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내 몸의 밭을 일구다

2. 회복의 여정_겨울- 멈춤의 예감

by 조영빈

겨울을 향한 발걸음 ― 멈춤의 예감 (11월 이후)

아침 공기가 달라졌다. 잔디 위 서리가 반짝이고, 텃밭의 흙이 단단해졌다. 차가운 바람이 폐 깊숙이 스며들지만, 그 차가움이 싫지 않다.

이제는 달리기를 조금씩 시작했다. 몸의 움직임이 부드러워지고, 마음도 잔잔해졌다. 하루의 끝에 흙냄새가 남아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봄에 시작된 회복이 이제 계절의 끝자락에 닿았다. 완결이 아니라, 다음 계절을 향한 예고처럼 느껴진다. 곧 겨울이 온다. 나는 그 고요 속에서 내 몸의 균형을 시험해 보고 싶다. 멈춤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D+182(10.29) 안개 낀 아침 “멈춤 속에서 숨을 배우다.”

찬 공기가 뺨을 스치며 지나간다.

숨을 내쉴 때마다 흰 김이 피어오르고,

강 위에는 부드러운 안개가 낮게 깔려 있다.

마치 계절이 바뀌는 소리를 직접 듣는 듯 고요하다.

정원의 풀잎마다 서리가 내려앉고, 땅은 단단히 얼어 있었다.

어제의 가을빛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요즘은 계절이 참 빠르다. 가을의 여유를 느낄 틈도 없이 겨울이라니,

쯧쯧, 내 마음이 그만큼 분주했던 탓일까.

호숫가를 따라 천천히 걷다가 멈춰 선다.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난 산 능선이 묵화처럼 고요하다.

세상은 멈춰 있고, 오직 나만이 그 속을 천천히 지나간다.

병상에서 창밖을 바라보던 풍경이 이제는 내가 직접 걸어가는 삶이 되었다.

손끝은 차갑지만, 마음은 따뜻하다.

숨이 차오르면서도, 살아 있다는 감각이 온몸을 감싼다.

이런 새벽이 있기에 나는 또 하루를 견딘다.

이 아침, 다시 한 번 ‘치유농장에서 나이 들기로 한 결심’을 되새긴다.

겨울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어도 괜찮다.

내 안에는 여전히, 들깨 향 가득한 따뜻한 순두부탕의 온기와

흙냄새의 따뜻함이 살아 있으니까.


D+185(11.1) 수술 6개월, 몸의 리듬을 다시 배우다

아침 공기가 달라졌다.

이제는 잔디 위 맨발로 걷기가 버거울 만큼 땅이 차갑다.

그동안 매일 이어오던 맨발 산책을 멈추고,

오늘부터는 가벼운 조깅으로 바꾸기로 했다.

땅을 딛는 발끝에서 전해지는 냉기가 온몸을 깨운다.

숨이 차오르면서도, 그 속에 묘한 해방감이 있다.

수술 후 처음으로 몸이 다시 ‘움직이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오는 것 같다.

체력이 어느 정도 정상에 가까워지자 식욕도 다시 살아났다.

음식의 향과 질감, 따뜻한 국물의 온기가 이렇게 고마운 줄을

이제야 새삼 느낀다.

몸이 회복되어 간다는 것은 단순히 상처가 아물었다는 뜻이 아니라,

잃었던 감각들이 하나둘 돌아오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입이 유난히 마르다. 물을 마셔도 금세 다시 마르고,

밤이면 소변이 자주 마려워 잠을 깨곤 한다.

이 모든 변화가 회복의 과정 안에 있는 자연스러운 일인지,

아니면 아직도 몸 어딘가에서 균형이 흔들리고 있는 건지

스스로를 다독이며 하루를 건너간다.

몸의 신호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달리기를 마치고 잔디밭에 서니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치고 입김이 하얗게 흩어진다.

겨울의 문턱에 선 지금, 나는 다시 내 몸의 언어를 배우는 중이다.

