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한빈 Feb 11. 2021

강아지 배변훈련이 뭣이 중헌디?

동물병원에 처음 오는 환자를 만나면 말이 길어진다. 


보통 생애 최초로 동물병원에 오는 동물 환자는 백신 접종을 위해 온다. 모든 환자에게는 문진이라는 걸 하는데, 생애 최초 접종을 맞추러 온 보호자에게는 아이의 상태를 물은 뒤 이 질문을 꼭 한다. 


강아지 (고양이) 처음 키우세요? 


처음 키운다고 하면 할 말이 많아진다. 양치, 귀청소, 발톱 깎는 법, 항문낭 짜는 법, 빗질하는 법, 언제 동물병원에 데려와야 하는지, 먹이면 안 되는 음식 등... 요즘은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상식이지만 그만큼 잘못된 정보도 많고, 책 한 권 읽어보지 않고 무지하게 키우는 사람들도 많다. 또 발톱깎기, 귀청소는 보호자가 보는 앞에서 직접 시범을 보여주는 것이 보호자가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배우는 것보다 당연히 낫다. 


동물, 특히 강아지를 처음 데려오면 보호자들은 일단 배변훈련과 앉아, 엎드려 같은 기본 훈련을 시킨다. 배변을 남들보다 빨리 가리면 똑똑한 강아지라며 좋아하고, 배변 훈련이 잘 되지 않으면 수의사에게 하소연을 하고 방법을 물어보기도 한다. 


"저희 강아지가 대변은 잘 가리는데, 소변은 아직 절반정도만 가리고 자주 실수를 해요"

"3개월인데 대변을 잘 가린다구요? 천재 강아지네요!" 


사람도 태어나서 몇 년 동안은 기저귀를 차고, 화장실 가는 법을 배운 이후에도 종종 실수를 한다. 초등학생 때도 가끔 실수하는 친구가 반에 한둘은 있었던 기억이다. 





훈련을 강아지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우리는 사람 입장에서 강아지를 훈련시킨다. 생각해 보자.  강아지는 배변을 정해진 그 위치에만 해줄 이유가 없다. 배변 훈련은 오직 사람이 편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강아지는 자신의 선호(강아지들이 보편적으로 배변을 선호하는 장소가 있다), 급한 신호와는 관계없이 보호자의 지시에 따라 약속된 위치에 배변을 '해 주는'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보호자가 그렇게 하면 칭찬을 해 주니까. 

그런데 우리는 강아지가 '빨리', '내 맘에 드는', '내가 치우기 편한' 위치에 배변을 해 주길 바란다. 그렇다면 강요하는 자세가 아니라 부탁하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강아지님, 다소 불편하시겠지만 저의 편의를 위해 제가 지정한 이 자리에 배변해 주신다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가 맞는 태도가 아닐까? 잘 하면 폭풍 칭찬을 해 주고, 못 해도 끝까지 기다려 주고, 조금이라도 편하게 배변훈련에 적응할 수 있도록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 올바른 보호자의 태도일 것이다. 




오냐오냐 키운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양치를 너무 싫어해서 일년동안 한 번도 못 했다는 보호자를 하루에 거짓말 안 보태고 열 명은 만난다. 하루에 한 번 꼬박꼬박 양치를 해주는 보호자는 열 명 중 한명꼴이 채 되지 않는다. 사람은 하루에 세 번 양치를 하는데도 매년 스켈링도 하고 그러다 충치가 생겨 신경치료도 받는다. 백 번 양보해서 사람과 강아지의 치아 구조 차이, 먹는 음식의 차이를 고려해도 평생 양치를 안 하는 게 괜찮을 리가 없다. 양치가 너무 힘들어서 개껌이나 사료에 타주는 잇몸영양제로 대체한다는 보호자도 셀 수 없이 많다. 그 논리대로라면 사람도 평생 양치 안 하고 인사돌 먹고 자일리톨껌 씹으면 되겠다. 


강아지가 양치를 너무 싫어해서 일년동안 한 번도 안했다는 보호자는 많지만, 강아지가 배변가리기를 너무 싫어해서 온 집안에, 이불에, 카페트에 대소변을 마음대로 보게 뒀다는 보호자는 없다. 결국 사람의 편의를 위해 훈련을 한다는 게 자명해진다. 정말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양치이지, 화장실 위치가 아니다. 


