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회복의 여정 : 가을 - 나누는 회복(9~11월)
가을 ― 나누는 회복 (9~11월)
들녘의 색이 깊어지고, 공기 속에 서늘함이 섞였다. 나는 여전히 아침마다 흙 위에 섰다. 잔디의 찬기운이 발끝을 타고 올라왔지만, 이제는 그 냉기가 익숙했다.
텃밭의 배추, 갓, 무가 자라났다. 달팽이들이 잎을 갉아먹어도 화가 나지 않았다. 그것도 자연의 일부였다.
회복은 혼자서 완성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을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 강의와 보고서로 바쁜 날들이 이어졌지만, 이제는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알았다. 과도한 욕심 대신 하루의 숨을 정돈했다. 내 몸의 회복이 공동체의 회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흙과 사람, 계절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D+129(9.6) 따뜻한 들깨버섯탕으로 나를 위로하다. “자가돌봄이 곧 회복이다.”
며칠간의 바쁜 출장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금요일 아침.
몸은 약간 긴장되어 있었지만 마음은 평화로웠다.
며칠 만에 밖의 음식이 아닌, 내게 맞춘 따뜻한 식사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고소하고 든든한 ‘들깨버섯탕’.
염증 완화에 좋다는 들깨를 듬뿍 넣어 끓인 하얀 국물 한 숟가락이
몸속 깊이 스며들며 피로를 녹여준다.
달콤하게 찐 고구마가 건강한 에너지를 채워주고,
블루베리 그릭요거트가 장을 다스려주니
그야말로 ‘나를 위한 완벽한 위로식’이었다.
지칠수록, 피곤할수록 이런 작은 자가돌봄의 순간이 가장 큰 회복이 된다.
따뜻한 음식으로 속을 채우자 어제의 피로가 사라지고,
다시 오늘을 살아갈 힘이 생겼다.
D+129(9.6) 하루의 시작, 맨발 걷기 “발은 마음의 문이다.”
아침의 풀밭은 언제나 이슬로 젖어 있다.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나는 하루의 시작을 이 풀밭에서 맨발로 걷는 것으로 정했다.
차가운 풀잎이 발바닥에 닿을 때 전해지는 감각은 단순한 촉각을 넘어선다.
잠들어 있던 내 몸을 깨우고, 흐릿했던 정신을 맑게 씻어낸다.
몇 바퀴를 천천히 돌다 보면 하루의 윤곽이 그려진다.
오늘 해야 할 일, 마음에 맺혀 있던 근심,
그리고 잊고 있던 감사가 차례로 떠올라 정리된다.
그 과정은 마치 땅이 내 발자국을 받아 안으며
내 안의 불필요한 무게들을 덜어내 주는 것과 같다.
걷기는 단순히 신체적 건강을 지켜주는 습관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을 닦는 의식이자,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치유의 행위다.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흙과 풀의 차가움은 곧바로 심장으로 전해져
나를 다시 살아 있게 만든다. 수술 이후의 몸은 여전히 낯설다.
작은 변화에도 예민하고, 하루의 균형이 쉽게 무너진다.
그러나 맨발 걷기는 그런 내 몸을 다시 세워 주었다.
발로 흙을 딛는 순간, 나는 살아 있음의 근본을 확인한다.
생명이란 이렇게 단순한 접촉 속에서 회복되는 것이다.
걷다 보면 몸의 리듬이 회복된다.
가빠졌던 호흡이 고르고, 불안하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어느새 걸음은 기도가 되고, 발자국 하나하나는 다짐이 된다.
오늘도 나는 이 풀밭을 걸으며 다시 힘을 얻는다.
옛 사람들은 ‘발이 곧 땅과 맞닿는 마음의 문’이라 했다.
신체의 가장 낮은 부분이지만, 세상을 가장 먼저 느끼는 곳이다.
나는 매일 그 문을 열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문을 통해 다시 자연과 이어진다.
맨발 걷기는 나에게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삶의 태도가 되었다.
아픈 몸을 회복시켜 주었고, 흐릿한 정신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무엇보다 다시 살아가고자 하는 힘을 선물했다.
D+130(9.7) 손자에게서 얻은 힘 “사랑이 치유를 완성한다.”
삶의 회복은 어쩌면 아이의 성장과도 닮아 있다.
