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내 몸의 밭을 일구다

3. 흙이 가르쳐 준 것 - 사계절의 순환으로 얻은 지혜

by 조영빈

치유정원일기

나의 작은 정원은 내 몸과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정원은 나에게 새로운 언어로 말을 걸었다.

봄의 싹틈은 내 안의 희망을 깨웠고, 여름의 뜨거운 숨결은 인내를 가르쳤다. 가을의 수확은 감사의 마음을 익히게 했으며, 겨울의 침묵은 다시 채워질 시간을 예비하게 했다.

그 사계절의 순환 속에서 나는 한 가지 진실을 배웠다.

모든 생명은 각자의 회복 시간표를 가지고 있으며, 진정한 치유는 서두르지 않고 자신을 자연의 시간에 맡길 때 이루어진다는 것. 내 정원은 그렇게 나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과정을 계절의 리듬으로 기록한 ‘치유의 일기장’이었다.


[봄 ― 씨앗과 약속]

겨울의 긴 침묵이 서서히 걷히자, 정원은 다시 생명의 기척을 품었다.

얼었던 흙이 물기를 머금고 부드러워지고, 그 틈새에서 작은 새싹들이 조심스레 고개를 내민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늘 숙연해진다. 새싹의 연약함 속에는 오히려 삶을 뚫고 나오는 강인함이 있다.

수술 후 회복기에 있던 나는 어느 날 작은 키홀 텃밭 앞에 섰다. 삽을 쥔 손에는 힘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씨앗 봉지를 들었을 때 마음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쪽파, 상추, 케일, 시금치. 작은 씨앗을 흙에 묻으며 속삭였다.

“잘 자라다오. 네가 자라는 만큼 나도 회복할 거야.”

며칠 뒤, 흙을 뚫고 올라온 연둣빛 싹은 내게 첫 위로를 주었다. 마치 내 몸도 함께 살아날 수 있다는 증거처럼, 작은 싹은 떨리는 내 마음을 붙잡아 주었다. 봄은 늘 새로운 시작을 허락한다. 치유농업은 그 시작을 몸으로, 마음으로 경험하게 한다.

삶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작은 씨앗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4월 20일 ― 흙 위에서 맑아지는 마음

오늘은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많이 움직였다.

삽을 들고, 흙을 일구고, 작은 모종 하나하나를

키홀드와 상자 텃밭에 정성껏 눕혔다.

몸은 분명 바빴는데, 이상하게도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은 가볍고, 머리는 맑았다.

마치 내 안의 탁한 것들이

흙 속으로 스며들고, 대신 푸른 기운이 자라나는 듯했다.

씨앗 하나, 모종 하나가 삶을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마법 같다.

자연과 손을 맞잡는

이 시간이 지금 내게 가장 진실하고 평화로운 순간이라는 걸 알았다.

오늘도 나는, 땅 위에서 조금씩 살아지고 있다.

그리고 아주 잘 살아가고 있다.


4월 20일 ― 기다림의 설렘, 나이 들어 피어나는 마음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텃밭을 쓰다듬는 시간.

나는 오늘도 이 자리에 선다.

어제 심은 작은 식물들이 조심스럽게 뿌리를 내리려 애쓰고 있다.

어떤 모양으로 자랄까? 서로 어울리는 색으로 피어날까?

누군가는 먼저 자라고, 누군가는 천천히 따라올까?

이 모든 것이 궁금하고, 설렌다. 참 이상하지.

내 나이 예순다섯, 이제는 ‘설렌다’는 말을 쓸 일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이 작은 텃밭 앞에서는 하루하루가 기대가 된다.

그러면서도 문득 마음 한편에 초조함이 스며든다.

시간은 점점 빠르게 흘러가고, 몸은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고,

무언가 더 해보려는 마음은 자꾸 조심스러워진다.

하지만 텃밭은 말없이 가르쳐 준다.

"천천히 자라도 괜찮아. 각자의 속도대로 자라는 게 자연이야.

지금 이 기다림도, 설렘도, 초조함도 다 삶의 일부야.“

그 말을 들은 듯, 내 안의 불안이 조금 가라앉는다.

