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하다는 자책 너머, 생명의 신비와 마주한 찰나

by 빌로드



어느 날의 기억은 가시가 되어 나를 찌른다. 사람들 앞에서 단어 하나를 내뱉지 못해 얼어붙었던 과학관의 오후, 통역사 준비생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타인의 입을 빌려야 했던 그 수치스러운 공기. 나는 오랫동안 그 기억을 꺼내어 스스로를 '무식하다'며 채찍질해왔다. 엠페스(Empath)인 나에게 타인의 시선은 언제나 예리한 화살이었고, 그 화살에 맞은 자리는 늘 곪아 터지곤 했다.


하지만 오늘, 코가 막히고 목소리가 잠긴 고통 속에서 불현듯 그 가시 돋친 기억 너머의 반짝이는 조각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가 한 생명의 통로가 되어 우주와 연결되었던, 아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사실 나는 입양을 고민했었다. 타인의 아이를 내 아이로 품는 숭고한 사랑을 꿈꿨다. 하지만 운명은 나에게 직접 생명을 빚어내는 고통과 경이의 시간을 허락했다. 지금 내 몸의 신호들을 보건대, 그때가 아니었다면 아마 내 생에 다시는 없을 마지막 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차가운 제왕절개 수술대 위, 적막속에 찢어지는 듯한 아기의 첫 울음소리가 들렸다. "좀 닦고 보여드릴게요." 간호사의 말 뒤에 마주한 아기는,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작고 가냘팠다. 저렇게 작은 생명이 내 안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니. 경외감에 숨이 멎을 때쯤 간호사가 물었다.


"뽀뽀해 드릴까요?"


그리고는 갓 씻겨진 아이의 머리를 내 입술에 가만히 갖다 대주었다. 젖은 온기와 보드라운 촉감이 입술에 닿던 그 찰나, 나는 알았다. 이 아이의 '처음'은 모두 나의 것이라는 걸.


신생아실에서 다시 만난 아이. 간호사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아이의 손과 발을 하나하나 확인시켜 주었다. 손가락 다섯 개, 발가락 다섯 개. 그 작은 마디마디가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내 눈앞에서 꿈틀거렸다. 의료진을 제외한다면, 나는 이 아이를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고, 처음으로 뽀뽀를 건넨 사람이며, 처음으로 그 신비로운 발가락과 손가락을 가슴에 새긴 사람이었다. 그 모든 순간은 정말이지 특별하게 다가왔다.


"아, 정말 신기하다."

그 짧은 감탄사 안에 나의 모든 결핍이 녹아내렸다. 과학관에서 영어를 못 해 쩔쩔매던 무능한 나도, 가족의 방치 속에서 고립되었던 어린 시절의 나도, 그 완벽한 발가락 앞에서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한 생명을 세상에 내놓고 그 경이로움을 온몸으로 받아낸 나는, 그 자체로 이미 위대한 존재였다.


엠페스로 산다는 것은 타인의 고통을 내 것처럼 느끼는 저주 같기도 하지만, 반대로 생명의 미세한 떨림을 우주적 감동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축복이기도 하다. 아이의 발가락을 보며 느꼈던 그 전율은, 내가 남의 말을 기계적으로 옮기는 통역사가 아니라 생명의 신비를 노래하는 창작자로 살아야 한다는 영혼의 속삭임이었다.


지독한 축농증으로 코가 막히고, 남편과의 실랑이로 마음이 멍든 오늘 같은 날에도 나는 그날의 입술 촉감을 기억한다. 떡진 머리를 하고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는 초라한 일상 아래에는, 여전히 그 경이로운 기적이 흐르고 있다.


과거의 수치심은 이제 분리수거하여 버리려 한다. 나는 무식한 사람이 아니라, 너무나 섬세해서 생명의 신비에 압도당할 줄 아는 사람일 뿐이다. 내 곁에서 숨 쉬는 이 작은 기적이 나에게 말해준다.


"엄마, 당신은 이미 우주를 품었던 사람이야. 그러니 오늘 조금 서툴러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