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변수 속에서도 틀은 여전히 심지처럼 존재한다
나는 오랫동안 세상을 구조적으로 바라보았다.
세상은 목적에 따라 움직이고,
일은 흐름에 따라 흘러가며,
모든 문제는 구조를 고치면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정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예상대로 흐르지 않고,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논리로만 설명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인간’이라는 변수가 있다.
관계라는 비합리성,
감정이라는 오차,
기분이라는 돌발 상황이
구조를 끊임없이 흔들어놓는다.
기획의 세계에서는
흔들림은 오류다.
하지만 인간의 세계에서는
흔들림이 본질이다.
그렇다고 해서
구조가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구조는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세상을 결정하지는 못할 뿐이다.
구조는
하나의 심지와 같다.
초가 타오르기 위해 필요한 단단한 중심.
불꽃은 바람에 흔들리지만
심지가 있기 때문에
완전히 꺼지지 않는다.
세상도 그렇다.
구조는 방향을 잡아주고,
형태를 만들어주고,
흐트러짐을 정리해준다.
심지가 없으면
모양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심지가 있다고 해서
불꽃의 모양이 고정되는 것은 아니다.
불은 바람을 따라 흔들리고,
기온에 따라 길게 뻗기도 하고,
어떤 날엔 작게 움츠러든다.
그 변화를 만드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구조는 형태를 만들고,
관계는 그 형태의 움직임을 결정한다.
구조는 변하지 않는 뼈대이고,
인간은 그 뼈대를 따라 흐르는 살아 있는 숨결이다.
기획자로서의 눈은
세상의 틀을 읽게 해줬다.
하지만 사람으로서의 삶은
그 틀 위에서 어떻게 흔들리고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배우게 했다.
결국 세상은
구조와 인간 사이에서 존재한다.
심지는 고정돼 있고
불꽃은 흔들린다.
우리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이해해야
흔들리면서도 꺼지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