내 몸이 조금씩 힘을 되찾아 가듯,
손자 또한 매일 새로운 세상을 배워가고 있다.
아직은 할아버지 얼굴이 낯설어 함부로 웃어주지 않지만,
언젠가 두 팔 벌려 달려와 환하게 웃어줄 그날을 믿는다.
그 기다림이 내 회복의 원동력이 된다.
손자가 수줍음을 잃고 나를 향해 환하게 웃을 무렵이면
나 또한 온전히 건강을 되찾아 있겠지.
회복은 단지 몸의 치유만이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오래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이 함께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회복의 시간을 지나며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을 누군가를.
그들에게, 그리고 내 미래의 나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괜찮아, 지금 이 기다림도 치유의 일부야.”
D+135(9.12) 진료 전 아침, 그리고 카페에서 “조금 더 단단해지자.”
오늘은 3개월마다 받는 정기검진 날이다.
수술 전의 두려움 대신
‘이번엔 얼마나 좋아졌을까?’ 하는 설렘이 발걸음을 이끌었다.
의사의 말은 짧고 명확했다.
“운동 열심히 하시고, 세 달 뒤에 또 뵙죠.”
잘 지내고 있다는 격려의 말이었다.
진료를 마친 뒤, 오랜만에 카페에 들렀다.
나에게 주는 작은 보상. 오믈렛과 샐러드, 그리고 빵 한 조각.
‘조금 더 단단해지자. 조금 더 건강해지자. 조금 더 담대해지자.’
나는 다시 마음을 모아 또 한 번의 여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D+140(9.16) 다시 강단에 서다 “불완전한 몸으로 서는 용기.”
오랜만에 4시간짜리 강의를 했다.
강의가 끝나자 온몸의 힘이 빠져 완전히 녹초가 되었지만,
가슴 한켠에는 작고 뜨거운 자부심이 피어올랐다.
‘벌써 140일 만에 여기까지 회복하다니.’
완전한 회복을 기다리기보다,
불완전한 몸으로도 서고, 말하고, 나누며
다시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
그것이 내가 걸어가야 할 새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D+142(9.19) 가을 아침의 선물 “자연의 맛으로 하루를 연다.”
이틀 연속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수요일 아침,
식탁 위에 작은 가을이 놓였다.
노란 속살을 자랑하는 꿀고구마와 탱글탱글한 샤인머스캣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따뜻하게 찐 고구마 한입이 밤새 비워진 속을 부드럽게 채워주고,
싱그러운 포도 한 알이 몸의 모든 세포를 깨우는 듯했다.
따뜻한 오트밀과 진한 플레인 요거트를 곁들이니
완벽한 건강식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국화차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니
복잡했던 생각이 고요히 가라앉았다.
자연이 내게 준 색과 맛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일.
이 단순하지만 풍요로운 시간이 오늘을 살아갈 가장 큰 힘이 된다.
D+150(9.27)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쉬는 것도 회복의 일부.”
거울 앞에 서면, 수술 직후의 초라한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예전의 생기와 표정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나는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이제 체력의 70%만 쓰자.’
하지만 현실의 나는 그 약속을 자꾸 어기며, 예전처럼 달리려 든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인다.
‘쉬는 것도 회복의 일부다.’
이제 나는 그것을 몸으로 배우고 있다.
D+151(9.28) 힘든 하루 끝의 전복죽 “한 그릇의 죽이 가장 따뜻한 위로.
지역 행사에 다녀오고, 아침부터 시작된 벌초까지.
이틀 내내 바깥일로 분주히 움직이다 보니 온몸이 묵직하다.
몸이 지치면 마음도 따라 무거워진다.
오늘 저녁은 거창한 음식이 아닌,
나를 다독이고 위로해 줄 따뜻한 한 그릇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메뉴는 ‘전복죽’.
참기름에 볶은 쌀과 전복의 향이 집안 가득 퍼지자
요리하는 내내 마음이 차분해졌다.
뜨거운 죽을 한 숟가락 크게 떠 입에 넣으니
긴장으로 굳었던 어깨와 무거웠던 다리가 서서히 풀리는 듯했다.
자극 없이 부드럽게 넘어가는 밥알, 깊고 고소한 전복의 맛.
따뜻하고 소화 잘 되는 죽이 빈 속을 채우자
지친 몸이 비로소 안정을 찾는 느낌이었다.