무리하지 않되 멈추지 않고,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며
회복의 리듬을 찾아가고 있다.

수술 6개월,

이제는 ‘견디는 시간’에서 ‘살아가는 시간’으로 옮겨가는 길목에 서 있다.

회복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결과가 아니라 몸이 다시 삶의 박자에 맞춰 호흡을 배우는 느린 과정임을, 나는 조금씩 깨닫고 있다.

“몸이 회복된다는 것은, 다시 세상을 느낀다는 뜻이다.”


D+187(11.3) 나를 위한 특별한 오찬 “맛있는 즐거움”

11월의 첫 월요일,

점심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솜씨'를 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꾸준히 익혀온 건강 레시피를

나만의 방식으로 근사하게 완성해보고 싶었다.

통밀 파스타 면 위로 향긋한 바질 페스토와 상큼한 토마토소스가 어우러지고,

사이사이에 보물처럼 쫄깃한 관자가 숨어있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뜨거운 팬 위에서 노릇하게 구워낸 고소한 '갈비살'이다.

접시를 내려다보며 문득 생각한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이렇게 든든하고 기름진 음식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나의 식단은 엄격했고, 내 몸은 모든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180일이 훌쩍 지난 지금, 내 몸은 더 많은 에너지를 원하고 있다.

양질의 단백질을,

그리고 무엇보다 잃어버렸던 '맛있는 즐거움'을 갈망하고 있다.

이 한 접시는 단순한 점심이 아니다.

내 몸이 건강하게 회복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자,

다시 돌아온 삶의 활력에 대한 나 스스로의 축하이다.

맛있게, 그리고 감사히 먹는다.

이 든든한 힘으로, 이번 한 주도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D+188(11.4) '뚝딱', 일상의 활력을 되찾다

늦은 저녁이다.저녁 식사로 무엇을 할까 잠시 고민하다,

어제 장을 봐 온 신선한 재료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팬을 잡았다. 오늘 나의 선택은 '전복 가지 볶음'이다.

불과 몇 달 전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수술 직후, 나의 부엌은 '치료'와 '관리'의 공간이었다.

모든 식재료는 엄격한 기준에 따라 선택되어야 했고,

요리 하나를 하는 데도 조심스러움과 긴장이 따랐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뚝딱'이라는 부사가 어울릴 만큼, 나의 손놀림은 거침이 없었다.

딱딱했던 전복에 칼집을 내고, 가지와 토마토, 양파를 썰어

뜨겁게 달군 팬 위에서 볶아내는 모든 과정이 즐거웠다.

접시 위에 담긴 것은 단순한 저녁 식사가 아니다.

이것은 내 몸이 회복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기력 회복에 으뜸인 전복과 항산화 성분이 가득한 가지,

기름과 만나 영양 흡수율이 극대화된 토마토까지.

나는 더 이상 '환자식'이 아닌,

맛과 영양, 풍미가 살아있는 '요리'를 만들어 먹고 있다.

수술 후 180일을 훌쩍 넘긴 지금,

나는 '회복'을 넘어 '일상'을 되찾고 있다.

그리고 그 일상 속에서 잃었던 활력을 다시 채우고 있다.

맛있게 볶아낸 이 한 접시의 요리가 그것을 증명한다.

이 기분 좋은 에너지와 포만감이 참으로 감사한 밤이다.


D+189(11.5) 5시간의 강의를 마친 나를 위한 '균형'

수술 후 6개월 경과.

조심스러운 일정이었음에도, 오늘 나는 5시간의 강의를 강행했다.

마이크를 통해 쏟아낸 에너지와 긴장감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썰물처럼 온몸의 기운을 빼앗아갔다.

육체노동 못지않게 고된 정신의 노동이다.

이렇게 모든 것을 쏟아낸 날, 나를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저녁상에 오른 것은 따뜻함과 신선함이 공존하는, 지혜로운 한 상이다.

맑게 끓인 '소고기뭇국', 그리고 신선한 '두부 토마토 카프레제 샐러드'.