오늘도 내 마음의 잡초를 살짝 뽑고, 그 자리에 작은 평화를 심는다.

내 나이에도 설레고, 기다리고,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 텃밭이 내게 주는 가장 큰 선물 같다.


4월 27일 ― 늦은 파종, 그리고 기후의 불안

텃밭에 다시 한번 손을 댔다. 한참 전부터 준비했던 씨앗들이

여전히 서랍 한구석에 남아 있다는 걸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서둘러 씨를 뿌렸다. 하지만 마음 한켠이 편치 않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기온은 점점 오르고, 해는 강해지고 있는데,

이 작은 씨앗들이 과연 제대로 자라줄까?

며칠 전에 심은 오이는 이미 냉해를 입었다.

하루아침에 잎이 시들고, 줄기가 힘없이 꺾였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지만, 회복은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기후변화는 농부에게만이 아니라,

텃밭을 가꾸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도 더는 먼 얘기가 아니다.

파종 시기를 계산하는 것도, 작물 선택을 고민하는 것도,

예전처럼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이 모든 고민과 걱정 속에서도 나는 오늘 씨앗을 뿌렸다.

아직은 포기할 수 없는 마음. 아직은 기다려보고 싶은 마음.
어쩌면 텃밭을 가꾼다는 것은 언제나 불완전한 자연을 받아들이고,

불확실성 속에서도 희망을 심는 일일지도 모른다.

내일은 모르지만,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4월 27일 ― 드디어 완성, 스파이럴 허브 화단

오늘, 드디어 하나의 작은 우주를 완성했다.

시간을 들여 벽돌을 쌓고, 돌을 얹고, 땅을 다듬어 만든 스파이럴 허브 화단.

그곳에 생명을 하나하나 심어 넣었다.

비올라, 팽이꽃, 한련화, 로즈마리, 라벤더.

이름만 불러도 향기롭고, 상상만 해도 화사해지는 식물들이다.

비올라는 작은 별처럼 피어날 것이고,

한련화는 다정한 미소처럼 화단을 감쌀 것이다.

로즈마리와 라벤더는 햇살 속에서 잎을 흔들며,

그 향기로 이 작은 정원을 채워줄 것이다.

오늘은, 그 아름다움과 향기를 예약하는 날이다.

당장 내일 어떤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흙 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 향을 품기 위한 준비가.

완성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기다림의 시작이다.

이 작은 스파이럴 위에 피어날 계절의 이야기들을

나는 천천히, 조용히, 함께 걸어가려 한다.


[여름 ― 땀과 인내]

여름의 정원은 늘 숨 가쁘다.

햇살은 뜨겁게 내리쬐고, 비는 거침없이 쏟아진다. 며칠만 돌보지 않아도 풀은 허리 높이까지 자라 있고, 덩굴은 이웃 작물을 감싸며 자리를 차지한다. 여름의 정원은 순식간에 정글이 되어버린다.

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낫을 들었다. 잡초와의 싸움은 끝이 없었다. 그러나 땀 흘리며 허리를 굽히는 순간마다 살아 있음을 느꼈다. 지쳐 쓰러질 듯한 몸이었지만, 가지에 맺힌 작은 열매 하나가 내 손에 다시 힘을 불어넣었다.

특히 7월 초, 치유음식 체험 행사를 앞두고 정원은 내게 인내를 요구했다. 비올라와 한련화는 화단을 물들였지만, 오이는 냉해로 시들었다. 마음이 무너졌지만, 다시 심고 돌보며 배웠다. 모든 것은 완벽할 수 없다. 그러나 돌봄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

여름의 혼돈 속에서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회복은 기다림이 아니라, 온몸을 기울여 참여해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땀방울이 떨어진 자리마다 삶은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혼돈은 결코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다른 얼굴이다.


6월 16일 ― 백합을 기다리며

장미는 제 몫의 아름다움을 다하고,

작약은 충분히 피고 지고,

벚꽃과 수레국화도 잠시 뒤로 물러났다.

지금 이 정원은 잠시 고요한 무대 같다.

