! 하지만 속도나 거리에 집착하지 말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9개월을 매일 달릴 수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달릴 장소가 있었다는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비가 거세게 몰아치는 날이면 체육관 근처의 다리 밑에서 비를 피하며 간단한 단거리 조깅을 하였고, 비가 적당히 내린다 치면 마치 달리기에 흠뻑 빠진 낭만 있는 사람처럼 비에 홀딱 젖은 채로 야외에서 달리기를 했다. 비 오는 날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매우 활동적이며 어쩌면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자아 도취하여 달리는 우중(雨中) 러닝은 사회에 찌든 나를 사춘기 소년으로 돌아가게 해 줄 수 있는 간간한 이벤트 같은 것이었다.
사실 이렇게 매일 달리는 동안 몸에서 신호를 보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발바닥에 통증이 있었고 때로는 정강이 통증을 수반했다. 하지만 무식하게도 나는 몸의 신호들을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겼다. 그러고는 몸도 곧 괜찮아졌기에 내 몸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으로서 자아도취하기 일상이었다. (마치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야... 끈기가 있어...라고 무의식이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몸뚱이는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 아니 당신이 그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으로 나약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 점은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9개월 차에 접어들자 그동안 지속되었단 발바닥 통증에 더해 종아리에 쥐가 날듯한 느낌이 수일째 지속되었다. 어느 날은 도저히 뛸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달리기를 중도 포기했다. 알고 보니 이 병들은 악명 높은 아킬레스건염과 족저근막염이었다. 달리기를 일정 기간 해본 사람이라면 많이 들어봤을 이 병은 러너들을 장기간 괴롭히는 고질병 중 하나이다. (보통 아킬레스건염, 족저근막염, 장경인대 증후군 이 세 가지 질병이 러너를 달리지 못하게 하는 3대 질병이라고 한다.)
그렇게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달리기를 하지 못하게 됐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간간히 조금씩 조깅도 해보았지만 바로 종아리가 피로해지고 쥐가 날 것처럼 저렸다. 나는 나름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몸을 혹사시켜 왔던 것이다. 9개월이란 시간 동안 체력은 생각보다 많이 올랐다. 즐겁게 달리며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실력정도는 되었고 10km 달리기도 1시간 이내에 여유롭게 들어올 수 있는 정도면 적어도 왕초보는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렇듯 매일 달리기는 쉽다. 빨리 달리는 것도 생각보다는 쉽다. 하지만 다치지 않으면서 달리기는 어렵다. 콘텐츠 무한 생산의 시대, 유튜브에 나름 유명한 유투버들을 검색해 봐도 달릴 때 몸에 덕지덕지 테이프를 붙여 인대와 근육을 보조하거나, 이미 몸에 통증이 있는대도 목표달성을 위해 달리기를 지속하는 러닝 유튜버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먼 거리를 달리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생각보다 쉽다 먼 거리를 가려거든 천천히 뛰면 된다. 마음이 너무 앞서 천천히 달리기가 어렵다고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곧네 내 체력이 그렇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매일 달리는 게 어렵다고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습관이 된 하루 루틴은 어기는 것이 더 힘들더라. 역시 제일 힘든 건 무탈하게 달리기였다. 아프지 않고 별일 없이 달리기 그것은 달리기라기보다 수련에 가까운 것이었다. 내 몸에 귀 기울이고 소통하며 어르고 달래주기도 해야 하며 사냥개처럼 무턱대고 달려들고 경쟁하는 마음을 수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리기 주제를 별일 없이 달리기로 정했다. 정말 별일 없었으면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