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교회에 가게 된 이유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갈 무렵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앞으로의 입시 준비를 위해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그러나 늘 마음 한켠에서는 성경을 알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중학교 3년 때부터 인가 성경책을 공부했었는데, 어쩐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 한번씩 성경책을 필사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을 다잡은 것이 아니라, 내 손과 마음이 나도 모르게 그렇게 움직였다. 한번은 진지하게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이 성경책을 이해하게 도와주세요.’ 그로부터 얼마뒤, 나는 이대생이라는 언니를 지하철에서 만났다. “혹시 성경공부 관심있으세요?” 난 바로 “네”하고 대답했다. 마치 기도의 응답을 받은것 같았다. 그날 이후 내 인생이 크게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그 곳에서 나는 뭔가 답이 있다고 여겼다. 매일 가서 성경공부하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그 교회는 사뭇 다른 교회와는 달랐지만, 진정 사도행전의 길을 가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진리가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성경 강의 마지막 즈음에 그 놀라운 말씀을 해석 하신 분이 다시 오신 재림주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순간 ‘이단인가?’싶었지만, 그 곳의 영적인 역사들, 예를 들면, 다들 방언을 하고, 누군가는 환상을 보고, 누군가는 치유의 은사가 있고, 목사님 대언을 하는 분도 있었다. 실제 기도회때 목사님 대언도 있었고… 그런 증거나 사례들이 거기서 벗어나기 힘들 정도로 믿음이 갔다. 거기 다니면서 공부해서 대학을 갈 수 도 있겄겠지만, 나는 무언가 하나에 꽂히면 주변의 풍경이 모두 사라지고 오직 그 길만 보이는 스타일이었다. 훗날 알게 된 것이지만, 이것은 누군가에게는 집중력 결핍이라 불리는 ADHD의 과몰입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엠페스의 기질이었다. 이 두 기질이 '진리에 대한 갈구'라는 불씨를 만나자,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이 되었다.
훗날 심리학을 공부하고 나니 내가 이단을 갈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이 더 명확하게 보였다. 어린시절 과잉보호와 결핍이 성격적 의존성으로 이어지면 가스라이팅으로 연결되는 것이 거의 필연적이다.
나는 아들을 바라던 가난한 집의 셋째 딸로 태어나 환영받지 못한 존재라는 무의식적 상처를 안고 자랐다. 어린 시절 나는 소아우울증이었는데, 즐거움이라는 감정조차 낯설었다. 5~7살의 시절에 나는 집에 혼자 있었다. 두분이 저녁에라도 와서 눈을 맞추고, 사랑을 줄 줄 아는 분들이었다면 달랐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냥 멍하니 벽을 보고 하루종일 시간을 혼자 보내던 어린 아이였고, 부모님의 따뜻한 기억은 몇번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유아기 시절은 세상을 마음껏 탐험해야 한다던데, 집안에만 있었다는 것을 두고 훗날 내가 원망하니 돌아온 대답은 “널 보호한거다.” 였다. 그렇다. 그들은 신체적으로 나를 과잉보호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건 ‘세상은 위험하다’는 그들의 공포가 투영되어있지 않았나 싶다.
내 위로 6살 많은 큰 언니는 엄마처럼 동생들을 돌보았는데, 언니의 배려 또한 역설적으로 나를 ‘정서적 난민’으로 만들었다.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집안일 하나 시키지 않았던 온실 속의 환경은, 나를 공동체에 기여할 기회가 없는 이방인으로 자라게 했다.
"외로운 청소년 시절 나는 과하게 선생님이나 친구에게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것도 에너지가 부족한 탓이라고 한다. 텅 빈 내면을 채워줄 에너지를 외부에서 구걸해야만 숨을 쉴 수 있었던 것이다.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았으나 정작 '나'라는 존재는 방치되었던 시간들. 그 기나긴 공포와 고립이 만든 거대한 구멍은, 결국 나를 완벽하게 장악해 줄 강력한 소속감을 갈구하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3학년, 지하철에서 만난 그 낯선 손길이 '구원'처럼 느껴졌던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평생을 정서적 기아 상태로 떠돌던 내 영혼이 스스로 선택한, 가장 달콤하고도 치명적인 감옥이었다."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본 적 없는 영혼은 결국 ‘절대적인 가이드’를 찾게 된다. 청소년기 친구와 선생님에게 향했던 지독한 집착은, 성인이 된 후 ‘완벽한 답을 주는 재림주’라는 거대한 의존처로 옮겨갔을 뿐이다. 자립심이 거세된 자리에 소속감이라는 미끼를 던진 이단의 가스라이팅은, 나를 가두고 방치했던 그 낡은 울타리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이단 교회에 있었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가장 큰 고통은 지독한 수치심과 죄책감입니다. “내가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곳에 속았을까”라며 자신을 자책하며 밤을 지새우곤 하죠.
하지만 저는 그분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매우 못나서 그 길을 간 게 아니라고요. 어쩌면 당신이 처했던 환경에서 당신의 영혼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경로였을지도 모른다고요. 누구라도 당신 같은 결핍과 환경 속에 있었다면, 그 달콤한 가짜 안식처를 거부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러니 이제 스스로를 용서해 주세요. 당신은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당신은 정말 대견하고 위대한 존재입니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당신을 더 깊은 통찰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뼈아픈 수업이었을 뿐입니다.
당신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당신은 이제 막 감옥 문을 열고 나온,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개척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