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길 위에서 길을 찾다

제3장: 나의 길을 찾아서, 컨설턴트가 되다

by 조영빈

제3장: 나의 길을 찾아서, 컨설턴트가 되다


주경야독으로 도시의 생존법을 익히고 조직의 부품으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분투하던 내 삶에, 어느 날 예기치 않은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그 바람을 타고 더 높은 성공을 향해 나아간다고 믿었다. 미국 연수는 더 넓은 세상을 향한 창이었고, IMF 위기는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는 시험대였으며, 내 이름으로 된 회사를 세우는 것은 오랜 꿈의 실현이었다. 나는 그때, 내가 커리어의 정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여정은 정상을 향한 길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내가 떠나왔던 바로 그 흙으로, 나의 근원으로 돌아오기 위한 가장 길고도 필연적인 우회로였다.


이 장은 한 도시 컨설턴트가 성공과 실패의 파도를 넘나들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치유 농부’가 되기 위한 도구와 철학, 그리고 경험을 하나씩 모아가는 여정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비즈니스의 세계를 헤매며 길을 찾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흙으로 돌아갈 나만의 지도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1. 운명을 바꾼 미국 연수

보험연수원에서 시행한 영어연수과정에서 1등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국제로타리에서 후원하는GSE(Group Study Exchange)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이름이 내 가슴에 처음 와닿았을 때, 나는 단순히 ‘해외 연수’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한 달간의 미국 아이오와주 연수는 내 삶의 항로를 틀어버린 거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선진국의 기술이나 제도가 아닌, 그곳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내 심장을 두드렸다. 나는 한 달 동안 여덟 가정에 머물며 그들의 식탁에 앉고, 그들의 일상을 공유했다. 메인 호스트는 한국에서 입양한 아이를 키우던 중년 부부였다. 내가 왜 입양을 결심했는지 묻자, 그들은 너무도 평온한 얼굴로 답했다. “우리가 아니었다면, 그 아이는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을 테니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에요.” 그 꾸밈없고 조용한 말이 내 가슴을 깊이 울렸다. 또 다른 로타리안 마이크는 토요일 아침 일찍 나를 깨워 지역 커뮤니티 회의에 데려갔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마을의 발전을 위해 토론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주말까지 그렇게 일하면 언제 쉬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60 넘어서 쉬면 되죠. 지금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니까요.”


그들의 삶은 명함이나 직함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삶 자체가 품격이었고, 일상 속에서 지역과 사람을 돌보며 살아가는 태도는 내가 그동안 맹렬하게 좇아온 ‘성공’이라는 기준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남을 이겨야만 살아남는다고 믿었던 내게, 그들은 ‘함께 잘 사는 것’의 가치를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삶의 진정한 가치는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넓게 나누는가에 있다는 것. 그 거대한 깨달음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조용히 결심했다. 언젠가 내 고향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이 따뜻한 연대의 가치를 실현하리라고.


태평양 상공에서 조용히 품었던 그 다짐은 단순한 감상으로 흩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내 삶의 새로운 나침반이 되었고, 언젠가는 반드시 갚아야 할 고마움의 빚으로 남았다. 그 빚을 갚기 위한 나의 첫걸음은, 훗날 한국로타리클럽에 가입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운명처럼, 나는 내 인생을 바꾸었던 바로 그 GSE 프로그램의 지구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위원장으로서 젊은 단원들을 선발하여 미국으로 파견하고, 반대로 미국 팀을 한국에서 맞이하던 순간들의 감회는 남달랐다. 호기심과 설렘으로 빛나는 그들의 눈동자 속에서, 나는 수십 년 전 아이오와의 낯선 풍경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젊은 날의 나를 보았다. 내가 받았던 그 귀하고 따뜻한 경험을 이제는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돌려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 벅찬 보람을 느꼈다. 그것은 내가 받은 사랑을 세상에 되갚는, 가장 구체적이고 진실한 방법이었다.


