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를 통해 배우는 존엄성. 당신의 존엄은 무엇인가요?
<책에 대한 내용의 언급이 있습니다. 이점 유의 부탁드립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유작이자 수작 '노인과 바다'. 작품성만큼 이 작품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내가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던 이유도, 이 책의 명성이 과연 어디서 온 것인지 궁금해서였다. 과연, 이 책의 무엇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었을까? 그리고 난 책 속에서 이 질문의 작은 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책의 줄거리는 간략하게 소개할 수 있다. 노인이 바다에 나가 커다란 청새치를 잡기 위해 3일간 씨름을 하고, 잡은 청새치를 마을로 가지고 오는 길에 상어에게 살을 모두 빼앗긴 내용이다. 줄거리만 본다면 매우 간단하고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이지만, 헤밍웨이의 생동감 넘치는 표현과 감상으로, 바다 위의 낚시를 마치 콜로세움에서 싸우는 두 검투사로 변신시켰다. 노인이 3일간 청새치와 벌이는 싸움은 경이롭고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이 싸움에서 노인은 청새치를 절대 놓지 않았다. 손에 쥐가 나고, 낚싯줄이 살을 파고들어 피를 흘려도, 그는 3일 밤낮을 바다 위에서 청새치와 싸움을 한다. 도대체 무엇이 노인이 청새치를 포기할 수 없게 만든 것일까?
나는 노인에게 청새치는 어떠한 가치를 가질까?라는 질문으로 생각을 확장해보았다. 노인은 청새치를 보고, 자신의 인생에서 본 가장 크고 아름다운 청새치였다고 이야기한다. 낚시꾼의 입장에서 크고 아름다운 물고기를 잡는 것이 영광이고, 뿌듯함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노인은 청새치에게서 그보다 더 큰 무엇인가를 느꼈을 것 같다. 단지 영광이나 뿌듯함으로 표현할 수 없는, 절대로 놓지 않은 노인의 가치. 그래서 나는 청새치가 노인의 프라이드. '존엄성'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노인에게 청새치를 잡는 것은 그저 물고기를 낚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가치를 낚아 올리는 것이 아녔을까? 그렇기 때문에 노인은 청새치의 살을 모두 빼앗겼음에도 승리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자신이 잡아 올린 청새치와의 싸움의 기억이 노인에게 남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독자도 자기 자신만의 청새치. 즉, 존엄성이 있을 것이다. 그 존엄성이 무엇이든 그것을 위해 달려가고 싸우거나, 혹은 아직 기다리고 있을 수 도 있다. 그러한 상황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오랜 싸움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인생이란 바다에서 청새치와 씨름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노인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인간은 파멸할 순 있어도, 패배하진 않는다.
삶의 순간들이 우리를 무너뜨리고 좌절시킬 수도 있다. 그 순간 우리는 무너지고, 넘어진다. 하지만 인간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우리가 다시 일어서는 한.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패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