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회복의 여정 : 흙과 밥상, 내 몸의 기록_여름
여름 – 흙과 함께 숨 쉬다(6~8월)
햇살이 강해지자 흙의 냄새도 짙어졌다. 체력은 조금씩 돌아왔고, 손에 다시 호미가 쥐어졌다. 풀을 뽑고, 물을 주며, 땀을 흘렸다. 흙먼지와 땀방울이 뒤섞인 냄새가 오히려 좋았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며 스스로를 시험했다. 숨이 차고 다리가 떨렸지만, 정상에 올랐을 때의 시야는 달랐다. 들녘의 논이 황금빛으로 변하고, 바람이 땀을 식혀주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흙 위에서 흘린 땀방울은 고통이 아니라 감사였다.
한 달 만에 강단에 섰을 때, 목이 쉽게 말랐다. 수분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조차 회복의 과정이라 여겼다. 내 몸이 다시 사회와 연결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장거리 운전도 다시 시작했다. 여덟 시간 왕복의 피로 뒤에는, 묘한 뿌듯함이 남았다. 몸이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더 이상 병자의 몸은 아니었다. 흙 위의 노동이 내 몸의 재활이었다. 흙과 내가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D+68(7.7) 빗소리 가득한 치유정원에서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볍게 내리는 비가 정원을 적신다.
나는 정원 탁자에 앉아 책 한 권을 펼친다.
빗방울이 잎사귀를 두드리는 소리,
마른 흙을 적시며 퍼지는 흙냄새가 온몸을 감싼다.
몸의 회복이 병원과 약을 통해 이루어졌다면,
마음의 회복은 이렇게 자연과 하나 되는 순간에 일어나고 있었다.
비와 흙과 나 — 세 존재가 경계 없이 섞이는 이 순간,
나는 비로소 ‘살아 있음’의 온기를 다시 느꼈다.
D+75(7.14) 수술 75일차, 정원에서의 치유 “피지 않아도 살아 있다.”
찜통더위가 온몸을 휘감던 7월의 오후,
하늘이 마침내 비를 허락했다.
텃밭 위에 내리는 빗줄기는 잠시도 쉬지 못하던 내 머릿속 회로를 잠재운다.
백합은 그 사이 더 당당하게 피었고, 능소화에는 벌들이 머물렀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내가 여기 있어야 할 이유가.
한 손엔 책,
한 손엔 따뜻한 물.
그리고 눈앞엔 내가 심은 초록들이 무성한 치유정원.
비 내리는 소리에 페이지가 넘겨지고, 풀잎 사이로 바람이 몸을 스친다.
나는 수술 75일차의 몸이 아니라
삶의 새로운 속도를 배운 한 사람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피지 않아도 살아 있다는 걸
꽃들이, 흙이, 빗방울이 가르쳐준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다시 피어날 나를 기다려 보기로 한다.
D+80(7.19) 장마가 멈추지 않는 아침 “겉보기엔 멈춘 듯하지만 속은 여전히 뜨겁다.”
창밖의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흠뻑 젖은 정원에는 백합과 능소화가 물기를 머금고 조용히 고개를 떨군다.
모든 생명이 한 박자 쉬어가는 장마철,
그 안에서 나도 조용히 마음을 다잡는다.
어제는 장을 봤다. 치유음식의 재료가 되는 것들 —
닭가슴살, 연어, 믹스샐러드, 블루베리, 바나나, 사과, 무가당 요거트까지.
모두 내 몸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동안 맛있다는 핑계로, 회복되었다는 착각으로 조금씩 흔들렸던 식단과 리듬.
이제부터 다시,
몸과 마음을 하나하나 다독이며 회복의 길을 걸어가려 한다.
비 오는 날의 정원은 고요하지만 결코 멈춰있지 않다.
땅속에서, 줄기 속에서 다시 피워낼 내일을 위해 쉼 없이 자라고 있다.
지금의 나는 마치 그들과 같다.
겉보기엔 정지된 듯하지만, 속은 여전히 분주하고 뜨겁다.
회복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텃밭의 감자처럼, 꽃잎이 진 자리에서 다시 피어나는 능소화처럼
하루하루 정성껏 쌓아가는 것.
오늘의 나를 위한 작은 결심.
그게 나를 다시 살게 한다.
D+84(7.23) 회복의 길 “작은 습관이 나를 치유한다.”