그 인연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특히 나의 첫 호스트였던 미국 로타리안 부부와는 바다 건너편에서 수십 년간 편지와 안부를 주고받으며 가족 같은 정을 이어왔다. 2005년, 내가 오랜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인생의 또 다른 길목에 섰을 때, 나는 위로와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해 다시 아이오와를 찾았다. 그들은 나를 손님이 아닌 아들처럼 맞아주었고, 나는 한 달 동안 그들의 집에 머물며 또 한 번 깊은 회복의 시간을 가졌다. 젊은 날의 내가 ‘배움’을 위해 그들의 집을 찾았다면, 중년의 나는 ‘돌아갈 집’이 있다는 위안을 얻기 위해 그곳을 찾은 셈이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첫 미국 연수는 한 달짜리 단기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삶의 가치관을 성숙시키고, 평생의 인연을 선물했으며, 나눔이라는 사명을 안겨준, 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긴 여정의 시작점이었다.

2. IMF의 격랑과 변화의 요구


미국 연수에서 돌아와 새로운 가치에 눈을 떴지만, 현실의 나는 여전히 거대한 조직의 일원이었다. 1998년, 오랫동안 몸담았던 본사를 떠나 지점으로 발령받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현장의 공기를 마셨다. 그 무렵 대한민국은 IMF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다. 내가 마주한 현장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기업들이 쓰러져 나갔고, ‘평생직장’이라는 믿음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회사도, 나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위기감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만 했다.


그 절박함 속에서 나는 책을 파고들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미국 연수 중 보험사를 견학하며 깊은 인상을 받았던 ‘다이렉트 마케팅’에 대한 갈증이 시작되었다. 『One to One Future』, 『One to One Marketing』 같은 책들은 대중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상품을 파는 시대는 끝났으며, 고객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깊은 관계를 맺는 것만이 미래의 유일한 생존법임을 역설하고 있었다. 동시에 다니엘 핑크의 『프리 에이전트의 시대가 온다』는 ‘회사’라는 울타리가 무너진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충격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나는 밤늦도록 책장을 넘기며, 회사의 미래와 나의 미래를 동시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기회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지점 근무와 학습에 한창이던 어느 날, 본사 부사장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조 팀장, 콜센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 짧은 질문에, 나는 밤새워 공부했던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서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지는 것을 느꼈다. 단 하루 만에 나의 모든 생각과 비전을 A4용지 한 장에 담아냈고, 며칠 뒤 사장님과 부사장님 앞에서 우리 회사의 다이렉트 채널 도입 필요성과 구체적인 구축 방안에 대해 브리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나는 곧바로 본사 ‘신마케팅팀장’으로 발령받아, 회사의 명운이 걸린 신사업을 책임지게 되었다. 대주주의 아들이 우리 팀 과장으로 합류하며 프로젝트에 힘이 실렸고, 우리는 외국의 유수한 컨설팅 회사와 함께 우리 회사만의 다이렉트 마케팅 전략이라는 거대한 그림을 그려나갔다. 내 인생에서 가장 뜨겁고 역동적인 시간이었다.


하지만 시대의 파도는 우리의 열정보다 거셌다. IMF의 여파는 끝내 우리를 비켜가지 않았고, 회사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신사업을 런칭 직전에 접을 수밖에 없었다. 애지중지 키워온 꿈이 눈앞에서 꺾이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그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나 또한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그 후 나는 금융고객관리 전문 컨설팅 회사에서 컨설턴트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옛 직장으로부터 한 통의 연락이 왔다. 대주주가 바뀌고 ‘그린화재’로 사명을 바꾼 회사에서, 임원으로 복귀해달라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수많은 고민이 교차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IMF의 격랑 속에서 완성하지 못했던 다이렉트 채널에 대한 아쉬움이 뜨겁게 남아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실패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언젠가는 반드시 피워내야 할 희망의 씨앗과도 같았다. 나는 결국 컴백을 결심했다. 그리고 돌아간 그곳에서, 마침내 회사의 새로운 채널인 콜센터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몇 년 전 좌절되었던 다이렉트 채널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업무의 완수가 아니었다. 시대의 파도에 맞서 좌절했던 한 남자가, 자신의 비전이 틀리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해낸 기나긴 여정의 마침표였다.


IMF의 폐허 속에서 쫓겨나듯 떠났던 회사에, 이제는 회사의 운명을 책임지는 임원이 되어 금의환향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 2년의 시간은 영광이기보다, 거친 정글 속에서의 또 다른 생존 투쟁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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