‘이틀 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
스스로에게 건네는 한마디,
오늘 저녁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든든한 위로였다.
한 그릇의 전복죽, 그것으로 충분했다.
D+154(10.1) 가을비 내리는 아침, 샐러드와 무국 “자연의 계절이 몸의 계절.”
밤새계절의 약속은 어김이 없다.
10월의 문이 열리자마자, 차가운 아침 공기가 온몸을 감싸며
깊어가는 가을을 실감하게 한다.
밤새 내린 이슬인지, 새벽 안개인지 모를 촉촉한 물기를 머금은 코스모스들이
마당 한쪽에서 바람에 살짝 고개를 젓는다.
분홍, 보라, 하얀 꽃잎들이 서늘한 공기 속에서도
자기 색을 뽐내며 피어 있는 모습 —참으로 기특하고 아름답다.
여름을 아쉬워할 틈도 없이, 가을은 이렇게 조용히 제 빛을 피워낸다.
이런 날엔 몸을 데워주는 음식이 제격이다.
오늘 아침의 주인공은 맑고 깊은 국물의 소고기무국.
뜨거운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넣자 밤새 웅크렸던 몸이 천천히 녹아내린다.
부드럽게 삶은 닭가슴살과 고소한 아보카도 달걀 샐러드,
든든한 통곡빵이 함께하니 가을을 맞이하는 완벽한 건강식이 되었다.
샐러드를 빵 위에 한가득 올려 한입 베어 물면
입안가득 고소한 생기가 퍼진다. 창밖으로는 가을꽃, 식탁 위에는 따뜻한 음식.
10월의 첫 아침,
자연이 내게 준 가장 풍요로운 선물이었다.
D+161(10.7) 추석의 식탁 “회복은 나눔으로 완성된다.”
새벽 네 시,
아직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시간.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고요한 새벽에 나는 조용히 부엌으로 향했다.
올해 추석,
나는 처음으로 가족을 위해 ‘갈비찜’을 만들기로 했다.
둘이던 가족이 이제 여섯으로 늘어난 첫 명절.
이제는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또 다른 누군가의 할아버지로서 맞이하는 새 아침이었다.
핏물을 뺀 갈비를 냄비에 담고 불을 올리며
여섯 시간이 넘는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아들과 며느리가 명절 선물로 가져온 통통한 전복은
바다의 깊은 맛을 더해주었고,
괴산의 표고버섯 농장에서 보내온 신선한 버섯은 흙의 향을 가득 품었다.
그리고 고향에서 직접 가져온 달콤한 밤을 넣자
하나의 냄비 안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끓어오르는 작은 우주가 되었다.
재료를 다듬고, 양념을 섞고, 넘치지 않게 불을 조절하며
천천히 졸여내는 그 시간은 힘들었지만 동시에 경건한 의식 같았다.
정오가 가까워졌을 무렵,
여섯 시간의 정성이 담긴 갈비찜이 드디어 식탁 한가운데 놓였다.
고소한 들깨탕, 형형색색의 잡채, 그리고 여러 가지 나물들이 차려지며
가족 여섯 명의 추석 밥상이 완성되었다.
분주한 주방의 열기와는 달리, 식탁 위에는 웃음과 따뜻한 대화가 흘렀다.
서로의 접시를 채워주고, 한입씩 건네며 웃는 그 모습 속에서
새벽의 피로는 눈 녹듯 사라졌다.
대신 가슴 한켠이 벅차오르고, 감사와 자부심이 차올랐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암 수술 후 회복에 온 마음을 쏟던 내 몸이
이제는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 만큼 건강을 되찾았다는 사실을.
이제 막 250일이 된 손자가 두 발로 세상을 향해 서보려 애쓰고 있었다.
작디작은 발로 몸 전체를 지탱하며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그 생명의 놀라움.
그 모습은 내가 큰 산을 넘어 다시 단단한 일상으로 돌아온 오늘의 나와
묘하게 겹쳐 보였다.
이날의 추석은 분명 힘든 하루였다. 하지만 그만큼 깊고 충만한 하루였다.
이날의 식탁은 단순한 명절 음식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함께 맞이한 회복과 성장,그리고 새로운 시작의 기록이었다.
D+163(10.10) 빗속 등산, 소금산 출렁다리 “흔들림 속에서 균형을 배우다.”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 운동 강도를 조금 높여보기로 했다.