화려한 봄이 퇴장한 자리에 곧 등장할 여름의 주인공이 기다리고 있다.

백합.

지금, 내 정원의 하이라이트는 아직 피지 않았다.

촉촉한 이슬을 머금은 잎 사이로 단단히 닫힌 꽃봉오리들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곧이야" 하고 속삭이는 듯하다.

나는 그 말을 듣는다.

이 꽃 하나를 피우기 위해 얼마나 긴 시간을 준비했을지.

햇살을 받고, 비를 견디고, 이슬에 몸을 맡기며

서서히 자기만의 시간을 살아온 그 백합을.

하나둘, 다른 꽃들이 물러나고 이제 무대가 비워질 때, 그제야 그 우아한 자태로

이 정원의 중심을 장식할 것이다.

지금은 그저 기다린다. 그 차례를. 그 향을.

그 침묵 속의 약속을.


7월 2일 꽃이 전해준 위로

꽃은 말이 없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엔 긴 시간을 견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작은 봉오리는 긴장을 머금고 있다.

언제 열릴까, 피어날까, 혼자서도 얼마나 고민했을까.

하나둘 피기 시작한 백합. 잎사귀 틈새로 고개 내민 능소화.

꽃들은 말없이 위로한다.

“지금처럼만 있어도 괜찮아.”

“너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

때로는 기다림이 가장 깊은 사랑이라는 걸 꽃이 먼저 안다.

철마다 피고 지는 정원처럼 내 마음에도 계절이 흐른다.

조급한 마음, 흔들리는 생각, 모두 흙 속에 맡기고 오늘도 꽃처럼 살아본다.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주는 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기를.

말 없는 위로가, 이 정원에도, 내 마음에도 퍼진다.


7월 5일 정원의 절정, 그리고 바람 한 줄기

백합과 능소화, 나리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함께 피어났다.

수줍은 듯 올라온 나리,

화사한 웃음으로 줄지어 선 능소화,

그리고 절정의 향기로 자리를 지킨 백합.

그 찬란함을 깨운 건, 조용히 스쳐간 바람 한 줄기였다.

바람은 머물지 않고 잔디를 깨운다.

방금 떨어진 꽃잎 하나, 그 위로 덮이는 백합 향.

철이 와서 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준비되어야 피는 것.

정원은 그렇게 나에게 말해준다.

지금이 절정이고,

지금이 향기이며,

지금이 기다리던 순간이라고.


7월 12일 키친가든에서 식탁까지, 오늘의 식재료

정글처럼 자란 텃밭을 지나며 하나하나 손으로 채소를 땄다.

햇살을 머금은 치커리, 땅의 에너지를 품은 적양파,

손바닥만 한 자주빛 양배추,

그리고 향긋한 민트와 허브 잎들.

이 모든 것이 오늘 나의 샐러드가 되었다.

자연이 차려준 식탁 위에는 ‘정성’, ‘계절’,

그리고 ‘함께’라는 세 가지 재료가 놓였다.

삶이 이렇게 단순해질 때, 비로소 마음이 가장 풍요로워진다.


7월 15일 떨어진 꽃잎앞에서 - 정원에서 배우는 삶의 무늬

예전엔 꽃잎이 지면 ‘정리해야겠다’,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능소화 꽃잎이 촘촘히 바닥을 채울 때,

백합이 고개를 떨구며 색을 잃어갈 때,

나는 그 안에서 ‘완성’의 미학을 본다.

피어나고, 머물고, 사라지는 것.

그 모든 과정이 한 생의 성실한 연주였다는 것을 안다.

꽃잎은 스스로를 버리는 법을 배웠고,

나는 그것을 보며

이제야 '놓는 삶'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다.

한때는 성취만이 나의 기준이었다.

그러나 텃밭과 정원은 말한다.

"최선을 다한 후에는 땅에 닿아 쉬어도 괜찮다"고.

그래서 오늘은 빗물에 눅눅이 젖은 꽃잎을

‘임무를 다한 흔적’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말한다.

“고맙다. 아름다웠다.

내년에도 다시 만나자.”


