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길을 헤멜 인간의 운명이기에
나는 길을 잃었기에 돌아갈 길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안내해주겠다고 말한 사람이 평탄한 길을 꽤 오래 함께 걸어준다. 별안간 길이 막다른 데까지 왔다. 그때 안내해준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자, 이제 여기서부터 돌아갈 길을 찾아보시오” – 꼭 이런 모양이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반철학적 단장』
우리는 살아가다 보면 문득 길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곤 한다. 명확한 목적지를 설정해주는 절대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목적지가 뚜렷하지 않으니, 길을 잃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럴 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고, 다른 이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한다. 당신은 길을 알지 않습니까, 나를 이끌어주시오, 하면서.
하지만 상대방이 길을 찾아주지 못하리란 사실은 자명하다. 목적지를 설정하는 일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고, 그렇기에 모든 길은 결국 본인이 스스로 개척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한때 나는 누군가와 함께 길을 찾아 나서는 일에 회의적이었다. 어차피 그 끝엔 “자, 이제 여기서부터 돌아갈 길을 찾아보시오”라는 말만 남아, 나의 기대를 산산조각 낼 테니까.
그렇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회의적일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누군가와 미지의 길을 함께 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이미 아름답기 때문이다. 다른 이와 헤매면서 만들어가는 추억은 다른 무엇으로도 얻을 수 없어 소중하다. 그리고 추억은 마음 깊숙한 곳에 차곡차곡 쌓이며 영혼을 따듯하게 채워준다. 어차피 평생 길을 헤맬 인간의 운명이기에, 그 길이 아름다워지도록 다른 이와 함께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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