비 내리는 산길을 올라 소금산 출렁다리 위에 섰을 때,
발밑에서 흔들리는 그 진동이 내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예전 같으면 두렵고 힘들었을 길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뿌듯했다.
‘그래, 천천히 가면 돼. 이만하면 잘 오고 있는 거야.’
D+168(10.15) 채소를 자르는 아침 “자르고, 섞고, 씹는 것이 치유다.”
오늘 아침 식탁은 화려하진 않지만 그 어느 때보다 단정하고 평온했다.
오이의 단면, 양파의 하얀 결, 토마토의 붉은 즙, 아보카도의 부드러움.
칼끝에 전해지는 재료의 감촉이 내 호흡을 천천히 되돌려주었다.
회복은 특별한 치료가 아니라
‘자르고, 섞고, 씹는’
이 일상의 반복 속에 숨어 있는 것 같다.
D+168(10.16) 예기치 않은 충돌 “멈춤은 생의 언어다.”
어제는 정말 10년을 감수한 하루였다.
오랜만에 세차장에 들러 차를 말끔히 씻어내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시동을 걸던 순간이었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차가 앞으로 밀려났다.
몸이 순간적으로 굳어졌고,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내려서 보니,
방금 세차를 마친 옆 차가 갑자기 급발진을 한 것이었다.
에어백이 터진 그 차는 전면이 완전히 찌그러져 있었고,
내 차의 뒤 범퍼 역시 심하게 눌려 있었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러나 다행히, 나와 그 운전자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사고 직후의 그 몇 분은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몸보다 먼저 놀란 건 마음이었다.
‘조금만 달랐더라면 어땠을까.’
그 생각이 떠오르자, 눈앞의 하늘이 잠시 흐려졌다.
요즘 들어 이상하리만큼 이런 일들이 잇따른다.
며칠 전에는 전지를 하다 말벌집을 발견했고,
그보다 며칠 전엔 미끄러질 뻔한 비 오는 아침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 사고. 마치 세상이 내게 작은 경고를 건네는 듯했다.
“조심하고, 한 템포 쉬어가라.”
돌이켜보면, 내 회복의 여정 또한 늘 ‘멈춤’에서 시작되었다.
수술 이후의 시간들은 나에게 다시 걷는 법,
다시 호흡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삶은 언제나 예기치 않은 충돌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살아 있고,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는다.
오늘 아침,
사고 현장의 잔상이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지만
나는 그것을 또 하나의 회복의 계기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몸이 놀란 만큼, 마음은 더 단단해졌다.
이제는 알겠다.
삶은 항상 안전하지 않지만, 그 불안정함 속에서도 살아 있음의 기적이 자란다.
오늘 하루,
다시 이렇게 숨 쉬고 글을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 “삶은 충돌을 통해 균형을 배운다.
멈추는 순간, 비로소 살아 있다는 사실이 더 또렷해진다.”
D+170(10.17) 감자두유퓨레와 여름 채소 한 접시 “먹는 일이 삶의 방식이 되다.”
비 내리는 여름 아침,
몸이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부드러움’이었다.
감자와 두유를 함께 끓여 만든 따뜻한 퓨어 위에 블루베리를 올렸다.
한입 떠먹자, 포슬포슬한 감자의 온기와
두유의 고소함, 블루베리의 산뜻한 향이 입안을 감쌌다.
그 옆에는 정원에서 수확한
브로콜리, 단호박, 오이와 토마토 샐러드가 놓여 있다.
병원식이나 영양보충제가 아닌,
퍼머컬처 정원에서 자란 작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
— 그것은 ‘치유’가 단순한 회복을 넘어 삶의 방식이 달라졌다는 증거였다.
오늘도 ‘먹는 일’이 나를 살린다.
D+173(10.20) 회복의 리듬을 배우다 “조급함 대신 자연의 속도.”
회복의 길은 결코 직선이 아니었다.
꾸준히 나아가는 듯하다가도
어느 날은 몸이 무겁고,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자연의 리듬이었다.
정원의 채소들이 성장을 멈춘 듯 보여도
그들은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었고,
계절은 한 번도 멈춘 적 없이 새로운 풍경을 내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배웠다.
조급해하지 말 것. 나만의 속도를 존중할 것.
회복은 경쟁이 아니라, 나와 자연이 함께 맞추어 가는 호흡이었다.