7월 23일, 자연의 순환을 바라보며

장맛비가 잠시 멈춘 이른 아침,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촉촉이 젖은 흙냄새,

잎사귀 끝에 매달린 빗방울이 아직도 이곳에 장마의 흔적을 남긴다.

능소화, 백합, 나리꽃은 자신의 몫을 다한 듯 고개를 숙였다.

꽃잎은 떨어졌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여정의 시작이다.

한 철을 찬란히 살고 나면, 자연은 스스로를 거두고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한다.

텃밭도 마찬가지다.

초여름에 심었던 채소들은 수확을 마치거나 시들어가고 있다.

애플민트, 치커리, 상추, 바질… 이제는 가을을 준비할 시간.

땅은 쉴 틈도 없이 새로운 생명을 품기 위해 고요히 기다린다.

저 멀리, 무궁화가 한창 꽃을 피웠고,

코스모스와 배롱나무도 제 철을 맞아 활짝 웃고 있다.

머루 포도는 푸른 열매를 매단 채 햇살을 기다리고 있고,

덩굴 사이사이 익어가는 시간이 흐른다.

모든 것은 제 자리에서, 제 타이밍에,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자연은 조급하지 않다.

서두르지도, 멈추지도 않고 그저 자신의 리듬에 맞춰 살아간다.

오늘의 텃밭은 그 자체로 교훈이다.

회복도, 삶도, 자연도—

모두는 ‘순환’ 안에서, 스스로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었다.


7월 24일 - 쪽파와 동부콩 파종, 가을을 심다

장맛비가 지나간 후, 텃밭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오늘은 여름 채소들의 마지막 잎새를 정리하고,

그 자리에 가을을 위한 새로운 생명을 심었다.

쪽파

지난 계절, 잘 말려두었던 쪽파 종구를 하나씩 정성스럽게 심었다.

퇴비와 텃밭 흙을 고르게 다져 넣고, 뿌리가 아래로 향하도록 가볍게 눌러주었다. 쪽파는 추운 날에도 잘 자라니, 초가을이 적기다.

흙 위로 비칠 듯 말 듯 드러난 머리, 참 사랑스럽다.

동부콩

비닐봉지에 보관해두었던 동부콩 씨앗도 심었다.

동부콩은 칼슘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회복기 식단에 좋은 재료다.

밭 가장자리에 두둑을 만들고 일정 간격으로 2~3알씩 심었다.

곧 연한 싹을 틔우고, 여름을 닮은 녹색을 다시 보여줄 것이다.

수확을 마친 상추와 치커리는 고마운 마음으로 뽑아냈다.

흙 속엔 아직도 미세한 생명들이 살아있다.

정리된 땅은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한다.

이 또한 자연의 순환이다.

수확과 파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오늘, 텃밭은 마치 인생 같다.

무언가 끝나야, 무언가가 시작된다.

내 몸도 그렇다.

병을 앓고, 비워내고, 다시 채우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다시 살아가는 중이다.

“텃밭에 쪽파를 심으며, 내 안에도 희망 한 줄기를 심었다.”

오늘도 작지만 깊은 숨을 텃밭과 함께 쉰다.


7월 27일 잔디 깎기 좋은 날

숨 막히는 여름볕 아래,

깎아도 깎아도 자라나는 생명의 고집을 껴안는다.

잔디깎이를 밀며 땀에 젖은 셔츠,

그 속엔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친 하루.

그래도…깎인 잔디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 한 줄기에

조금은 다시 살아난다. 회복은 때로 땀을 지나야 한다.

오늘의 나를 위한 작지만 뜨거운 실천.


7월 31일 떨어진 자리에서 다시 피어난 꽃

오늘 아침, 능소화 아래에서 잠시 멈추어 섰다.

어제 바람에 떨어졌던 주황빛 꽃잎들.

그 자리 위로,

오늘은 또렷하게 솟아오른 새로운 꽃봉오리들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마치 '괜찮아, 다시 피우면 돼.' 하고 말을 거는 듯했다.