여기에 '찐 감자'와 '삶은 계란'을 곁들였다.

"이 정도면 오늘의 회복 치유 식사가 될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리고 확신을 담아 답한다.

"물론이다. 이것은 완벽한 회복식이다.“

소고기뭇국의 따뜻한 국물이 지친 몸의 긴장을 위로하고,

소고기는 고갈된 단백질과 기력을 채워준다.

두부 카프레제 샐러드는 항산화 성분이 가득한 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 대신 올린 담백한 두부로 또 한 번의 식물성 단백질을 더한다.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의 건강한 지방은 덤이다.

여기에 '완전식품'인 삶은 계란과, 속 편한 '좋은 탄수화물'인 찐 감자까지.

문득, 이 한 상에 담긴 완벽한 '균형'을 깨닫는다.

소고기(동물성), 두부(식물성), 계란(완전식품)이라는

세 가지 다른 단백질의 조화.

따뜻한 탕과 신선한 샐러드라는 온도의 조화.

기력을 보충하는 전통의 힘과,

영양을 계산하는 현대의 지혜가 이 한 쟁반 위에 공존한다.

나는 오늘, 이 훌륭한 '균형'의 식사로 소진된 나를 다시 채운다.

이 든든함이야말로, 내일의 회복을 위한 가장 확실한 약속이 될 것이다.


D+190(11.6) 네 가지의 단백질이 차린 아침

어제 5시간의 강의를 마친 뒤 남았던 묵직한 피로감이

아침 공기와 함께 느껴진다.

하지만 오늘은 이 피로를 씻어낼 강력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오늘 나의 아침 식탁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오색(五色)'으로 채웠다.

붉은 토마토, 노란 파프리카, 보랏빛 가지, 그리고 초록의 아보카도까지.

각기 다른 색의 채소들이 가진 강력한 항산화 성분이,

어제 애쓴 내 몸 구석구석의 피로를 씻어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따뜻하게 볶아낸 채소 위에 담백한 닭가슴살을 듬뿍 얹었다.

어제는 소고기와 두부, 계란으로 기력을 보충했다면,

오늘은 닭가슴살의 깔끔한 단백질로 하루를 시작한다.

여기에 낫토의 발효 에너지와 아보카도의 건강한 지방까지 더하니,

빈틈없는 '회복의 요새'를 쌓은 기분이다.

한입 가득 음식을 넣으니, 신선한 채소의 아삭함과 닭가슴살의 든든함,

아보카도의 부드러움이 어우러져 입안 가득 활력이 퍼져나간다.

고갈된 에너지는 반드시 다시 채워야 한다.

어제의 피로는 어제에 두고,

나는 오늘 이 오색의 건강한 음식으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힘을 얻는다.

훌륭한 아침이다.


[나의 치유 편지: 같은 길을 걷는 당신께]

안녕하세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께 마음을 다해 편지를 보냅니다.

저도 그 길을 걸었습니다.

그 길 위에서 때로는 절망했고,

때로는 아주 작은 희망 하나에 의지해 하루를 버텼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이제는 조용히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괜찮아집니다. 그리고, 괜찮아져도 됩니다.


조급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에게는 오직 당신만의 회복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은 반드시,

당신의 속도대로 흘러갈 것입니다.

지금 나는 정원의 향기 속에서 살아갑니다.

작은 새싹 하나에도 위로받으며,

예전보다 느리지만 훨씬 단단한 걸음으로 하루를 엽니다.

그런 시간이 머지않아 당신에게도 찾아오길 바랍니다.

몸이 회복되고, 마음이 숨 쉴 수 있는

당신만의 작은 쉼터를 만나길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해 주세요.

이 길 위에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나 또한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당신의 회복과 평안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치유의 길 위에서,

당신과 같은 길을 걷는 한 사람 드림.


다음편 3. 흙이 가르쳐 준 것 - 사계절의 순화으로 얻은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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