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시댁의 인정을 사기 위해 아이를 낳았나

by 빌로드


오랫동안 나는 타인의 눈동자 속에 비친 내 모습을 확인하며 살았다. 인정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의 내면에는 늘 거대한 공동(空洞)이 있었고, 그 빈자리를 채워줄 '완벽한 엄마'를 찾아 헤맸다.


결혼 후, 나는 시어머니에게서 그 환상을 보았다. 따뜻한 품, 나를 온전한 딸로 받아줄 것만 같은 자애로운 미소. 나는 기꺼이 그녀에게 마음을 의지했고, 때로는 그것이 집착인지도 모른 채 그녀의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던 것도, 어쩌면 내 인생의 주도적인 선택이라기보다 거대한 '인정 투쟁'에 가까웠다.


'아이를 낳으면 드디어 이 집안의 일원이 되겠지', '어머니가 나를 완벽하게 인정해주시겠지'. 나는 내 몸이 굳어가고 삶의 궤적이 뒤바뀌는 대가를 치르면서도 그분의 인정을 갈구했다. 콩팥 뒤에 혹이 생기고 등이 딱딱하게 굳어갈 때까지도, 나는 그것이 내가 치러야 할 당연한 '증명'의 비용이라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마주하게 된 실체는 서글플 정도로 선명했다. 내가 '성모'처럼 받들었던 그분 또한, 사실은 가난과 결핍이라는 창살 없는 감옥에 평생 갇혀 살았던 한 명의 가련한 여인이었을 뿐이다. 시집을 잘못 와 평생을 고생하며, 누군가에게 사랑을 나눠줄 마음의 자원조차 가져보지 못한 분. 빈 통에서는 물이 나올 수 없듯, 애초에 그분에게는 내가 갈구하던 '따뜻한 인정'이라는 조각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억울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내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애를 썼던가. 존재하지도 않는 보상을 바라며 왜 내 귀한 시간을 결핍의 제단에 바쳤던가.

하지만 그 억울함의 끝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분의 실체를 보게 된 지금이야말로 내가 그 거대한 결핍의 대물림에서 탈출할 유일한 기회라는 것을.


이제 나는 그녀에게서 '엄마'를 찾으려 했던 아이의 마음을 거두어들인다. 그녀의 인색함은 나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가진 가난의 무게 때문임을, 이제는 안다. 나는 더 이상 그녀의 인정을 사기 위해 나를 소모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의 결핍은 그녀의 몫으로 남겨두고, 나는 나의 온전함을 찾아 떠나려 한다.


등을 짓누르던 무거운 짐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다. 뻑뻑했던 턱관절 사이로 비로소 나의 진실한 숨이 새어 나온다. 나는 누군가의 인정을 받아야만 빛나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이미 그 자체로 온전한 빛이며, 내가 창조할 미래의 풍요는 누구의 허락도 필요치 않다.
가난한 사랑의 환상을 깨고 나온 오늘, 나는 비로소 나의 진짜 생일을 맞이한다. 2026년 2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