D+175(10.22) 발의 아침, 겨울의 문턱에서 “차가운 잔디도 회복의 언어.”
아침 공기가 제법 차다.
이슬 맺힌 잔디 위를 맨발로 내딛는 순간,
차가운 감촉이 발끝에서 심장으로 전해졌다.
언제나처럼 하루를 깨우기 위해 밖으로 나섰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해 멈춰 섰다.
잔디 위의 냉기가 계절의 변화를 명확히 알려주었다.
이제 겨울이 가까웠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따뜻한 햇살 아래서
풀을 다듬고, 배추와 무의 잎을 쓰다듬었는데 이제는 바람이 다르다.
숨을 들이마시면 서늘한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든다.
차가운 잔디에 발이 시려 신을 다시 신으며 문득 웃음이 났다.
이 차가움조차 ‘살아 있음’의 감각이구나.
수술 170일 지나며, 나는 누구보다 내 몸의 변화를 예민하게 느낀다.
온도의 차이, 피로의 변화, 작은 신호 하나에도 몸은 즉각 반응한다.
하지만 그것이 불편하지 않다.
그 모든 감각이 이제는 ‘회복의 언어’처럼 느껴진다.
내 몸이 다시 계절을 느끼고,
바람과 온도를 구분한다는 사실 — 그 자체가 이미 치유의 증거였다.
겨울의 문턱에서, 나는 다시 자연의 순환을 배운다.
겉으로는 모든 생명이 멈춘 듯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이미 다음 봄을 준비하고 있다.
나의 몸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움츠림은, 새로운 힘을 기르는 시간이다.
“차가운 잔디 위 한 걸음이 내게 가르쳐준다. 회복은 따뜻한 곳에서만 자라지 않는다. 추위 속에서도, 삶은 여전히 살아 있다.”
D+176(10.23) 요즘은 잠이 불편하다 “숙면은 치유의 한 부분”
요즘은 잠이 깊지 않다. 매일 밤 꿈을 꾼다.
어떤 날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부분은 오래된 이야기들이다.
잊고 지냈던 친척들이 나타나고, 잊힌 얼굴들이 환하게 웃는다.
눈을 뜨면 꿈은 금세 흩어지지만,
그 잔상은 하루 종일 마음에 남아 있다.
왜 그럴까.
몸은 많이 회복되었지만 아직 마음 한구석은 어딘가 긴장 속에 있는 듯하다.
아마도 깊은 곳에서 과거의 기억들이 다시 숨 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회복은 몸만의 일이 아니다.
마음도, 기억도 함께 치유되어야 한다.
오늘 밤에는 그 오래된 사람들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맞이해 주어야겠다.
그들도 결국, 지금의 나를 이루는 회복의 한 부분이니까.
D+177(10.24) 워크샵 후의 회복식
찬 공기가 뺨을 스치며 지나간다.
온종일 워크샵 진행으로 몸도 마음도 꽤나 분주했던 하루.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오니,
고요함 속에서 비로소 배고픔과 피로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오늘처럼 에너지를 많이 쏟아낸 날에는
무엇보다 몸을 잘 돌봐주는 음식이 필요하다.
냉장고를 열어 엊그제 Gemini가 추천해 주었던 레시피를 떠올린다.
두부, 토마토, 표고버섯.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영양소들이 아닌가.
기름을 살짝 두른 팬에 마늘 향을 내고, 깍둑 썬 두부를 노릇하게 부친다.
향긋한 표고버섯과 붉은 토마토를 함께 볶아 간장으로 간을 하니,
금세 맛있는 냄새가 주방 가득 퍼진다.
따끈한 '토마토 두부 표고버섯 볶음'을 큼직한 그릇에 담고,
구수한 통밀빵 한 조각을 곁들인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나의 건강 친구, 블루베리를 듬뿍 넣은 그릭요거트까지.
소박하지만, 오늘의 나를 위한 완벽한 성찬이다.
한입 가득 음식을 넣으니, 따뜻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두부의 담백함, 토마토의 상큼함,
버섯의 향긋함이 어우러져 지친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기분이다.
음식을 통해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을 채우는 것.
그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를 넘어,
고생한 나를 다독이고 위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이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의 힘으로,
오늘 밤은 부디 깊고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기를.
