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흙 위의 공동체, 나이 듦의 새 모델 ②
3. 점들을 이어 면으로- 치유농장의 네트워크를 잇다
용인의 작은 정원에서 시작된 실험이 이제 가평의 숲과 마을, 그리고 사람들 속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처음엔 오직 나 자신의 회복을 위해 흙을 만졌지만, 어느새 그 흙 위에서 누군가의 삶이 바뀌고, 마을이 다시 숨 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한 가지 질문이 있었다.
“내가 회복하며 얻은 이 힘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한 알의 씨앗이 숲이 되기까지
용인의 정원은 내 생명을 구한 작은 학교였다. 그러나 그곳에서 배운 회복의 언어를 나 혼자 간직할 수는 없었다.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기억이 머물고, 어린 시절의 강과 산이 숨 쉬는 고향 가평으로 돌아왔다.
그 땅 위에서 나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고자 했다. 이름하여 ‘퍼머컬처 커뮤니티 케어팜(Permaculture Community Care Farm)’. 사람과 자연이 함께 회복하는 작은 농장이었다. 한낮의 햇살 아래 “이 땅에 새 씨앗을 심는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숲은 단 하나의 씨앗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내 꿈의 지평을 조금 더 넓히기로 했다. 내가 심은 씨앗이 다른 사람들의 정원과 삶 속에서도 자라나기를 바라며.
그렇게 탄생한 것이 ‘가평 GCC(Gapyeong Green Care Community)’다. 그것은내 꿈이 확장된 숲이자, 누구나 자신의 씨앗을 심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돌봄의 공동체’이다.
가평의 땅에는 오래된 상처와 가능성이 함께 숨 쉬고 있었다. 몸과 마음의 치유를 찾는 사람들, 마을의 어르신들, 은퇴한 도시인들, 젊은 이주민들까지 —그들의 이야기가 내 귀에 닿았다.
“선생님처럼 흙을 만지고 싶어요.”
“우리도 함께 작은 정원을 가꿔 볼까요?”
그때부터 내 농장은 ‘나의 농장’이 아니라 ‘우리의 농장’이 되었다. 누군가는 퇴비를 만들고, 누군가는 돌길을 정리하며, 아이들과 함께 씨앗을 심었다. 서툰 손끝에서 놀라운 질서와 아름다움이 피어났다. 이렇게 가평 곳곳에 작은 치유농장(PCC)이 하나둘 태어났고, 서로를 돕고 배우며 성장하는 공동체(GCC)로 연결되었다.
나의 정원이 마을의 지도와 교과서가 되다
돌이켜보면, 용인의 작은 정원에서 설계했던 퍼머컬처의 다섯 구역(Zone 0~5)은 이제 마을 전체의 구조로 확장되었다.
Zone 0, 나의 집이 중심이던 곳은 이제 허브 농장과 사람들이 모이는 사랑방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차를 나누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마을의 이야기를 엮었다.
Zone 1, 허브밭정원과 상자텃밭은 주민들의 손끝에서 다시 살아났다. 어르신이 가꾼 정원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그 웃음소리가 마을을 채웠다.
Zone 2와 3, 마을의 논밭은 이제 ‘공동농장’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함께 농사짓고, 수확을 나누며, 밥상을 함께했다. 밭이 식탁이 되고, 식탁이 관계가 되었다.
Zone 4와 5, 마을 뒤편의 소나무숲길은 ‘명상의 길’이 되었다. 새벽마다 사람들은 맨발로 숲의 숨결을 따라 걸었다.
이렇게 내 PCC는 이제 ‘마을의 지도’가 되었고, ‘삶의 순환을 설계하는 교과서’가 되었다.
이 농장과 마을을 하나로 잇는 이름이 생겼다. ‘가평 GCC 협동조합’.
처음엔 행정적 형식처럼 들렸지만 곧 깨달았다. 이것은 제도의 이름이 아니라, 서로 돌보는 관계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누군가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누군가는 빵을 굽고, 누군가는 하루를 기록했다. 모두가 자기 몫을 했고, 모두가 함께 주인이 되었다. 그 안에서 나는 또 하나의 진리를 배웠다. 공동체는 제도나 사업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이제 가평 GCC는 단순한 농장들의 모임이 아니다. 사람과 땅, 도시와 농촌, 세대와 세대를 잇는 살아 있는 생명의 네트워크다. 작은 정원에서 피어난 씨앗이 이제 마을의 숲과 사람들의 관계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
나는 그 숲길을 걸으며 종종 중얼거린다.
“씨앗은 혼자 자라지 않는다. 씨앗이 만나야 숲이 되고, 숲이 사람을 다시 살린다.”
그 숲이 내가 꿈꾸는 가평의 미래이며, 함께 늙어가는 치유 공동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길 위에서 다짐한다.
“나는 병상 위가 아니라 흙 위에서, 혼자가 아니라 함께 늙어가기로 했다.”
4. 병상이 아니라 흙 위에서
나는 인생의 마지막을 차가운 병실의 하얀 침대 위에서 보내고 싶지 않다. 암과 싸우던 그날, 회복실에서 눈을 떴을 때 느꼈던 극도의 고립감, 기계음과 뒤섞인 차가운 공기, 그리고 그때의 두려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나는 결심했다.
“생존이 아니라 존엄으로 내 삶을 마무리하자.”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이웃의 손, 햇살, 바람, 흙의 향기 속에서 숨을 고르고 싶다. 기계의 냉기 대신 사람의 온기 속에서, 병상 대신 흙 위에서 내 삶을 마치고 싶다. 그 소망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구체적인 삶의 형식이 바로 ‘치유농장(Healing Farm)’이다.
이곳은 단순한 농장이 아니다. 존엄하게 나이 들 수 있는 삶의 기반이자, 내게 주어진 가장 ‘활동적인 실험실’이다.
함께 늙는다는 것의 의미
이곳에서는 노년의 수많은 위기를 혼자 마주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웃고, 함께 견뎌낸다. 삐걱거리는 의료기기 소리 대신, 소나무숲을 스치는 바람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내 인생의 마지막 배경음악이 될 것이다. 소독약 냄새 대신, 비 온 뒤 흙에서 피어오르는 짙은 향기와 공동부엌에서 구워지는 빵 냄새가 내 공간을 채울 것이다.
나의 마지막 식사는 병상에서 혼자 먹는 냉정한 식사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가꾼 정원의 채소로 만든 따뜻한 공동식탁이 될 것이다. 그때 나는 더 이상 무력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서툰 도시인의 손에 괭이를 쥐어 주며 말하는 노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잡는 거야.”
그리고 미소 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누군가에게 여전히 ‘필요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
나의 바람이 우리의 모델이 되다
처음에 ‘병상이 아니라 흙 위에서 삶을 마주하고 싶다’는 바람은 나 하나의 소망이었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이것은 나만의 꿈이 아니라, 우리 시대 모두가 함께 꾸어야 할 희망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의 농장은 개인의 안식처이자, 존엄하게 함께 늙어갈 수 있는 공동체의 모델이 되어야 했다.
어린 시절, 폭우 속에서도 주저 없이 거친 물속으로 뛰어들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책임’이라는 단어를 배웠듯, 이제 나는 나의 회복 경험을 이웃과 나누는 실천으로 그 책임을 이어가려 한다. 가장 개인적인 바람이 사회가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나를 마지막 여정으로 이끌었다.
“나는 병상 위가 아니라 흙 위에 서 있다.
그리고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존엄하게 함께 늙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