앉아, 일어나, 엎드려, 배변훈련과 같은 훈련은 강아지 입장에서 해줄 이유가 없는 훈련이라고 했다. 그러니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놀이하듯이, 못해도 혼내지 않고, 잘하면 폭풍칭찬을 하며 즐거운 훈련을 하면 된다. 하지만 강압적으로 해야 할 일도 분명히 있다. 귀청소, 발톱깎기, 양치 등의 기본적인 위생이다. '보호자가 나를 붙잡고 내 몸에 뭔가를 할 때, 나는 하기 싫더라도 좀 참아줘야 하는구나'를 어릴 때 확실히 교육시켜야 한다. 싫어서 빠져나가려고 하면 '안 돼' 하고 단호하게 말하면서 다소 강압적이더라도 어느 정도의 힘으로 제압해 줘야 한다. 힘으로 이길 수 있는 어린 강아지일 때 교육을 마쳐야 한다. (대형견일수록 더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대다수의 보호자들은 어릴 때 귀청소를, 양치를 몇 번 시도해 봤다가 아이가 조금만 비명을 지르면 (엄살이다.) 금새 포기해 버린다. 그러면 아이는 기가 막히게 빨리 배운다. '아, 내가 싫다고 몸을 뒤틀거나 비명을 지르면 놔주는구나' 심지어는 물어버린다. 물면 놔준다는 것을 배운 아이들은 평생 보호자가 조금만 싫은 일을 시도해도 물어버린다. 언제까지나 아이에게 맞춰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평생 집에서 발톱을 깎지 못해 이리저리 자란 발톱이 발바닥을 파고들고, 관절 질환까지 이어지는 환자들이 흔하다. 발톱을 깎이려면 애견미용실이나 동물병원에 와야만 하는 경우도 많다. 하루이틀이 아니라 이걸 길게는 20년씩 해야 한다. 중요한 문제다. 아이가 아프기 시작하면 더 큰 문제가 된다. 안약을 넣을 수가 없고, 약을 먹일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자기 몸에 손을 대고 싫어하는 일을 하면 화내고 물어버린다. 


실제로 백내장 수술을 하고 하루에 다섯 번 안약을 넣어줘야 하는데, 안약을 넣을 수가 없어서 하루에 다섯 번씩 병원에 데리고 오는 보호자가 계셨다. 병원에 도착하면 수의 테크니션이 안약을 넣어준다. 5초도 안 걸리는 이 일을 위해 하루에 다섯 번 병원엘 왔다갔다 해야 하다니. 우리는 보호자님을 보자마자 왜 이 아이가 이렇게 자랐는지 알 수 있었다. 수의 테크니션이 안약을 넣으려고 얼굴을 잡자, 아이는 싫다고 몸을 털어버린다. 그러자 데려온 보호자 두 분이 "어머나 어머나 어떡해!" 하면서 기겁을 한다. 아, 이 아이는 이렇게 자라 왔구나. 수의 테크니션은 눈하나 꿈쩍하지 않고 얼굴을 잡은 채 안약을 넣는다. 강아지도 보호자도 머쓱할 만큼 쉽게 끝나는 일을 집에 가서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잘 하네? 집에서는 가만히 있어주질 않는다니까요." 


아이들도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다. 이 사람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이 일은 싫더라도 내가 참아야만 하는 일이라는 걸 정말 빠르게 배운다. 저 사람은 내가 조금만 싫다는 의사표현을 하면 바로 봐주는 만만한 사람임도 배운다. 사람 아이들만큼이나 빠르다. 심지어 혼날 때 기침하는 연기(!) 를 하는 강아지도 있다. 기침을 시작하면 보호자가 걱정하고 관심을 가져 주기 때문이다. 불리할 때 헛구역질, 구토하는 시늉을 하는 사람 아이들과 비슷하다. 