창문을 열자 서늘한 아침 공기가 기분 좋게 느껴진다.
어제 정원을 정리하며 흘린 땀방울 덕분인지, 밤새 편안하게 잠들었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감사한 마음으로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오늘 나의 몸을 위한 선택은 따뜻한 오트밀이었다.
우유 대신 부드러운 두유에 오트밀을 천천히 끓였다.
달콤함을 더해줄 잘 익은 바나나를 다져 넣고,
항산화 성분이 풍부한 블루베리와 오독오독 씹히는 고소한 호두를 듬뿍 뿌렸다.
소화도 잘 되고 속도 편안한, 나를 위한 맞춤 아침 식사.
싱그러움을 더하고 싶어 작은 접시에
사과와 아보카도를 먹기 좋게 썰어 담았다.
그 위에 부드럽고 담백한 그릭 요거트를 넉넉히 올리니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마지막으로 따뜻한 디카페인 커피 한 잔을 곁들이니
완벽한 아침 식사가 완성되었다.
천천히 음미하며 식사를 했다.
부드러운 오트밀과 상큼한 과일,
고소한 견과류의 조화가 입안 가득 행복을 선사한다.
이 작은 식사 하나에도 내 몸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예전에는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한 식사를 했다면,
이제는 한 입 한 입 내 건강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회복의 길은 멀고도 험할 수 있지만,
이렇게 하루하루 건강한 습관을 만들어가는 작은 노력이
분명히 나를 치유의 길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도 텃밭에서 흙을 만지고 햇볕을 쬐며
자연의 생명력을 느끼는 하루를 보내야겠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천천히 나아가는 오늘이 되기를.
D+99(8.7) 토마토와 민트 향기 속에서 “회복은 한 줌의 자연 속에서 발견된다.”
아침 공기가 아직 촉촉한 시간, 책상 위엔 오늘 하루의 단서들이 놓여 있다.
잘 익은 방울토마토는 마치 작은 태양처럼 반짝이고,
한 줌의 민트 잎은 손끝에서 부드럽게 풀향을 흘린다.
그 옆에는 펼쳐진 책 한 권.
오늘 배워야 할 것, 곱씹어야 할 문장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수술 이후의 시간은 참 묘하다.
빠르게 달려가던 인생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몸이 보내는 신호를 들으며 하루하루를 천천히 쌓아 올린다.
이 작은 테이블은 병실보다 훨씬 큰 치유의 무대다.
여기서 나는 글을 읽고, 토마토를 맛보고, 민트 향을 들이마시며 몸과 마음을 천천히 회복시킨다.
멀리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부드러운 바람결,
그리고 책장을 넘길 때 살짝 스치는 종이 냄새까지…
이 모든 것이 오늘을 살아낸 나에게 보내는 조용한 격려다.
가끔은 이렇게 생각한다.
회복이란 건 거창한 약이나 치료가 아니라,
내 앞에 놓인 한 줌의 자연과 그 안에서
숨 쉬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고.
오늘도 이 작은 테이블에서,
나는 토마토의 달콤함과 민트의 청량함을 곱씹으며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다.
D+100(8.8) 회복의 전환점을 넘어서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다.”
벌써 백일이 지났다.
지난 100일은 조심스러운 걸음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꾸준함이 준 가장 큰 선물을 확인했다.
그동안 가장 큰 불편이던 요실금 증상이 사라지고
패드를 착용하지 않아도 하루를 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신체의 변화가 아니었다.
잃어버렸던 일상의 자신감을 되찾고,
온전한 나로 다시 돌아온 듯한 해방감이었다.
‘100일.’
누군가에게는 그저 숫자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절망의 문턱에서 돌아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다.
D+104(8.12) 가을 문턱에서 맞이한 아침 “회복은 보이지 않게, 그러나 꾸준히.”
수술 후 100일, 몸이 조금씩 제 리듬을 되찾고 있다.
아침 공기는 한층 선선해졌고, 텃밭의 풍경도 계절의 변화를 조용히 알려온다.
주목나무 위에는 하얀 거미줄이 층층이 걸려 있었다.
밤새 내린 이슬을 머금은 거미줄은 마치 가느다란 비단천처럼 반짝인다.
생명이란, 이렇게 조용히 존재하면서도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이어가는 것임을 거미줄이 알려준다.
