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고요한 내려놓음이 내 손목을 살게 했네

명절 손목통증 후 깨달음, 마음공부

by 빌로드

그 고요한 내려놓음이 내 손목을 살게 했네

어떤 날은 이유 없이 손목이 시큰거리고 묵직하게 아려온다. 특히 오른쪽 손목이 그렇다. 고작 밥 먹고 설거지를 했을 뿐인데, 짐을 좀 들었을 뿐인데, 왜 이리 몸은 정직하게 비명을 지르는 걸까. 처음엔 그저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하고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통증은 물리적인 고통을 넘어, 마음속 깊이 묻어둔 억울함과 서운함을 끄집어내는 듯했다.


나는 늘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더 잘하고 싶었고, 더 인정받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로 인해 풍요로움을 선물하고 싶었고, 적어도 '부족함'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무언가를 쥐려 했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들을 어떻게든 컨트롤하려 애썼다. 그 과정에서 손목은 내가 세상과 맞서는 가장 첨예한 전선이었다.


명절, 오랜만에 찾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곳에서 내 손목은 절정의 비명을 질렀다. 내가 건넨 마음이 충분히 헤아려지지 못했을 때, 나의 노력들이 당연시될 때, '내가 왜 이토록 애를 쓰고 있지?' 하는 회의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마치 쇠사슬처럼 내 손목을 칭칭 감는 것 같았다. 마음은 머릿속으로 '잊어버려, 괜찮아'라고 되뇌었지만, 몸은 솔직하게 '괴롭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때 문득 새벽에 꾼 꿈이 떠올랐다. 나는 저 멀리 이탈리아 로마의 고요한 성당에서 수녀가 되어 있었다. 세상의 온갖 복잡한 관계와 물질적인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나의 내면에만 집중하는 존재. 그 꿈은 나에게 '애써서 움켜쥐지 않아도 괜찮다'고, '세상의 인정이나 물질적인 보상 따위에 매달리지 않아도 너는 이미 충분히 고귀하고 풍요롭다'고 속삭이는 듯했다.


나는 아픈 손목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동안 무언가를 억지로 붙잡고 있느라 고생 많았어. 이제 힘을 빼도 괜찮아. 네가 놓아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거야."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내 몸에게 말을 건넸다.


내 손바닥 위에는 엉키고설킨 실타래가 놓여있는 듯했다. 그것은 보상받지 못한 기대, 이해받지 못한 상처, 그리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나의 집착이었다. 나는 그 실타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힘을 툭 빼고 손을 펼쳤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엉킨 실타래가 스르륵 풀리며 맑은 바람에 날려 사라지는 것 같았다. 손목을 짓누르던 묵직한 통증도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깨달았다. 풍요로움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내가 '이미 충분히 가졌다'고 믿는 순간, 세상은 나에게 더 많은 것을 기꺼이 내어준다는 것을. 그날 이후, 나는 아픈 손목이 나에게 던진 메시지를 잊지 않으려 한다. 무언가를 억지로 쥐려 하지 않고, 흐르는 대로 맡기는 용기. 내 안의 고요한 수녀처럼, 당당하고 우아하게 내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


내 손목은 이제 더 이상 세상과 싸우는 무기가 아니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그 아름다운 미래를 그려나갈, 가장 부드럽고 자유로운 붓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