가장 중요한 훈련은 배변훈련도, 앉아도 아니다 

가장 빨리, 가장 완벽하게 해야 하는 훈련은 바로 '기다려' 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앞으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와 혼란을 막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시켜야 하는 훈련이다. 가끔 성공하거나 간식이 있을 때만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완벽하게, 과장을 좀 보태자면 하늘이 무너져도 "기다려!"를 외치면 꼼짝 없이 얼음하는 강아지로 교육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다려'도 강아지 입장에서는 해줄 이유가 없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강아지와 사람의 안전과 조화를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교육이다. 사람 아이가 어릴 때 마구 소리지르며 뛰는 것이 본능이지만, 공공장소에서는 그래선 안된다고 따끔하게 교육 받는 것과 같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정말 많이 고생하는 문제 행동이 바로 짖음, 그리고 분리 불안이다. 이런 행동 장애들을 미연에 예방하려면 일단 차분한 강아지로 키워야 한다. 그리고 '기다려' 를 잘 해야 한다. 어떤 특정 현상에 꽂히는 아이들이 있다. 밖에서 사람 소리가 나면 짖어댄다거나 하는 문제가 대표적이다. 


강아지는 '안 돼' 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뭔가를 하면 안된다는 개념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다. 크게 짖을 때 보호자가 '안 돼!' 라고 말하면 짖기를 멈춰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뭐... 안 돼! 라고 한 다음에 강아지를 때린다면, 강아지는 '안 돼'라는 말과 함께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배우긴 하겠다. 그럼 보호자가 원하는 '안 돼' 교육이 될 수도. 물론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오히려 내가 짖으니 보호자도 더 큰 소리를 친다고 생각해서 '우왕 같이 짖자! 신나!' 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러니 강아지 훈련의 기본은 '좋은 행위에 대해서는 보상' '나쁜 행위에 대해서는 무시' 두 가지 원칙을 따라야 한다. 


강아지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할 때는 (사람을 보고 짖는 행위, 변을 먹거나, 물건을 씹는 등) 그 행위를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에서 주의를 돌리게 한 다음 칭찬을 해 주는 것이 정석이다. 예를 들어 짖는 강아지에게 '안 돼!' 라고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짖는 대상으로부터 주의를 돌린 다음, 주의를 잘 돌리면 칭찬해 주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를 돌리는 것이 바로 '기다려' 이다. 짖는 것과 '기다려' 를 동시에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훈련으로 '하우스' 가 있다. 방석이나 켄넬 등으로 강아지의 자리를 지정해 준 다음에, '하우스' 라고 말하면 제자리에 앉아 기다리게 훈련시키는 것이다. 보호자와 놀거나 식사 등 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 순간에는 잠자고 쉬는 것을 모두 하우스에서 하게 하는 것이 좋다. 내 자리를 익숙하게 느끼고,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우스' '기다려'를 잘 배운 강아지는 앞으로 모든 훈련이 수월해진다.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한다면 - '하우스'를 한다 - 강아지는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로 가서 기다린다 - 충분히 칭찬해준다. 하우스에서 기다리는 것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느끼는 강아지들은 분리불안도 덜 겪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분리불안은 아주 복합적이고 어려운 문제라 만병통치약은 없다) 


매우 흥분한 상태에서 '기다려' 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완벽에 가깝게 반복 훈련을 해야 한다. 이 역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칭찬과 보상을 주며, 즐겁게 놀이처럼 반복 훈련을 하자. 강아지 칭찬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잘했어, 하고 몇 번 쓰다듬어주는 걸로는 한참 부족하다. 자신의 음역대가 허락하는 한 가장 하이톤으로, 태어나서 해본 적 없는 정도의 호들갑으로, 격렬하게 한참동안 칭찬해주고 맛있는 간식도 함께 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니 이게 뭐 별거라고, 이렇게까지 칭찬해줄 일인가?' 싶을 정도로 과도하게 칭찬하자. 




인간과 동물의 행복한 공존을 위해서 

훈련은 강아지를 위해서도, 사람을 위해서도, 둘의 적절한 공존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강아지 물림 사고가 잊을만하면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중요한 시기에 올바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특히 대형견이라면 미흡한 교육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전제에 두고 필사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강아지가 일방적으로 사람을 위해 맞추는 것도 아니되, 강아지가 원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서 꼭 해야 할 교육을 놓치지도 않아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원래 강아지 키우는 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나는 수의사지만, '웬만하면 강아지 키우지 말라'고 제일 많이 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강아지를 데려오자마자 1~2주 안에 모든 훈련을 완벽하게 시키려는 욕심을 잠시 내려놓고, 즐겁게 훈련하자. 어릴 때의 훈련 또한 강아지와 보호자의 즐거운 추억이 될 만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