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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KGEE Oct 12. 2020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기

일단은 피어싱

언젠가의 금요일 저녁 식사 후 온 가족이 거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사과 한 조각씩 물고 TV 예능을 보고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내 또래로 알고 있는 한 여배우의 귀가 유독 내 눈에 들어왔다. 평소 연기할 때는 도회적이긴 했지만 정적이고 얌전한 이미지였는데, 지금 화면 속 그녀는 쾌발랄했고 심지어 귀에는 개성 있는 피어싱 이 여기저기 가득했다. 한쪽에만 3~4개씩 귓볼은 기본, 귓바퀴와 그 안쪽까지 해서 대강 세어보아도 총 6~7개는 될 듯했다.
“와~~완전 멋진데.....” 나도 모르게 감탄이 세어 나왔다. “엄마도 저렇게 귀 뚫어볼까?” 언제부턴가 딱히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면서 아이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버릇이 생겼다.
“에~? 엄마 나이에요?” 큰 애가 말했다.
“엄마 나이가 어때서~~~? 저 여자도 엄마랑 나이 비슷해~” 발끈하고 말았다. 피어싱을 할 수 있고 없고를 구분 지을 만큼 나는 내 나이가 많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아이의 반문이 나를 당황케 했다.  아이가 생각하는 엄마의 나이는 어떤 나이인 걸까? 아이의 생각이 중요한 걸까? 왜 물어봐서. 잠시 후회했다.


얼마 전 코로나 때문에 겨울 동안 자란 머리를 어찌하지도 못하고 참고 참다 마지못해 예약해 미용실을 찾았다. 오랜만에 간 김에 머리카락도 단발로 자르고 펌도 해야 했다.  나는 롤로 돌돌 말아놓은 머리 가닥가닥 열처리기에 매달려 있는 상태로 옴짝달싹 못한 채 미용실 창가 자리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내 다음 예약 손님으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가게로 들어왔다. 고개를 돌릴 수 없는 처지라 곁눈질과 문에 달려 있는 종소리로 알 수 있었다. 얼핏 그 둘은 긴 생머리에 가벼운 면 트레이닝 배기팬츠와 후드티 차림으로 친구인 듯 보였다.  그래서 미용실 원장 언니의 그다음 말에 난 깜짝 놀랐다.
 “어머, 어머님이셨어요? 저는 따님이 친구랑 같이 온 줄 알았어요~~~ 친구라고 해도 믿겠어요~~~넘 관리를 잘하시네요~”
 “아, 그래요?”
“네~고객님, 그리고 머리숱도 정말 많으시고 모발 상태도 좋으신데, 긴 생머리 관리하기 힘드시지 않으세요?”
너무 궁금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저 친구인 줄 알았으나 엄마라고 밝혀진 여성의 얼굴을 내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메인 몸이라 귀만 더 쫑긋하고 있었다. 드디어 열처리기 타이머 알람이 울리고, 샴푸실로 이동할 때 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죄송한 말이지만 그 여성분의 얼굴은 기대했던 것만큼 젊 어보 이진 않았다. 그냥 관리 잘하시는 50대 후반으로 보였다. 결국 나나 미용실 원장이 얼핏 보고 나이를 착각하게 한 것은 그 나이에 드문 긴 생머리와  딸아이 옷을 입고 나온 듯한 힙한 캐주얼 차림의 실루엣 때문이었다. 내 딸이 나에게 피어싱을 하기엔 많은 나이라고 했을 때 발끈한 내가 50대에는 긴 생머리와 젊은 옷차림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여성은 생머리로 허리까지 기를 수 있는 나이의 구분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거다. 나는 나에게만 관대했던 것이다.  이 무슨 모순인지.


아이와 피어싱과 나이로 의견 충돌이 있고서 얼마 되지 않아 나는 피어싱 전문샵을 찾았다. 가게에 들어갈 때까지도 결정하지 못했었는데 어느새 가게 피어싱 마스터에게 내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기존에 뚫었다가 살짝 막힌 거 다시 뚫어 주시고요. 그 옆으로 하나씩 더 뚫고, 오른쪽만 귓바퀴 아웃컨츠 하나 더 뚫을게요.”
“연골 피어싱은 아무는데 오래 걸려서 관리가 좀 까다로우세요. 다 고르셨으면 저 안쪽 시술실로 가실게요.”
안내하는 곳은 가게 안쪽 커튼이 쳐진 구석 시술실이었다. 앉아서 기다리니 피어싱 마스터 언니가 스테인리스 접시에 굵은 바늘 5개와 소독용 알코올을 적신 솜, 그리고 내가 고른 피어싱을 가지고 들어왔다. 접시 위에서 바늘이 닿이면서 나는 금속성의 소리가 흡사 수술실을 연상시켜 한기가 느껴졌다. 살짝 긴장했지만 마스터 언니의 얼굴의 피어싱(귀, 코, 입술 등등)을 보니 용기가 생겼다. 연골부터 뚫는다며 내 귀를 소독하고 크게 심호흡을 하라고 했다. 크게 들이쉬고 잠시 숨을 참으랜다. 그 순간 귓바퀴에 둔탁한 느낌으로 ‘뚝’ 소리가 나고 바로 귀가 뜨거워진다. 바늘을 빼내고 그 자리에 피어싱을 능숙하게 끼워 나사를 돌려 채운다. 화끈거리는 열감 외에는 생각보다 아픈진 않았다. 그다음 귓볼은 가볍게 ‘뽁’ 거리며 뚫었다. 예전에 뚫었다 막힌 줄 알았던 구멍은 다행히 막히진 않아서 요령껏 끼우니 피어싱이 들어갔다. 이로써 내 귀에 구멍이  5개가 생겼다.


내게 어울리는 것은 내가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다. 설사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일지라도 말이다. 10년 전 귀걸이처럼 멀쩡한 귀걸이도 내 눈에 이상해 보이는 순간 내 귀에 걸릴 일은 없다. 얼마나 자신 있게, 원래 태어날 때부터 나에게 있었던 것인 양 소화를 하느냐가 관건이다. 내 모습에 당당해지면 내가 뭘 어떻게 하고 있어도 결국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일 거다. 지금은 피어싱을 했지만, 내가 10년이 지난 후에도 내 모발 상태가 허락한다면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고 싶어 질지도 모를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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