그리고 내일 아침, 다시 맑은 정신으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수 있기를.
D+179(10.26) 회복의 식탁
밤새 내리던 가을비가 멎고, 창가에는 옅은 햇살이 번진다.
오늘 아침 식탁 위에는 다시
버섯 들깨 순두부탕이 부드럽게 김을 올리고 있다.
들깨의 고소함과 버섯의 향이 만나면 숲의 따스한 숨결이 국물 속에 스며든다.
한 숟가락씩 떠먹을 때마다
속이 데워지고, 어제의 피로가 조금씩 녹아내린다.
통밀빵, 무화과잼, 바질페스토, 낫토, 크림치즈.
그 사이에 놓인 붉은 토마토 몇 조각이 식탁의 중심을 환하게 밝혀준다.
창가의 난초 한 송이가 향기를 더해 오늘의 식탁이 완성된다.
이 조용한 식사는 단순한 아침이 아니다.
내 몸이 다시 살아나는 시간, 새로운 하루를 여는 작은 의식이다.
수술 이후 나는 이렇게 매일 식탁 앞에 앉아 몸에게 말을 건넨다.
“오늘은 괜찮니?”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졌니?”
대답 대신, 음식이 향과 온기로 대답한다.
순두부의 부드러움은 마음을 풀어주고,
들깨의 진한 맛은 몸속 깊은 곳을 따뜻하게 적신다.
낫토의 발효 향과 통밀빵의 구수함이 어우러질 때,
내 몸은 비로소 제 속도를 되찾는다.
창가의 난초가 천천히 피어나듯, 나의 회복도 그렇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늘 아침도, 나는 치유농장에서 나이 들기로 했다.
음식으로 몸을 돌보고, 흙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이 길 위에서
삶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자라고 있다.
D+180(10.27) 몸이 보내는 신호
이른 새벽, 오른쪽 가슴에서 찌릿한 통증이 느껴져 눈을 떴다.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머리에는 묵직한 통증이 남았다.
순간 두려움이 스쳤다.
‘혹시 또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수술 후 180일. 이제 회복의 길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여전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컨디션이 조금만 흔들려도 마음은 즉시 불안을 감지했다.
어제는 네 개 시설을 연달아 방문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집에 돌아오니 몸이 무겁고, 머리도 맴돌았다.
아마 그때부터 신호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을 것이다.
몸이 회복 중이니 너무 무리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만 한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서툴다.
‘이 정도쯤은 괜찮겠지’
하며 스스로를 또 밀어붙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회복은 끝이 아니라, 계속 배우는 과정이다.
몸의 속도에 나를 맞추는 법, 통증을 두려움이 아닌 신호로 받아들이는 법.
오늘의 이 통증도 아마 내 몸이 보내는 작은 메시지일 것이다.
“조금 천천히 가자. 나는 아직 회복 중이야.”
그 말을 믿는 것이 진짜 회복의 시작이다.
D+180(10.30) 판을 뒤집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자전적 에세이를 완전히 새로 써야 하는 상황이 닥쳤다.
내용이 복잡하게 얽혀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글쓰기란 농사와 닮아 있었다.
한 계절의 수확이 끝나면,
그 밭을 갈아엎어야 다음 생명을 위한 준비가 시작된.
지금의 혼란 또한 새로운 문장을 위한 ‘뒤집기’일지 모른다.
삶도, 글도, 흙처럼 뒤집을 때 다시 숨을 쉰다.
D+184(10.31) 몸의 균형을 다시 찾다
요즘 날씨가 훨씬 추워졌다.
찬 공기가 옷 사이로 스며들 때마다 몸이 저절로 움츠러든다.
그 때문일까, 소변이 잦아졌다. 물을 조금만 마셔도 신호가 금세 오고,
시원하게 본 것 같으면서도 잔뇨감이 남는다.
자주 화장실을 가다 보니 밤에도 두세 번은 잠에서 깬다.
회복기라 그런 걸까. 몸이 아직 자신의 리듬을 찾지 못한 듯하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생리적 기능이 지금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생각한다.
이런 불편함 또한 몸이 여전히 살아 있고 회복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조금 불편하지만, 이것도 곧 지나가리라.
오늘은 물을 천천히 마시고, 몸을 따뜻하게 데우며 하루를 보내야겠다.
“회복이란 단순히 상처가 아물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몸이 다시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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