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치유농장에서 나이들기로 했다.

제9장: 가평의 미래, 치유농업을 넘어 치유산업으로 ①

by 조영빈

제9장: 가평의 미래, 치유농업을 넘어 치유산업으로

- 사람, 마을, 자연을 다시 연결하는 ELIS 모델 -


가평의 바람은 늘 묻는다.


“이제 어디로 가려는가?”


암 수술 이후 다시 흙 위에 섰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내 몸의 회복은 이 땅의 회복과 닮아 있었다. 모든 생명은 상처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생명은 다시 회복한다.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근본 원리다.


흙 위에서 보낸 나의 회복 시간은 더 이상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함께 흙을 일구던 마을 어르신들의 주름진 손, 눈물 속에서도 허브차를 나누며 웃던 이웃의 얼굴이 속삭였다.


“당신이 회복하면, 우리도 함께 살아난다.”


그때 나는 알았다. 한 사람의 회복이 공동체의 회복으로 이어지고, 공동체의 회복은 결국 이 땅의 회복으로 확장된다는 것을. 이제 나의 여정은 ‘치유농장에서의 삶’을 넘어, ‘치유의 철학으로 지역을 되살리는 길’로 나아가고 있다.


내가 지금부터 써 내려갈 이야기는 한 개인의 회복이 어떻게 지역의 미래로 자라나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그 이야기는 우리가 마주한 두 개의 벽에서 시작된다.


1. 개의 거대한 벽 앞에 서다


어린 시절, 나는 가평의 강과 들을 따라 걸으며 자랐다. 산과 강은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익숙한 풍경 뒤로 낯선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텅 빈 마을길, 굳게 닫힌 대문, 그리고 홀로 천천히 걷는 노인의 발걸음.


땅은 여전히 푸르렀지만, 그 위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가고 있었다. 화려한 관광지의 불빛은 밤새 반짝이는데, 그 불빛 뒤편의 마을은 조금씩 생기를 잃고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것은 단지 가평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의 수많은 농촌이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벽, 그 벽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첫 번째 벽 -초고령사회, 관계의 단절

평생 흙을 지켜온 농부의 굽은 손마디에는 삶의 궤적이 새겨져 있었지만, 그의 눈빛에는 깊은 외로움이 스며 있었다. "이제 다 도시로 떠나버렸지요. 이 마을엔 늙은이들만 남았어요."


담담히 내뱉은 말 속에는 공동체의 비명이 숨어 있었다. 이웃을 부를 이름이 사라지고, 함께 밥을 나눌 식탁이 치워지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설렘도 사라진 현실. 마을회관 앞에 모이는 얼굴들은 점점 비슷해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 대신 빈집만이 풍경의 일부처럼 자리 잡았다. 그 조용한 절망, 사람 사이의 온기가 식어가는 것이 바로 첫 번째 벽이었다.


두 번째 벽 - 기후위기, 병든 땅의 침묵

"사과꽃이 벌써 피었어요. 이러다 올해 수확은 글렀습니다."


농부의 목소리에는 지친 체념이 묻어 있었다. 예측할 수 없는 장마와 폭염, 예년보다 길어진 가뭄, 하루 만에 마을을 휩쓰는 집중호우. 땅은 더 이상 우리를 예전처럼 품어 주지 않았다.

화학비료와 농약에 길들여진 토양은 스스로 회복할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땅이 병들자 그 위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삶도 함께 흔들렸다. 생명의 근원인 흙이 숨을 멈추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두 번째 벽이었다.


세 번째 벽: 관광의 한계, 풍요 속의 빈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벽을 보았다. 그것은 가장 화려하게 포장되어 있어 쉽게 보이지 않는 벽이었다. 바로 '관광이라는 이름의 착시'였다.


사람들은 가평을 '자연이 좋은 관광지'라 부른다. 주말이면 도로는 차들로 꽉 막히고, 캠핑장과 펜션은 사람들로 붐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질문이 남는다.


"자원은 많은데, 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점점 가벼워지는 것일까?"


관광은 사람이 머무는 산업이 아니라, 사람이 다녀가는 산업이었다. 방문객의 숫자는 늘었지만, 정작 이곳에서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이웃은 줄어들었다. 주말의 소란스러움이 빠져나간 평일의 마을은 더욱 깊은 적막에 잠긴다. 소비하고 떠나는 관계는 마을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그것은 지역의 활력이 아니라, 잠시 스쳐 가는 바람일 뿐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넘어야 할 세 번째 벽이다.


세 개를 다시 잇는 길

이처럼 우리는 세 개의 벽 앞에 서 있다. 사람이 떠나 관계가 끊긴 사회적 위기, 땅이 병들어버린 생태적 위기, 그리고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비어가는 구조적 위기.

겉으로는 다른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는 하나다.


"우리는 서로의 연결을 잃어버렸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끊기자 공동체가 병들었고, 사람과 땅의 관계가 끊기자 기후가 무너졌으며, 방문객과 주민의 관계가 끊기자 지역은 소비되는 상품으로 전락했다. 공동체, 생태계, 그리고 지역 경제가 따로 놀지 않고 다시 하나의 생명처럼 연결되는 길.


나는 그 답을 흙에서 찾았다.


