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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KGEE Nov 26. 2020

내 허벅지로 말할 것 같으면...

몸과 마음의 근력 만들기

저녁식사 후 식탁을 치우고 겨우 앉아 책을 펼쳤을 때였다. 샤워 후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올 줄 았았던 큰 아이가 방에서 교복을 입고 나왔다. 다음 주가 등교하는 주이니 그새 교복 치마가 작아지진 않았나 확인하는 거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지금까지 등교일 수가 한 달이 될까. 체형이 변하고도 남는 시간이니 걱정이 될 만도 하다. 다행히 봄에 입었던 동복 치마가 더 여유 있어졌다. “유리야 교복이 더 낙낙해졌네~걱정 안 해도 되겠어. 아침 줄넘기가 효과를 보는구나.” “음... 그렇긴 한데...” 현관 중문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요리조리 살피며 말을 이었다. “제 다리도 좀 가늘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튼튼해요.” “어쩌겠니, 체형도 타고나는 것을. 넌 날씬해. 가느다란 게 날씬하게 아니라 건강하게 군살이 없는 게 날씬한 거야.” 이렇게 말은 해 주지만 나도 그 마음을 백번이고 이해한다. 나도 이 튼튼한 하체가 평생의 스트레스요 아킬레스건이었다.


나는 타고나길, 뼈대가 굵고 야리야리한 몸과는 거리가 멀었다. 중학교 때까지 외모에 관심이 없어서 딱히 생각 없이 살다가 고등학교 가서 급격히 불어난 몸 특히 하체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던 것 같다. 교복 안 입고 등교하는 토요일에 입을 옷 걱정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을 많이 하게 되어도 하체는 근육량이 늘어날 뿐 가늘어지지 않았다. 나는 근육이 잘 붙는 체질이었다. 좀 가늘어져 보겠다고 운동을 하면 근육이 유지되고, 운동을 좀 멀리하면 지방이 늘어나 버리니 내 바람은 답 없이 항상 좌절되었다. 그래서 항상 옷을 사거나 입을 때에도 하체가 좀 더 날씬해 보이는 것으로만, 또는 가릴 수 있는 방법만을 찾았다. 무난한 하체를 가진 수많은 다른 이들이 한없이 부럽기만 했다. 그래서 사실 큰 아이의 부러움이 가득한 고민을 그 누구보다도 공감한다.


그렇다고 부모 된 입장에서 타고난 유전자가 그러니 ‘꿈 깨!’라고 포기하듯 말할 수도 없고, 내가 어렸을 때 많이 들었던 ‘대학 가면(어른 되면) 살 빠져.’라고 근거 없는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 일단 이렇게 말해 주었다. 연구에 따르면 허벅지 근육이 두꺼운 사람의 수명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길었다고. 근육의 양이 많을수록 건강하게 오래 살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었다. 이제 갓 만 14세가 된 여자아이에게 오래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얼마나 귀에 들어올까마는 100세 시대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늦지 않게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자의 반 타의 반 달리기를 해 온 지는 벌써 20년이 넘었다. 완전히 타의가 사라지고 자의로 뛰기 시작한 것은 1년이 조금 넘었다. 순수하게 뛰는 즐거움과 보람을 찾은 것이다. 더불어 계단 오르기를 한지는 3년 정도 되었다. 거창하게 20층, 30층 오르기가 아니라 출근할 때, 점심 먹고 들어갈 때 계단을 이용해서 최소 하루에 12층을 걷는 것을 목표로 했다. 달리기와 계단 오르기 이 두 가지는 자연스레 내 허벅지를 조금씩 조금씩 단련시켰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근력을 강화시키는 방법이 아니라서 원래 내 근력인지 운동을 해서 좋아진 것인지 살짝 구분이 가지는 않지만 시간 간격을 멀리 두고 비교해 보면 그 효과는 확실했다. 그렇게 내 허벅지 근육이 단련이 되었을 때와 그렇지 않고 헐렁했을 때의 시점을 잘 더듬어보면 소위 내 멘털이 흔들림 여부의 시점과 겹치는 것을 지금은 당연히 안다. 몸과 마음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근력이 체력이고, 체력이 정신력이라는 말이 된다. 마음의 근력도 좋아진다는 말이다.


작년부터 글쓰기를 시작하고 내가 가장 많이 듣고 있는 말이 ‘허벅지’의 힘이다. 운동하고, 처음에는 체력에만 관련 있고 옷맵시에는 도움을 주지 않는 내 굵은 허벅지가 글을 쓰게 한다니 무슨 소리인가 싶었고 나는 가늘어지고 싶었던 허벅지를 강조하는 것이 불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당황스러움은 순간이었다. 결국 몸과 마음은 연결된 하나라는 수많은 현자들이 하던 말과 다르지 않았다. 내 허벅지가 곧 나였다. 내가 차곡차곡 쌓아온 하루하루의 흔적이 내 몸에 고스란히 남아 정작 내 몸은 알고 있었으나, 내가 알기를 거부하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나는 하루를 의미 있게 채우려 노력한다. 순전히 재미있어서 책도 꾸준히 읽고 있고, 책 보다 시간 내서 보기가 힘들지만 좋은 영화를 보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명상하듯이 책 필사도 하고 있다. 올해 처음 시도해보는 3줄 영어일기 쓰기도 하고 있고, 1일 1 그림도 다시 시작해서 그림일기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지금처럼 꾸준히 글을 쓰려고 노력 중이고, 배우고 있는 시나리오 쓰기도 어렵지만 포기하지 않고 해 나가고 있다. 추운 날씨 탓에 달리기는 못하고 있지만 집에서 주 3회 홈트레이닝도 시작했다.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면 요가 수업도 다시 수강하고 싶다. 물론 따뜻해지면 또 달리러 나갈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쌓여 만들어진 튼튼한 허벅지는 내가 중심 잡고 똑바로 서 있을 수 있도록 해 주었고 지금의 내가 나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오늘도 큰 딸아이는 야리야리한 여자 아이돌의 가느다란 허벅지를 꿈꾼다. 나는 아이에게 ‘꿈깨’라는 말은 속으로 잠시 삼키키로 한다. 대신 1년 가까이 매일 아침 일어나 줄넘기를 하고 오는 성실함을 칭찬한다. 아이가 쌓아가는 하루하루를 응원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40여 년을 살아 내고서야 허벅지의 힘을 받아들인 이 엄마보다는 더 빨리 깨달으리라는 것은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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