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관계에는 시작이 아니라 기능이 있었다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그 관계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흔히
끝난 관계를 돌아보며
무언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헤어졌다고 생각한다.
더 잘했어야 했고,
조금만 참았더라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끝까지 갈 수 있었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영원함을 목적으로 시작되지는 않는다.
많은 관계는
역할을 다하기 위해 시작된다.
인간 관계에는
각각의 기능이 있다.
어떤 관계는
나를 지켜주기 위해 왔고,
어떤 관계는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왔으며,
어떤 관계는
내가 무엇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인지
알게 하기 위해 등장한다.
그 역할이 끝났을 때
관계는 자연스럽게 흔들린다.
더 이상 예전처럼 맞지 않고,
서로에게 주는 의미가 바뀌고,
함께 있어도
각자의 방향이 어긋난다.
이건 실패가 아니라
완성의 신호에 가깝다.
관계의 틈은
이 지점에서 벌어진다.
한쪽은 여전히
과거의 역할을 기대하고,
다른 한쪽은
이미 다음 단계로 가 있다.
이 시간차가
이별을 잔인하게 만든다.
감정의 흔적도 남는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섞이고,
사랑과 후회가 겹쳐진다.
그래서 우리는
끝난 관계를
미완의 이야기처럼 붙잡고 싶어진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열린 결말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어떤 관계는
정확히 그 지점에서 끝났기 때문에
의미가 완성된다.
사람의 온도도
역할이 끝난 관계에서는 달라진다.
예전엔 자연스럽던 온기가
이제는 어색해지고,
억지로 이어가면
서로를 데우는 대신
서서히 소진시킨다.
이별이 잔인해지는 이유는
헤어짐 그 자체가 아니라
끝났다는 사실을 실패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관계를 지키기보다
의미를 훼손하면서까지
붙잡으려 한다.
관계의 종료를
‘역할의 완성’으로 바라보면
이별은 덜 잔인해진다.
서로에게 다 해주었고,
서로에게서 배울 만큼 배웠고,
이제는 다른 역할을 향해
각자의 길로 가야 할 시간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일 수 있다.
끝난 관계를 존중한다는 건
그 관계를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게 아니다.
그 관계가
내 인생의 어떤 지점에서
어떤 기능을 했는지를
정확히 인정하는 일이다.
모든 관계가
끝까지 가야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관계는
제 역할을 다했기 때문에
끝났을 때 가장 아름답다.
관계의 종료는
실패가 아니라
하나의 역할이
온전히 완성되었다는 증거일 수 있다.
이 관점을 받아들이는 순간
이별은 덜 잔인해지고,
기억은 조금 더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