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집사로 거듭나기
하루 종일 여러 사람을 만나고, 회의를 하고 숨 가쁘게 일을 하다 보면 퇴근 후 집에 들어왔을 때는 저녁식사 마저 하기 힘들 정도로 에너지가 떨어지는 날이 많다. 그래서 집은 나에겐 '숙소'같은.. 진짜 잠만 자고 씻고 대충 끼니를 때우고 나오는 그런 곳에 가까웠다.
밀양에 일하러 와서 살기 시작하면서 친구들을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고, 주말이면 거제나 창원으로 움직이는 바람에 더더욱 집에 있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금의 상황에서 조금은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유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가장 첫 번째로 퇴근 후 다음 날을 위해 충전해야 되는 그 짧은 시간마저도 휴식의 시간으로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같던 집을 하나씩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고, 가꾸면서 단 한 시간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웠다.
빈백 1인 소파를 샀다. 발 받침대까지 있는 걸로. 좁은 집에 그 빈백을 두기 위해 몇 번이나 침대 위치를 바꿨는지.. 여하튼 허리와 목을 받쳐 줄 수 있는 높은 빈백을 사고, 그 옆에 책 읽기에 좋은 조명을 두었다. 그리고 무엇으로 채우면 좋을까 하며 고민을 하다가, 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올해 4월 밀양의 느린 물결마켓에서 DASO 플랜트 숍에서 구매한 연필선인장을 집에서 키우고 있었는데, 매일 아침마다 연필선인장을 쳐다보고, 햇빛에 두고 나오고, 퇴근 후 싹이 난 것을 신기해하던 내 모습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초보 식집사들이 키우기 쉽다는 더피 고사리, 테이블야자, 알피니아를 사 오고, 사무실에 있던 올리브나무를 집으로 가져왔다. 물론 분갈이도 하나씩 정성스레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이소에 들려 바질 키우기 키트도 하나 더 사서
이렇게 집안 곳곳에 세팅해 두니 기분이 좋다.
아침마다 눈을 떠서 식물들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고, 잘 키우고 싶어 물을 주고픈 욕심도 내려놓고(식물들이 과습상태가 되지 않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그렇게 하루의 아침을 시작하고 밤을 마무리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보통의 날들이 얼마나 행복한 날인지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