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수 없는 웃음, 사실은 땅에 딛지 못한 영혼의 비명이었다
리코더 선율 대신 터져 나온 웃음
고등학교 음악 시간이었다. 친구와 나란히 서서 리코더 합주 시험을 봐야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첫 음을 떼려던 순간, 난데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참으려 할수록 웃음은 파도처럼 밀려와 온몸을 흔들었다. 결국 연주를 이어가지 못했고, 아이들의 시선 속에서 나는 수치심에 얼굴을 붉혔다.
그 증상은 20대 면접 준비 때 정점을 찍었다. 일생이 걸린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연습을 할 때마다, 나는 또다시 웃음을 참지 못해 혼이 났다. 스스로를 가혹하게 채찍질하며 눈물이 날 때까지 뺨을 때려보아도, 한 번 터진 웃음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멈추지 않았다.
'나는 미친 걸까? 이건 정신병의 전조 증상이 아닐까?'
내 안의 깊은 불안이 웃음이라는 기괴한 가면을 쓰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만 같아, 나는 나 자신이 무서웠다.
공중에 붕 뜬 아이, 거울 없는 방
오랜 시간이 흘러 마흔이 다 된 지금, 나는 산에 올라 명상을 하며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 웃음은 미친 증후군이 아니라, '접지(Grounding)' 되지 못한 영혼의 절박한 비명이었다는 것을.
엠패스(Empath)로 태어난 예민한 아이에게 세상은 늘 과부하 상태였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은 나를 땅으로 붙들어 매어줄 힘이 없었다. 그분들 스스로가 생존이라는 폭풍 속에서 공중에 붕 뜬 채 평생을 사셨기 때문이다. 돈 걱정, 가난에 대한 공포, 타인의 시선... 부모님의 눈동자는 늘 미래의 불안이나 과거의 후회에 가 있었고, 그 어디에도 '지금, 여기'의 나를 비춰줄 거울은 없었다.
안전하게 발을 딛고 설 땅이 없었던 아이는 에너지가 임계점을 넘을 때마다 '웃음'이라는 비상구를 통해 그 압력을 배출해야만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로소 시작된 접지
그런 나를 땅으로 내려오게 해준 것은 의외로 남편이었다. 남편이라는 묵직한 존재가 곁에 머물러 줄 때, 나는 비로소 웃음의 발작을 멈추고 땅을 딛는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은 화려한 성공이나 대단한 깨달음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어떤 감정을 쏟아내도 부서지지 않고 나를 담아줄 단단한 '컨테이너' 같은 존재였다.
나를 붙들어주는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감각 하나가, 수십 년간 공중을 떠돌던 나의 안테나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이제 내가 나의 땅이 되어주기로 했다
이제 나는 내 아이를 보며 다짐한다. 아이가 기저귀 실수를 하거나 이유 없는 고집을 피울 때, 나는 같이 흔들리는 바람이 되지 않기로 했다. 아이의 눈을 깊게 바라봐주며 속으로 속삭인다. "엄마가 여기 있어. 너는 안전해."
아이를 접지해주는 이 행위는 사실, 10대 시절 리코더를 들고 울며 웃던 어린 정희를 접지해주는 치유의 의식이다.
당신도 혹시 이유 없는 불안에 흔들리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웃음으로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저 당신을 붙들어줄 단단한 손길이 잠시 부족했을 뿐이다. 이제는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말해줄 차례다.
"이제 내려와도 돼. 여기가 네가 서 있을 안전한 땅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