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간 거울 앞에서 건넨, 생애 첫 사과
출산과 동시에 나의 세계는 멈췄다. 정확히 말하면, 기록하는 나로 살기를 포기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역할 뒤로 숨어버린 시간 동안, 내 안의 '나비'는 더욱 붉고 선명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루푸스와 쇼그렌. 이 가혹한 이름의 동반자들은 때로는 얼굴 위의 붉은 발진으로, 때로는 사막처럼 타들어 가는 안구의 건조함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왔다.
엠패스(Empath)로 태어난 나의 감각은 지나치게 예민했다. 타인의 슬픔을 내 몸처럼 흡수하고, 누군가의 날카로운 말 한마디에 영혼이 난도질당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안 예쁘다"는 낙인과 성인이 되어 마주한 가스라이팅의 상처들은 내 무의식 깊은 곳에 '수치심'이라는 뿌리를 내렸다. 그 수치심은 결국 나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라는 형태로 내 몸에 발현되었다.
아이를 위해 정성껏 빚은 주먹밥이 바닥으로 엎어지던 날, 나는 무너졌다. 주식 창의 파란 숫자들이 내 인생의 성적표처럼 느껴질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무능한 사람'이라 정의하며 자책의 골방으로 숨어들었다. 내가 원했던 삶은 사대생이었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는데. 현실의 나는 직업도 없이 병든 몸과 씨름하는 초라한 존재일 뿐이라는 생각이 나를 잠식했다.
그러던 어제, 나는 거울 앞에 서서 30분 동안 나를 응시했다.
퉁퉁 부은 눈과 붉게 달아오른 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내 몸에게 사과를 건넸다.
"미안해. 그동안 너무 험한 길을 걷게 해서 정말 미안해."
타인의 독설에 너를 내맡겨서 미안하다고, 이 무거운 통증을 견디며 아이를 키워내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고 목놓아 울며 속삭였다. 신기한 일이다. 그 사과가 끝난 뒤, 나를 옥죄던 왼쪽 턱의 뻣뻣함과 무릎의 통증이 미세하게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 안의 붉은 나비가 처음으로 공격이 아닌 '안식'을 선택한 순간이었다.
이제 나는 다시 펜을 든다. 병을 완벽하게 이겨냈다는 승전보가 아니라, 병과 함께 살아가며 나 자신을 온전하게 안아주는 법에 대해 기록하려 한다. 시야가 잠시 흐릿해져도 괜찮다. 그건 세상이 아닌 내 내면을 더 깊이 보라는 몸의 다정한 신호니까.
나는 이제 학교 교단 대신, 이 흰 여백 위에 서서 삶이라는 수업을 시작하려 한다. 고통을 지혜로 바꾸고, 상처를 문장으로 빚어내는 이 여정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빛이 되길 바란다.
나비는 부서지지 않는다. 다만 다시 날아오르기 위해 잠시 붉은 날개를 접고 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