수술 후 회복의 시간도, 텃밭을 일구며 땀 흘렸던 날들도,

모두 이렇게 ‘진 자리’에서 피어난 ‘새로운 시작’이었음을

이 작은 꽃봉오리가 알려준다.

능소화는 스스로를 자르듯 꽃을 떨군다.

그러고는 다음을 위해 준비한다.

이 아름다운 순환의 철학을, 오늘은 내 삶에 고스란히 덧씌워본다.

텃밭의 식물들도, 나 자신도, 꽃이 진 자리에서 다시 피어난다.

정원은 여전히 살아 있다.

나도 그렇다.


8월 5일 흙이 가르쳐준 리더십

예순 중반,

나는 흙 앞에서 또 다른 리더십을 배운다.

이곳에서는 명확한 계획도, 즉각적인 결과도 통하지 않는다.

흙은 느리고, 식물은 제 속도로만 자란다. 처음에는 답답했다.

“왜 아직 싹이 안 트지?”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흙은 내게 ‘기다림’을 가르치고 있었다.

성장에는 리듬이 있고, 자연은 그 리듬을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움직이고 누군가가 따라오는 리더십이 아니라,

함께 머무르는 리더십이었다.

흙이 속삭인다.

“네가 뿌린 씨앗과 너 자신이 지금 천천히 익어가고 있다.”

이제는 알겠다.

내가 정원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정원이 나를 보살피고 있다는 것을.

꽃이 더 이상 피지 않아도 괜찮다. 잎이 벌레에 조금 먹혀도 상관없다.

삶은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다.


8월 9일 입추 아침, 세대가 공존하는 정원의 이야기

입추가 지나니 아침 공기 속에 선선한 기운이 묻어난다.

잔디 위로 발을 디딜 때 전해지는 촉감이 한층 부드럽고,

흙 냄새가 더 깊어졌다. 오늘도 맨발로 잔디를 밟으며 하루를 연다.

정원은 여느 때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울타리 옆 배롱나무는

진한 초록 잎 사이로 붉은 꽃잎을 터뜨리며 여름의 마지막 색을 뽐내고,

우물 곁의 나팔꽃은

여린 분홍빛으로 조용히 인사를 건넨다. 그 모습이 마치 수줍은 소녀 같다.

한쪽에서는 작두콩 가족이 지지대를 타고 하늘로 향한다.

꽃을 피운 막내,

이제 막 열매를 맺기 시작한 아빠,

그리고 묵직하게 익어가는 할아버지 작두콩까지…

세대가 함께 어우러진 그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잎과 꽃, 열매가 함께 흔들리며 속삭인다.

“이 아침을 느끼고 가라,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내라.”

정원은 이렇게 매일 다른 표정으로 나를 깨운다.


8월 12일 잊고 지낸 표고목에 물을 주며, 간절한 희망을 심다

정원 한쪽, 오랫동안 눈길조차 주지 못했던 곳이 있다.

지난봄에 들여놓고는 방치된 세 그루의 표고목.

하얗게 먼지가 앉고,

수분을 잃어버린 나무껍질을 보니 왠지 내 마음 한구석이 시큰해졌다.

오늘 아침, 나는 조용히 다가가 물을 주었다.

차가운 물줄기가 말라버린 나무결을 타고 스며드는 소리

— 마치 오랜 목마름 끝에 내쉬는 생명의 숨결 같았다.

‘정말 이 마른 나무에서도 다시 생명이 피어날 수 있을까?’

표고버섯 나무는 느린 친구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무 속에서,

하얀 균사가 아주 천천히 자신들의 세계를 넓혀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믿고 기다리는 일뿐이다.

언젠가 어느 아침,

딱딱한 나무껍질을 비집고 작은 갈색의 동그란 버섯 하나가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순간을 상상한다.

그때의 기쁨과 향기로움이 이 기다림의 시간에 어떤 위로를 건네줄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8월 14일, 기후 위기 속에서

오늘도 무겁게 드리운 하늘 아래에서

어제와 다를 바 없이, 하늘은 여전히 검은 먹구름으로 가득하다.

아침 뉴스에서는 홍수 경보가 속보로 흘러나오고,

습기 가득한 바람이 텐트 끝자락을 부드럽게 흔든다.

