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맺음은 과거의 정리가 아니라 미래의 토양이다
관계는
시작보다
끝에서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
누구를 사랑했는지보다
어떻게 헤어졌는지가
그 사람의 관계 수준을 말해준다.
관계를 정리하는 태도는
단순히 한 사람과의 마무리가 아니다.
그 태도는
다음 관계가 자라날 토양이 된다.
끝을 서둘러 덮어버린 사람은
다음 관계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덮으려 한다.
미해결 감정을 안고 떠난 사람은
새로운 사람 앞에서도
과거의 그림자를 데려온다.
관계의 틈은
대부분 이 지점에서 이어진다.
이미 끝난 관계의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다음 관계의 해석을 왜곡한다.
새로운 사람의 말이
과거의 누군가처럼 들리고,
지금의 상황이
이전의 상처를 건드린다.
감정의 흔적은
정리하지 않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말하지 않은 서운함,
정리되지 않은 분노,
끝내 듣지 못한 설명들은
형태를 바꿔 다음 관계로 흘러간다.
그리고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이
그 감정을 대신 맞는다.
사람의 온도도
이때 달라진다.
끝을 차분히 맺은 사람은
다음 관계에서도
온도가 안정되어 있다.
반대로
끝을 감정적으로 끊어낸 사람은
새로운 관계에서도
쉽게 과열되거나
쉽게 식어버린다.
관계를 정리한다는 건
상대를 용서하는 일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의 감정을 책임지는 일이다.
이 관계에서
내가 무엇을 느꼈고,
어디서 무너졌고,
어떤 부분이 해결되지 않았는지를
스스로 직면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건너뛰면
관계는 끝난 것 같아도
실제로는 끝나지 않는다.
형태만 바뀌었을 뿐
같은 문제가
다른 이름으로 다시 등장한다.
성숙한 이별은
깔끔해서가 아니라
정직해서 가능하다.
아팠다면 아팠다고 인정하고,
미안했다면 미안했다고 정리하고,
서운했다면
그 감정을 나 자신 안에서라도
마무리하는 것.
끝을 잘 맺은 사람은
다음 관계에서
덜 불안하고,
덜 확인하려 하고,
덜 집착한다.
이미 한 번
감정의 정산을 해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별은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
관계 능력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어떻게 떠났는지가
어떤 사람을 다시 만날지를 결정한다.
관계를 정리하는 태도는
과거를 위한 것이 아니다.
아직 만나지 않은
미래의 누군가를 위한 준비다.
끝을 성숙하게 맺을수록
다음 관계는
더 단단한 바닥 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토양 위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사랑이
자라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