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데 Josh고?) Little Josh 관찰일지

by 퇴근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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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우리 회사에는 빌런 조부장이 있다.
팀원들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지치게 만드는, 바로 그 조씨 말이다

.

이런 사람은 신기하게도 어디에나 꼭 있다지.
‘또라이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이 그래서 생긴 걸까.


조씨, 제발 정신 좀 차려라.
너… 어디, Josh고?


"실화를 기반으로 작성하였으나, 일부 각색함"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Josh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멀쩡한 얼굴하고 돌아다니는,
정상 코스프레 전문가들.
그 존재들은 대체 어디에서 번식하는 걸까.

이 고민은 사실 Josh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됐다.

나름 원인 분석도 해봤는데, 사람 하나의 인생을 두세 가지 이유로
“그래서 얘가 이렇게 됨!”
이라고 말하기엔, 인생이란 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몇 가지 힌트를 찾긴 했지만, 그건 나중에 풀기로 한다.)


그러다 관점을 바꿔봤다.
“저런 빌런은 시대불문 어딘가엔 항상 존재한다면…?”
그렇다면 지금 내 옆에 있는 동료들, 잘 지내는 후배들 사이에서도
이미 그 싹은 슬슬 자라나고 있을지 모른다는 소설 같은 결론이 나왔다.

그 관점을 장착하고 세상을 다시 보니,
아… 역시 있었다. Post Josh들.

그래서 오늘은 Josh보다 더 귀엽고(?) 더 은근슬쩍 존재감을 드러내는
Little Josh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얼마 전 회사에서 사건이 하나 빵 터졌다.
2년 전에 CEO가 지시한 일이 있었는데, 그게 거의 진척이 없었다는 것.
그냥 말 그대로… 그 본부가 ‘게으름을 너무 잘 핀 결과물’이었다.

문제는 그걸 우리가 백업해줘야 했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 팀이 중심이 되어 여러 유관부서와 긴급 미팅이 열렸다.

회의실엔 다양한 인간들이 모였다.


자기 할 말만 던지고 회피하듯 빠지는 사람

말은 많은데 무슨 말인지 본인도 모르는 사람

그리고 괜히 입 열었다가 회의 길어질까봐 조용한 사람들 (나 포함)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서 튀어나오는 말들.
앞뒤 맥락도 안 맞고, 문장 사이 어디에 내용이 숨어있는지도 모르겠는 말들.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어버린다. “정상은 아니네...”


내가 내린 나름의 결론은 이렇다. 자격지심, 무능함에 대한 두려움,
‘혹시 내가 모르는 게 들키면 어떡하지’라는 공포.
그게 합쳐지면 사람이 이렇게 된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딱 맞다.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그 상태를 너무 오래 유지한 나머지

‘내가 말을 많이 하는 이유 → 내가 유능해서’
이 공식으로 자기 세뇌까지 끝낸 듯했다.


“세일즈를 늘려야 합니다.” — 그래서? 어떻게?

“3개월 평균을 참고해야.” — 그 3개월이나 6개월이나... 기간이 문제가 아니라고…

“예예, 제가 말한 게 그거예요!” — 너… 그 말 한 적 없는데…

심지어 이 세 가지 유형을 완전체로 탑재한 사람이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우리 팀원도 있었다.
그건 좀… 스트레스였다.


이 모든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나는 말수가 줄어든다.

무력감도 조금 있지만, 사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진짜는 진짜를 서로 알아본다.

괜히 불필요한 말로 에너지 쓸 필요 없다는 걸 회사 생활 몇 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정말 중요한 부분만 딱 짚고,
피해 보지 않도록 필요한 말만 정정하고.
그 외엔 그냥 조용히 관찰하는 편이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니까


모든 사람이 모든 분야에서 잘할 순 없다.
그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걸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배우는 사람도 있고, 나아지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더 세뇌해가며
“내가 맞아, 나는 유능해” 이렇게 자신을 설득하는 사람도 있다.

그 과정의 끝에 서 있는 게 아마… Josh들 아닐까.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 큭큭큭"

오늘은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 마지막 대사로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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