내 몸의 회복도 그렇다. 보이지 않게, 하지만 꾸준히 안에서 자라고 있다.
키홀 텃밭 한쪽, 백일홍이 여전히 화사하게 피어 있다.
빨강과 분홍의 선명한 색이 내 마음에도 불씨처럼 번져,
'나도 이 꽃처럼 다시 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준다.
수국은 묵직하게 고개를 떨구었지만,
그 무게 속에는 지난 계절의 햇빛과 비, 바람이 모두 스며 있다.
내가 지난 100일 동안 받아온 치료와 돌봄,
그리고 텃밭의 치유 시간들도 이렇게 내 안에 쌓였을 것이다.
파릇하게 여문 피망은 가지 끝에서 제 존재를 증명하고,
메리골드는 해맑은 주황빛으로 '오늘을 즐기라'고 속삭인다.
나는 오늘도 이 텃밭에서 비타민과 위로를 함께 수확한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는다.
하지만 반드시 자기 때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나의 회복도, 자연의 시간표를 따라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걸어갈 것이다.
D+107(8.15) 가파른 길 위에서 “두려움 대신 도전.”
저수지 둘레길을 맨발로 걷던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이제는 마을 뒷산의 가파른 오르막으로 향한다.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후들거릴 때마다
수술 직후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힘들던 그날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두려움 대신 도전의 마음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회복이 내게 남긴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D+109(8.17) 일요일 아침, 치유텃밭 정원에서의 성찬 “절제의 삶이 나를 살린다.”
주말 아침, 치유 텃밭 정원에 차려진 식탁 앞에 앉으니
풀잎 사이로 맺힌 이슬과 상쾌한 공기가 먼저 나를 반긴다.
커피잔에서 피어오르는 은은한 향은
오랜만에 느끼는 사치 같은 선물이다.
평일엔 절제하지만,
주말 아침만큼은 스스로에게 허락한 작은 호사다.
한 모금의 커피는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데워준다.
오늘 차려진 아침은 그야말로 자연이 주는 성찬이다.
스무디 : 케일, 블루베리, 사과, 당근, 바나나, 두유를 넣어 갈아낸 초록빛
한 잔.
텃밭의 싱그러움과 과일의 달콤함이 조화를 이루며 온몸에 활력을 불어는다.
찐 단호박 : 부드럽고 달큰한 단호박은 속을 편안하게 해주고,
아침의 든든한 에너지원이 된다.
통밀빵 : 거칠고 담백한 빵 위에 잼을 발라 한입 베어 물면,
곡물의 고소함과 달콤함이 어우러져 더할 나위 없다.
텃밭 정원에서 마시는 공기, 손끝에 닿는 자연, 그리고 가볍지만 영양 가득한 식사. 요즘 들어 몸이 한결 가벼워졌음을 느낀다.
한때 SNS에 "내 체력의 70%만 사용하자"는 글을 남긴 적이 있다.
하지만 현실 언제나 120%를 쏟아부으며 살아왔다. 이제야 비로소 그 약속을 떠올린다.
‘인내하며, 절제하며, 내 몸을 아끼는 삶.’
오늘의 아침은 그 다짐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작은 약속, 큰 변화 주말에만 즐기는 커피처럼,
작은 절제가 쌓이면 그것이 나를 치유하는 힘이 된다.
자연이 곁에 있고, 정성이 담긴 식사가 매일 아침을 채워주니
회복의 길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늘 아침은 단순히 한 끼의 식사가 아닌
나 자신에게 보내는 감사와 약속의 의식이었다.
“몸을 아끼고, 마음을 가볍게. 오늘도 치유 텃밭 정원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D+115(8.23) 몸의 정체기, 텃밭이 건넨 말 ‘잠시 멈춤’
요즘 몸이 예전처럼 가볍지 않다.
회복이 늘 오르막일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조급함이 스며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정원으로 들어섰을 때,
상추잎이 축 늘어진 모습이 내 몸과 닮아 있었다.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채소가 시든 건, 주인인 내가 이래서겠지.’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채소들은 그저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멈춘 것은 식물이 아니라 나였다. 그때 정원이 내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괜찮아, 잠시 멈춰도 돼. 조금만 더 돌봐주면, 다시 피어날 수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원은 늘 그렇듯, 말없이 나를 치유하고 있었다.
- 다음은 가을 겨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