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푸스 나비발진과 팔자주름 사이, 내가 삼킨 말들의 기록
※ 알림: 이 글은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 심리적인 성찰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의학적인 자문이나 진단이 필요한 경우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어느덧 새벽 3시. 도서관 창가에 앉아 있을 때처럼 정적만이 흐르는 시간인데, 내 얼굴은 정적과는 거리가 멀다. 거울 속 미간과 코 옆, 그리고 팔자주름을 타고 번진 붉은 발진이 나비의 날개처럼 돋아나 있다. 가렵다. 이 가려움은 단순히 피부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한 말들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다.
최근 나는 너무 많은 '나'로 살았다. 아이를 돌보는 엄마, 당근마켓의 판매자, 영어 과외 문의에 답하는 강사, 그리고 성우 대행 일을 고민하는 프리랜서까지. 여기에 "예전에 나는 형편없는 강사였어"라는 과거의 부채감과 "남편은 왜 도와주지 않을까"라는 현재의 서운함이 뒤섞여 내 면역 체계를 흔들고 있었다.
팔자주름을 따라 번진 가려움은, 사실 내가 삼킨 '억울함'의 주소지였다.
심리학적으로 얼굴은 세상과 마주하는 가장 첫 번째 경계선이다. 특히 입 주변의 발진은 하고 싶은 말을 꾹 눌러 참을 때, 혹은 "나를 좀 알아달라"는 처절한 호소가 배출구를 찾지 못할 때 붉은 꽃으로 피어난다. 남편을 향한 비난을 멈추기로 마음먹었지만, 그 비어버린 자리에 채워진 '경제적 독립'에 대한 압박감이 다시 내 미간을 옥죄었던 모양이다.
문득 21살의 내가 떠올랐다. 사대에 가고 싶었지만 꿈이 꺾였던 그 아이. 그 아이가 제대로 울지 못하고 삼켰던 아쉬움들이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나비발진이라는 이름으로 얼굴에 새겨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무능해"라고 스스로를 몰아세울 때마다, 내 몸의 나비는 파르르 떨며 더 붉게 타올랐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가려움은 나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려는 몸의 눈물겨운 방어라는 것을.
"여기까지가 내 한계야, 소진아. 더 이상 타인의 주파수에 너를 맞추지 마."
내 몸은 피부를 통해 나만의 단단한 경계선을 긋고 있었다. 7명의 선생님 선물을 고민하고, 과외 홍보 문구를 다듬으며 에너지를 소진하는 나에게, 이제 그만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쉬라고 명령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무거운 짐을 하나씩 내려놓기로 했다. 집 청소는 일주일에 단 이틀만 하기로, 유튜브는 기운이 날 때만 찍기로, 그리고 과거의 서툴렀던 나를 기꺼이 용서하기로. 108배로 몸을 단련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가장 위대한 수행은 그저 시원한 팩 하나를 얼굴에 올리고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채 잠드는 일이다.
거울 속 붉은 나비를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미안해, 내가 너를 너무 몰아붙였지? 남들이 몰라줘도 내가 네 수고를 다 알아."
그 한마디에 미간의 열기가 아주 조금 식어가는 기분이 든다.
내일 아침, 자고 일어난 자리에는 가려움 대신 평온함이 내려앉아 있기를.
비록 시야는 흐릿하고 몸은 고되지만, 나는 오늘도 나를 읽어내는 글을 쓰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붉은 꽃이 지고 나면, 그 자리엔 더 단단한 내가 피어날 것임을 믿는다.
**"※ 참고용으로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의학적인 자문이나 진단이 필요한 경우 전문가에게 문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