이제 확실히 안다. 치유농장은 단순히 작물을 키우는 곳이 아니다.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잇는 다리이자, 잃어버린 생명의 순환을 되살리는 우리 시대의 가장 인간다운 실천이다.

가평은 지금 그 다리 위에 서 있다.

치유농업을 넘어, 인간의 온기와 관계가 중심이 되는 ‘치유산업의 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그 길의 출발점은 멀리 있지 않다. 그 미래는 이미 내가 매일 밟는 이 흙 속에서, 그리고 다시 살아난 내 몸속에서 자라고 있다.


“나는 치유농장에서 나이 들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길은 이제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미래가 되었다.”



2. 벽 위의 다리: 생명경제와 치유농업


앞서 우리는 두 개의 거대한 벽을 이야기했다.

하나는 병든 땅이 만들어낸 기후위기, 다른 하나는 관계를 잃은 사람들이 맞닥뜨린 초고령사회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다른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는 같다. 사람이 땅을 떠났고, 땅은 사람을 잃었다.


나는 오래도록 생각했다.

병든 땅이 만든 기후위기와 서로를 놓아버린 인간사회를 어떻게 다시 세울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내가 매일 밟는 이 흙 속에 있었다.


숫자만 남은 세상

한때 우리는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을 계산하려 했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그 속도와 효율의 논리 앞에서 흙은 무참히 짓밟혔다. 논과 밭은 생명을 품는 어머니가 아니라, 이윤을 추출하는 공장, 숫자를 생산하는 시스템이 되었다. 흙은 숨을 멈추고, 물길은 막혔으며, 하늘은 제때 비를 내리지 않았다.


결과는 명확했다.

타오르는 여름, 제철을 잃은 봄꽃, 생기를 잃은 들판. 우리가 만든 것은 사람을 살리는 경제가 아니라 사람을 소모하는 경제였다.


그 차가운 질서는 사람들의 삶에도 스며들었다. 사람은 ‘인적 자원’이라 불렸고, 삶은 경쟁의 성적표로 평가되었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게 되었고, 관계가 끊기며, 마을의 불빛이 하나둘 꺼졌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안녕’을 잊은 채 살아남기 위해 사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흙이 보여준 또 하나의 길

그러나 흙은 언제나 조용히 다른 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질 때, 그것은 결코 혼자 자라지 않는다. 햇빛과 바람, 물과 미생물, 벌과 곤충이 서로 돕고 얽히며 하나의 생명망을 만든다. 그 안에는 경쟁도, 서열도 없다. 오직 순환과 관계의 질서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치유농업이 지향하는 세계, 즉 생명경제(Life Economy)의 원리다. 이 세계에서는 생산보다 회복이, 이윤보다 관계가, 성장보다 순환이 더 큰 가치를 가진다. 퍼머컬처에는 단 하나의 규칙이 있다.


“땅에서 얻은 것은 다시 땅으로 돌려라.”


이 문장은 단순한 농법이 아니라, 삶의 선언이었다.

나는 그 진리를 몸으로 배웠다. 전립선암 수술 이후, 나는 하얀 병실의 침대 위에서 완벽히 관리되는 환자였다. 모든 것은 수치와 데이터로 조정되고 있었다. 그러나 진짜 회복은 숫자 속에 있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맨발로 젖은 흙을 밟았다. 비 온 뒤의 흙 냄새는 생명의 숨결처럼 내 안을 깨웠다. 손끝으로 씨앗을 눌러 심고 며칠 후, 작은 싹이 돋았을 때 내 몸속에서도 무언가가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약이 나를 살렸지만, 흙이 나를 되살렸다. 햇살의 따스함, 바람의 결, 내가 직접 기른 채소의 맛이 감각과 의지를 다시 깨웠다.


그때 나는 알았다.

“농사는 돌봄이고, 돌봄은 치유이며, 치유는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그 모든 과정은 몸의 재활을 넘어 삶 전체의 회복이었다.


땅과 사람을 잇는 다리

결국 답은 여기 있었다.

이제 나는 믿는다. 치유농업은 세 개의 벽을 잇는 다리다. 비료와 기계 대신 사람의 손과 퇴비로 땅을 돌보는 일은 병든 생태계를 회복시키는 가장 따뜻한 실천이다. 그 흙 위에서 고립된 노인은 아이에게 씨앗 심는 법을 가르치고, 도시에서 상처받은 사람은 흙을 만지며 다시 미소를 되찾는다. 그 장면들은 단순한 농사의 풍경이 아니라, 관계가 회복되는 인간의 풍경이다.

이 다리 위에서 땅은 사람을 살리고, 사람은 다시 땅을 살린다.


그때 비로소 깨닫는다.

“살아 있는 경제란 결국 서로를 살리는 관계의 예술이다.”

오늘도 나는 가평의 흙 위에 서서 그 다리를 생각한다. 치유농업은 숫자나 제도가 아니라, 사람의 온기와 흙의 순환으로 기후위기와 초고령사회를 잇는 길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다리를 건너는 순간, 우리는 다시 ‘살아 있는 세계’를 만난다.


“회복의 해답은 언제나 내 발 아래 흙 속에 있다. 그리고 그 흙은 인간의 마음을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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