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흙으로 돌아와, 다시 길을 묻다
2025년 1월, 의사의 진료실은 유난히 차가웠다. 창밖의 겨울 햇살이 무색하게, 소독약 냄새와 희미한 기계음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내 이름과 나이를 확인하고는, 모니터 속의 흑백 이미지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초기 전립선암’이라는 진단은, 지난 65년간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달려온 내 삶의 모든 것을 순간 정지시켰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멀어지는 듯한 그 깊은 침묵 속에서, 나는 의사의 다음 말을 듣지 못했다. 대신 수십 년 전의 목소리 하나가, 잊고 있던 낡은 필름처럼, 벼락처럼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얘야, 이제 집으로 가자.”
차가운 기계음에 둘러싸인 중환자실,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산소호흡기 너머로 내 손을 잡으며 힘겹게 속삭이셨던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이었다. 그때는 아버님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드려야 하는 아들의 애끓는 마음뿐이었지만, 암이라는 나 자신의 죽음의 그림자와 정면으로 마주한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아버지의 그 한마디에 담긴 진짜 의미를 온몸으로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히 병원을 떠나고 싶다는 말이 아니었다. 차갑고 낯선 공간이 아닌, 자신의 삶의 온기와 기억이 밴 흙냄새 속에서, 사랑하는 이들 곁에서 존엄하게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는 한 인간의 간절한 외침이었다.
나는 진료실 의자에 앉아, 문득 수십 년의 시간을 거슬러 아버지와 같은 자리에 서 있는 나를 보았다. 나의 마지막은 어떤 풍경이어야 하는가. 나 역시 아버지처럼, 언젠가 그 길의 끝에 섰을 때 ‘집으로 가자’고 말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돌아가야 할 ‘집’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 질문은 더 이상 철학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그 절박함 속에서, 차가운 진료실의 풍경 위로 또 다른 기억 하나가 겹쳐졌다. 바로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기다리던 지난 몇 달간, 내가 매일 아침 맨발로 흙을 밟던 용인의 작은 텃밭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약이나 병원이 아닌, 땅의 기운과 햇살의 온기, 내 손으로 직접 키운 작은 새싹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나를 경험하고 있었다. 바로 그곳이 내가 돌아가야 할 ‘집’의 모습이었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아버지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하셨던, 그리고 내가 나의 회복을 통해 이미 경험했던 바로 그 ‘집’을, 이제는 내 손으로 직접 지어야겠다고. 병든 몸과 마음을 가진 이들이 차가운 병실이 아니라, 흙냄새와 사람의 온기 속에서 서로를 보듬으며 존엄하게 나이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집을.
그래서 나는 치유농장에서 나이 들기로 했다.
이 책은 그 결심에 이르기까지 내가 걸어온 모든 길에 대한 기록이다. 이것은 단순히 시골로 돌아온 한 은퇴자의 귀농 일기가 아니다. 이것은 홍수 속에서 이웃을 구하던 아버지의 등에서 ‘책임’을 배우고, 말없이 희생하던 누이들의 어깨에서 ‘사랑의 빚’을 깨달았으며, 병상에서 나를 일으켜 세운 흙의 힘을 통해 ‘치유’의 본질과 마주하게 된 한 남자의 고백이다. 또한 이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후위기와 초고령사회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다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병든 땅과 외로운 사람들을 동시에 살리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그 대답의 실마리를 ‘퍼머컬처 커뮤니티 케어팜(PCC)’이라는 이름의 작은 실험 속에서 찾고 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모든 전환점들은 결국 나를 이 흙으로 다시 데려오기 위한 긴 여정이었다. 이 책은 그 여정의 기록이자, 나처럼 인생의 중턱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의 편지이다. 부디 이 이야기가 당신의 삶에도 작은 씨앗이 되어, 당신만의 ‘마지막 정원’을 가꾸어 나갈 용기를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것은 내가 걸어온 모든 길의 끝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을 가슴에 품고, 마침내 하나의 분명한 결심에 이르게 된 이야기이다.
“나는 치유농장에서 나이 들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