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치유농장에서 나이들기로 했다.

제9장: 가평의 미래, 치유농업을 넘어 치유산업으로 ③

by 조영빈

4. 가평의 새로운 얼굴: 은퇴의 도시에서 '치유산업의 메카'로

어느 순간부터 ‘가평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면 대화의 첫마디는 늘 깊은 한숨으로 시작되었다.

“참 아름다운 곳인데, 왜 이렇게 조용할까.”

푸른 산과 맑은 강, 사계절이 뚜렷한 이 고장에서도 어느새 생명의 기운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고, 골목마다 남은 것은 노인들의 느린 발자국뿐이었다.


‘인구소멸위험지역.’


그 차가운 단어는 숫자보다 더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예측할 수 없는 기후는 농부의 손끝에서 흘린 땀의 가치를 빼앗아 갔다. 가평의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지만, 그 아래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조금씩 닫혀 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절망의 땅 위에서 새로운 풍경의 씨앗이 자라고 있음을 보았다. 그 이름은 '가평형 치유산업'이다. 이 새로운 물결은 기계나 자본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와 흙의 향기로 돌아간다. 이곳에서 복지는 단순한 보호가 아니라 능동적인 '치유(Healing)'가 되고, 고립된 개인은 '관계(Social)' 속에서 다시 연결된다.

이 변화의 심장부에 '가평 그린케어 커뮤니티(GCC)'가 있다. GCC는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가평 곳곳에 흩어진 농장(PCC)과 사람들을 잇는 따뜻한 모세혈관이다. 이곳에서는 도시의 전문가는 농부와 함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은퇴한 셰프는 아이들과 치유 음식을 나눈다. 겉으로는 산업의 형태를 띠지만, 그 본질은 삶을 주고받는 새로운 '문화'다.


내가 그리는 미래의 가평은 더 이상 조용하지 않다. 마을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청년 기획자들, 치유 정원에서 방문객에게 흙의 지혜를 가르치는 어르신들, 그리고 공동 부엌에서 갓 수확한 채소로 점심을 준비하는 웃음소리가 강물을 따라 흐른다. 아이들은 맨발로 흙을 밟으며 배운다.


"이 흙이 나를 살린다.“


그 풍경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이제 가평은 쇠락해가는 '은퇴의 도시'도, 스쳐 지나가는 '관광의 도시'도 아니다. 사람과 자연, 청년과 중장년이 서로를 살려내는 ‘생명 치유의 도시'다. 치유농업, 산림치유, 예술치유가 퍼머컬처의 원리처럼 유기적으로 얽혀 돌아가는 곳.


그날, 가평은 수도권의 변두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가장 먼저 피어나는 중심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길 위에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한 사람의 회복에서 시작되었다. 흙 위에 서서 다시 살아보겠다는 그 의지에서.“


나의 역할 ― 흙과 사람, 세대를 잇는 다리

이제 나는 안다.

내 삶의 마지막 순간, 내가 서 있을 곳은 이 흙 위일 것이다. 차가운 병상 위가 아니라, 햇살이 비추는 정원 한가운데,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웃는 사람들 사이에서일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말할 것이다.

“아버지, 저도 이제 집으로 갑니다.”


그 집은 내가 일군 치유농장이자, 우리 모두가 함께 가꾼 가평이라는 숲이다. 그 숲에서 우리는 함께 늙고, 서로를 돌보고, 다시 늙으며 젊어지는 순환의 삶을 산다.

그것이 내가 꿈꾸는 가평의 새로운 얼굴이다.

“가평의 미래는 먼 내일이 아니라, 오늘 이 흙 위에서 자라고 있다.”

이제 나는 치유의 실천가이자 농부로서 이 길 위에 서 있다. 내 손은 여전히 흙을 만지고, 내 마음은 여전히 사람을 향한다.


나는 ‘퍼머컬처 커뮤니티 케어팜(PCC)’을 통해 개인의 회복을 실험했고, 그 회복을 ‘가평그린케어커뮤니티(GCC)’를 통해 공동체의 언어로 확장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두 세계 ― 흙과 사람, 도시와 농촌, 청년과 노년 ― 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 그 다리를 건너는 이들은 다시 이 땅 위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고, 서로의 이름을 배우며, 함께 늙어가는 법을 배울 것이다.


결국 내가 하는 일은 ‘회복의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그것은 단순히 농장을 가꾸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다시 세우고,

사람과 자연의 질서를 회복하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평생 준비해 온 길이며, 가평이 걸어갈 치유의 길이다.