그 아래 놓인 파란 의자들과, 어제 마저 정리하지 못한 텃밭 테이블.

멀리 온실 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묘하게 마음을 가라앉힌다.

기후 위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최근 몇 달간 읽은 기후 관련 책자들과 밤마다 보았던 다큐멘터리들이

이 회색 하늘 속에서 한 장면처럼 겹쳐진다.

폭염, 집중호우, 가뭄, 태풍… 이제는 뉴스 속 이야기가 아니라,

내 집 앞마당에서 체감하는 현실이 되었다.

과연 우리는 이 변화 앞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지속 가능한 농사?

기후 회복력을 높이는 마을 공동체?

아니면, 더 근본적인 ‘생활 방식’의 전환일까?

빗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마음속에 작은 다짐을 한다.

땅을 살리는 농사로 돌아가기 지역과 연결된 먹거리 순환 만들기

변화하는 날씨에 맞춘 치유농업 실험 이어가기

작은 발걸음이지만, 이런 실천들이 모이면 언젠가

이 먹구름을 걷어낼 힘이 될 거라 믿는다.


8월 24일 오늘 저녁 뒤뜰에서 – 곤달비는 살았지만 산마늘은 어디에

8월의 끝자락, 저녁 공기가 제법 선선해진 날,

오랫동안 마음에 걸렸던 뜰 정리를 시작했다.

호미를 들고 길을 덮을 만큼 자라난 잡초들을 걷어내며

봄에 심어둔 곤달비와 산마늘를 찾았다.

한참을 정리하다 보니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자갈 틈을 뚫고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넓은 잎의 곤달비 한 무더기.

하지만 간절히 찾던 산마늘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조금 아쉬웠다.

잡초를 뽑다 문득 생각이 스쳤다.

이 땅을 덮은 풀들도 그 끈질긴 생명력만큼은 귀한 존재들이지만,

이 정원에서는 결국 ‘제자리가 아닌 생명’, 즉 뽑아내야 할 존재들이었다.

그때, 눈에 띈 작은 손님 하나.

검은 배수관 아래, 자갈 틈 사이에서 분홍빛의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너무 곱고 반가워, 차마 ‘잡초’라 부를 수 없었다.

뒷마당을 정리하며 나는 오늘도 삶의 많은 것을 배운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 남아준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예기치 않은 만남이 주는 위로.


8월 28일 정글이 된 텃밭

여름이 끝자락으로 향하는 이맘때쯤, 우리 집 정원은 늘 그렇듯 정글이 된다.

밤새 비와 이슬을 머금은 풀들이 한껏 자라나고,

담벼락 옆, 항아리 주변,

그리고 잔디 사이사이까지 초록이 가득 차버렸다.

오늘 아침, 정원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문득 웃음이 나왔다.

"이 정도면 탐험이라 불러도 되겠다."

풀더미 사이에 숨어 있는 곤달비, 오랜만에 얼굴을 드러낸 작은 꽃,

그리고 제멋대로 뻗어나간 줄기들.

그 모두가 어우러져 정원의 풍경은 마치 작은 숲, 작은 정글 같았다.

하지만 정글을 바라보며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오늘은 낫을 들고 정원에 나서야 할 것 같다.

잡풀을 베어내고, 제 자리를 잃은 텃밭의 호흡을 되찾아 줘야 할 시간이니까.

정원은 늘 나에게 말을 건넨다.

"방치하면 금세 숲이 되고, 가꾸면 작은 천국이 된다."

오늘 아침 풍경은 제게 자연을 다스린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을 다스리는 것임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정글 같은 텃밭 속에서 살아남은 채소들은 의연하다.

그 속에서 작은 씨앗이 자라 싱싱한 잎을 내밀 듯,

나도 이 시간을 견디며 더 단단해지리라 다짐해 본다.

오늘 하루는 정글을 조금 덜어내는 날, 낫질을 하며 정원에 바람길을 터주고,

햇살이 채소 잎에 고루 닿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련다.

자연의 정글 속에서 작은 질서와 균형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정원에서 배운 삶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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