이제 나는 조용히 삽을 내려놓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소나무 잎 사이로 바람이 속삭인다.

“너는 이미 네 일을 다했다.”

나는 미소 짓는다.

“그래도 내일 아침엔 다시 흙을 만져야지.”

그것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리고 이 땅이 숨 쉬는 한 맡고 싶은 마지막 일이다.

나는 흙과 사람을 잇는 다리로 남고 싶다.

그 다리 위에서 다음 세대가 다시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후대에게 남기는 길 – 비석 대신 풍경을

너희가 이 글을 읽는 시점에는, 아마 내가 걸어온 이 치열했던 시간이 오래된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내가 가평의 흙 위에서 보고 느꼈던 이 풍경들은, 너희가 살아갈 미래에 더욱 절실한 해답이 될 것임을.

나는 너희에게 높은 빌딩이나 통장 잔고 대신, '사람을 살리는 풍경'을 유산으로 남기고 싶다.


내가 목격한 세 가지 풍경

내가 물려주고 싶은 것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다. 이곳 치유농장에서 매일 마주했던, 삶이 다시 시작되는 구체적인 순간들이다.


첫째, 설렘의 풍경이다. 평생 교단에 서다 은퇴한 선생님이 벚꽃길을 걸으며 "내 인생의 두 번째 봄이 왔다"며 눈시울을 붉히던 그 표정을 기억한다. 사회적 역할이 끝났다고 믿었던 노년이, 흙과 꽃을 만나 다시 청춘의 설렘을 회복하는 모습. 그것은 늙음이 쇠락이 아니라 성숙임을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둘째, 희망의 풍경이다. 고사리손으로 텃밭에 작은 씨앗을 심으며 "할아버지, 이 씨앗도 나처럼 자라서 꽃이 피겠죠?"라고 묻던 아이의 맑은 목소리를 기억한다. 스마트폰 화면 속 가상 세계가 아니라, 살아있는 흙의 감촉을 배우며 자라는 아이들. 그들이야말로 흙이 키워낼 가장 아름다운 열매다.


셋째, 치유의 풍경이다. 소나무 숲 황톳길을 맨발로 걷으며 "이제야 숨이 쉬어진다"고 말하던 암 환우의 편안한 미소를 기억한다. 병원의 차가운 기계가 주지 못한 위로를 투박한 흙길이 건네주었다. 자연이 인간을 어떻게 품어주는지를 보여주는 숭고한 순간이었다.


길을 잃은 너희에게 흙이 답할 것이다

사랑하는 다음 세대여. 너희가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 더 빠르고, 더 화려하며, 더 복잡할 것이다. AI가 모든 답을 내놓고, 클릭 한 번으로 욕망이 해결되는 세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렇기에, '몸으로 겪고 땀으로 얻는' 이 농장의 가치는 더욱 빛날 것이다.


언젠가 너희도 인생의 길을 잃을 때가 올 것이다. 속도에 지치고, 관계에 상처받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그때 주저 없이 이 흙 위로 돌아오라. 흙은 너희를 평가하지 않는다. 재촉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받아주고, 다시 일어설 힘을 줄 것이다.


농업은 단순히 먹거리를 생산하는 산업이 아니다. 무너진 마음을 살리고, 끊어진 관계를 잇고, 흩어진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생명 산업'이다. 씨앗 하나를 심는 일은 느리고 더딘 것 같아도, 그 씨앗은 반드시 꽃을 피우고 숲을 이룬다. 내가 먼저 걸어간 이 '치유의 길'이 너희에게 든든한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비석 대신 흙에 이름을 새기며

언젠가 내 이름 석 자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질 것이다. 그래도 좋다. 나는 차가운 비석에 이름을 남기는 대신, 따뜻한 흙 속에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도시의 소음 속에서 길을 잃었던 영혼들이 이곳에서 다시 숨을 쉬고, 서먹했던 가족이 감자를 캐며 다시 손을 맞잡았던 그 따뜻한 기억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씻겨가지 않을 그 이야기들이 이 흙 속에 거름처럼 남아, 누군가의 차가운 겨울을 데워줄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치유농장에서 나이 들기로 했다."

이 문장은 나 혼자만의 다짐이 아니라, 너희에게 남기는 나의 마지막 초대장이자 약속이다. 부디 이 길 위에서, 너희도 서로를 돌보며 존엄하게 나이 들어가는 기쁨을 누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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